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Jan 13. 2019

당신과 나 우리도, 첨밀밀처럼

[I'm in New York] ⑩ 뉴욕을 지탱하는 건 이주민의 노동이다

1년 전, 뉴욕에 두 번째 발을 디뎠다.
5년 여동안 나를 쏟아부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뉴욕을 만끽하겠다고 떠난 길이었다. 그전부터 뉴욕 타령을 했었다. 한 번 짧게 내디딘 뉴욕에 혹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만든 회사에, 대표까지 한 사람이 그만둬고 그래도 되느냐고, 지금까지 이룬 것이 아깝지 않으냐고, 나이도 적지 않은데 괜찮겠느냐고 묻곤 했지만,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Why Not?" 그게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일이 뭐라고. 관계가 뭐라고.
모든 사회적 관계, 의무에 스위치를 끄고(물론 한시적이었지만) 두서없이 맥락 없이 허허실실 뉴욕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당시 내 마음이었다. 다시 나는 한국에 돌아와 그 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뉴욕에 가서는 내 멋대로 뉴욕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다. 비록 몸이 태어난 곳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마음이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나는 뉴욕을 고향으로 못 박았다.
나는 여전히, 뉴욕을 그리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에 젖어있다.  

오늘은, 
'진짜' 뉴욕 이야기를 건넬게요. 여행 온 이방인 주제에 웬 진짜 타령? 하겠지만 이것 없이는 어떤 (수식을 붙인) '뉴욕'도 지탱하지 못하거든요. 그동안 당신에게 건넨 뉴욕은 어쩌면 표백제로 얼룩을 지운 뉴욕이었죠. 찰나적 도착증에 기인한 낭만적 시선이 우선됐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먹기 좋은 솜사탕처럼 달달했던 뉴욕 찬가가 아니에요.

<첨밀밀> 포스터


<첨밀밀>.
제가 뽑은 '뉴욕 3 대장' 영화 중 하나죠. 이요(장만옥)와 소군(여명)이 10년 만에 우연히 다시 만난 5월 8일에 뉴욕을 찾겠다는 로망을 간간이 내비쳤던 영화입니다. 애절한 연가(戀歌)라고 손쉽게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 반환 전 홍콩(인)의 심리를 다룬 영화라고도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도 맞는 얘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저는 <첨밀밀>을 '노동 영화'로도 바라봐요.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온 이요와 소군, 각각 목적은 달랐지만, 정말 '열일'합니다. 특히 이요는 돈 좀 벌어보겠다고, 망하지 않겠다고, 사기도 치고 사기도 당하고, '사랑 따윈 필요 없어'의 자세로 닥치는 대로 자신을 굴리죠.


어쩌다 두 사람, 사랑이 무르익지만, 
일이 될라치면 꼬일 대로 꼬이는 우리네 대부분 생이 그러하듯, 뉴욕까지 흘러가는 이주노동자로 역시 굴러요. 이요는 이요대로, 소군은 소요대로 살아남기 위해 버둥대면서.

차이나타운을 타박타박 걸었어요. 
오만가지 중국 표지들이 여긴 뉴욕 내 중국'섬'임을 보여주네요. 뉴욕이 '용광로'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뉴욕(의 주류)에 섞이지 못한 이주민들이 보입니다. 진짜 용광로라면 '차이나타운' 같은 건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담으로, 어떤 중국인이 중국어로 말을 걸어오는데, 뉴욕에서 두 번째 '중국어 폭행(?)'을 당했네요.ㅋ


<첨밀밀>에서 차이나타운을 비롯해 뉴욕 거리를 거닐던, 
이요와 소군.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다시 뉴욕으로,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떠올렸어요. 온전하게 이해하진 못했겠지만,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스멀스멀 다가오더군요. 차이나타운에 있는 숱한 중국인들 눈빛과 모습에서 이요와 소군을 투사했어요.


