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Sep 01. 2020

마을과 새활용이 만날 때,

내 사는 마을에 자리한 '서울새활용플라자'가 지구의 좋은 습관이 된다면

하늘이 눈부시게 맑고 푸릅니다. 숨을 훅, 들이쉬고는 새활용 거리에 들어섭니다. 가벼이 스트레칭을 합니다. 줄 지어선 나무에게 안녕, 인사를 건넵니다. 나무가 살랑살랑 잎을 흔들며 웃습니다. 슬슬 거닐던 발걸음에 조금씩 속도를 붙여봅니다. 가볍게 땅을 박차고 천천히 달립니다.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반기고 벌과 나비, 잠자리가 함께 달립니다. 바람도 저를 반기는 듯 피부를 스칩니다. 땀방울과 바람이 만나는 순간, 서울새활용플라자(이하 SUP) 앞에 멈춥니다. 호흡을 가다듬고는 줄넘기를 합니다. 숨이 가빠 오면 영화 <록키> 주인공처럼 SUP 2층 야외 데크로 뛰어오릅니다. 흐읍, 심호흡 크게 하고는 저 멀리 바라봅니다. 뻥, 뚫린 시야가 시원합니다. 한강 남쪽까지 바라볼 수 있는 날씨가 고맙습니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행복이자 축복입니다.


저는 그렇게 종종, SUP를 짧게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입니다. 용답동 주민이기에 가능한 소소한 행복을 누립니다. 계절을 계절이게 하는 것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이라고 했던가요.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인 계절을 느끼기에 SUP는 참 좋은 마을 공간입니다. 저는 이곳을 더 많은 마을 주민이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서울환경연합 표현에 의하면, 지구가 청구서를 보내왔습니다. 지나친 소유와 편리를 취하느라 지구를 들들 볶았더니 머리끝까지 화가 난 지구가 ‘기후위기’라는 청구서를 발행했습니다. 화 날만 합니다. 지구인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1950년, 25억 명이었던 인구는 어느새 80억 명에 육박하고 국내총생산(GDP)은 10배 이상 커졌습니다. 자연과 커먼즈를 착취·수탈한 때문입니다. 에너지, 물 소비는 천정부지로 솟았고 화석연료 소비와 산림파괴로 온실가스 배출은 폭발했습니다. 최근에는 지독한 폭염과 한파에 떨었고, 가뭄과 갑작스러운 호우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가을장마’와 ‘가을 태풍’이라는 이전에 없던 증상도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지구가 시름시름 앓는 와중에 시한부 선언을 받고 나서야 인류에게 청구서와 처방전을 함께 던졌습니다.

 

지구 체온을 재보니 산업화 이전보다 약 1℃ 이상 올랐습니다. 한국은 더 가파르게 올라 지난 100년간 6대 도시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했습니다. 사람 몸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균보다 0.3℃만 높아져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마당에 36.5℃에서 38℃로 체온이 오르면 우리는 끙끙 앓으면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런 고통이 지구에 도달했습니다. 지구는 앞으로 체온이 0.5℃ 더 오르면 파국입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 결론이 그렇습니다. 공짜인 줄 알고 우리가 지구를 흥청망청 소비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앞으로 세계 전력량의 70~85%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등 온실가스 배출을 10년 내 45% 줄이고 2050년 0%를 달성해야 한답니다. 


반성부터 했습니다. 왜 지구를 퍼도 퍼도 괜찮다고 생각했을까요. 왜 지구가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저는 이전과 다른 생활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기분과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날씨(기후)입니다. 한파 등에 시달린 통에 2018년 기준 기대수명이 짧아졌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기대수명이 전년보다 증가하지 않은 것은 1970년 관련 통계를 낸 이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을, 특히 기후위기 상황에 도달하면서 겪고 있습니다. 다른 건 실수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다릅니다. 제대로 대처를 못 하면 끝장이고 파국입니다.


SUP를 산책하고 뛰면서 맑은 하늘에 바라보며 영화 <날씨의 아이>(신카이 마코토 감독)를 생각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코스모스, 벌과 나비를 만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저에겐 파국입니다. 물론 지금 SUP에는 새활용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세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것도 좋지만 새활용에 대한 시야를 더 넓고 웅숭깊게 가져가면 좋겠습니다. 마을과 지구까지 업사이클하고 재생할 수 있는 관점과 장을 열어주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기업이 자신의 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고 약속하는 ‘RE 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이 있습니다. 2014년 국제환경단체 ‘기후 그룹’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제안하여 출발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200여 개 글로벌 기업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SUP도 지구 돌봄과 기후위기 타파를 위한 아지트로 ‘새활용’된다면 어떨까요. 시민, 마을 주민, 입주기업 등이 손에 손잡고, 아 벌, 나비, 코스모스 등 다른 생명도 함께 말입니다. 거대하고 큰 무언가를 기획하고 짜야하는 건 아닙니다. 플라스틱 프리, 제로 웨이스트 등 다양한 SUP 활동에 살짝 덧붙여도 좋습니다. SUP에서 시작해 마을로, 지구로 뻗어 나가는 사고와 인식의 확장을 돕는다면 그것 또한 좋지 아니합니까! SUP에 둥지를 튼 소셜벤처, 사회적경제기업 등이 비즈니스를 통한 솔루션을 함께 고민하는 방안도 있겠습니다.

2020년, 만 3살을 향해가는 SUP가 물리적 인프라가 아닌 ‘사회적 인프라’로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에 의하면, 사회적 인프라는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공간 및 조직을 뜻합니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나 이웃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합니다. 건전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장소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명은 유대 관계를 형성합니다. 사람들이 꾸준하게 반복해서 모여들 때, 특히 즐거운 일을 하며 교류할 때 관계 또한 필연적으로 싹틉니다. 


기후위기라는 우울하고 거대한 위험 앞에 SUP가 생명의 허파와 같은 숲이 되도록 함께 즐겁게 강강술래를 돕시다. 그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 반복합시다. 우리는, 우리가 되풀이하는 행동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의도된 행위가 아니라 반복된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입니다. SUP가 삶을, 지구를 천천히 바꾸는 습관이 되는 날을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계절이 바람의 좋은 습관이듯, SUP가 지구의 좋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새활용플라자 기고 원문)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과 나 우리도, 첨밀밀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