휘황찬란하거나 '힙'스럽거나 웅장한 뉴욕의 외양 앞에,
시각적으로 경도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늘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 있어요. 그 속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인민들. 결국 뉴욕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근간에는 그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먹고 마시고 이동하고 무언가를 사고, 
뉴욕을 걷는 모든 과정에서 저는 그들의 노동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공원이나 광장, 도서관 등에서 쉼, 혹은 문화를 향유할 때도 늘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노동을 만납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흑인, 히스패닉계, 아시아인이라는 것도 볼 수 있고요. 저 하나가 뉴욕을 만나는 모든 순간이 그러한데 그 많은 여행객과 뉴요커들까지 감안한다면. 이들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뉴욕은 있을 수 없는 거죠.

엊그제 저녁, 
록펠러센터 광장에는 시끌벅적한 파티가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걷다가 시끌벅적하기에 구경을 했는데, 꽤나 비싸 보이는 파티였어요. 옷차림에서 드러나더라고요. 춤과 음악, 알코올과 근사해 뵈는 요리, 하루의 피로는 이렇게 푸는 거지, 라며 들썩들썩. 그 와중에 청소 용구를 든 한 히스패닉계 청소노동자가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가 쓰레기를 수거하다가 멈춰 선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짠하고 울컥하더라고요.


그리고 걷다가 배고프거나, 
밥 먹을 때를 놓치면 간혹 들렀던 1달러 피자집이 있어요.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피자를 만들고 주문받고 계산하기에 여념 없는 히스패닉계 노동자들.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데 그 노동이 없다면 뉴욕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한 것은 뉴욕이 자랑하는,
빛나는 스카이라인, 타임스스퀘어의 스펙터클, 월스트리트의 부, 소호와 첼시의 문화예술과 부띠끄, 브루클린의 힙스러움, 멋진 공원 등을 지탱하는 근간은 저임금 노동자들일 거예요. 대부분 이에 동의하겠지만, 사회는 그만한 대접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뉴욕만 그런 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죠.


진짜 뉴욕은 그래서, 
당신과 나, 우리의 노동을 생각하게 만들어요. 노동자가 한국 어느 도시든 회사든 주인이었던 적이 거의 없는 현실. 워킹푸어 혹은 가난의 경계에서 외줄 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한 사회를 유지하고 번영에 없어선 안 될 존재임에도,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이나 기쁨은 사회에서 없어선 안 될 부분으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비극 아닐까요!


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인류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기원의 흔적을 철저하게 은폐시키며, 그것들을 생산해낸 노동 과정이나 생산에 내포된 사회적 관계들의 흔적도 모두 은폐시킨다."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소비하는 뉴욕은 상품화된 라이프스타일이죠.

다시 <첨밀밀>을 돌아가자면, 
1995년 5월 8일 이요와 소군이 등려군 사망을 알리는 차이나타운 한 전파상 쇼윈도 앞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 기억하죠?! 그 세렌디피티(!)는 십 수번을 보고 또 봐도 찌릿찌릿해요.(한데 그 전파상은 결국 찾질 못했고요.ㅠ) 등려군의 '첨밀밀' 노래가 흘러나오고(아, 생각만 해도 뭉클해져요),

https://youtu.be/nSPFOja6sRY


당신도 기억 속에서 영사기를 돌리고 있을 그 끝장면.
소군과 이요는 홍콩에 올 때 같은 열차 칸에서 등을 마주댄 좌석에 앉아 있었던 거죠. 운명 같은 사랑이자 낭만적 우연! 한데 그것은 사회적 운명이자 우연이라고도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생에 망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이주해야 했던 노동이 맺어준 어쩌다, 사랑의 우연.


자본이 등을 떠밀었든, 
시대가 노동을 은폐시켰든, 
뉴욕이든 다른 어디에 있든,
우리는 노동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뉴욕에서 새삼 확인합니다. 당신이나 나나 이요와 소군일 수밖에 없음을.


그럼에도, 
당신이 삶에 지치고 버거울 땐, 
내가 모는 자전거 뒤에서 날 꼭 잡고 있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망했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노래를 타고.

우리도, 첨밀밀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에서 도시재생을 걷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