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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Jan 13. 2019

와글와글 블록체인 커뮤니티

[블록체인 선언] (14) 자발적 참여로 초사회성과 집단지성을 발휘한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왁자지껄하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수백 년간 실험과 투쟁으로 만들어진 1인 1표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는 현 사회 체제의 핵심 요체다. 특정 주체가 권력을 장악해 구성원을 휘두르는 구조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탈중앙화라는 기본 철학을 품은 블록체인은 그래서 속 깊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로 작동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커뮤니티가 기반이다. 다시 말하면 블록체인은 커뮤니티와 기술(상품)의 결합체다. 블록체인을 단순히 숫자와 기술로만 보면 곤란하다. 블록체인 안에는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프라이버시)가 똬리를 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중개자 없이 직접 연결(P2P)되는 방식을 택한 비트코인의 초기 이상은 독립된 화폐와 이를 통한 생태계 구축이었다. 초기 비트코인 커뮤니티 참여자들이 형성한 공감대였고, 이를 통해 낡은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개별 사용자가 직접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가진 힘은 비트코인을 통해 발현됐다.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정부나 금융회사 개입 없이 네트워크 안에서 합의된 규칙을 만들었다. 합의에 의해 코인은 2,100만 개만 발행하고 기여와 보상 규칙을 작업증명(PoW)이라는 알고리즘으로 만들었다. 중앙 관리자 없이 네트워크 내 개별 노드가 데이터 무결성을 검증하고 위변조를 방지하는 등의 규칙이 비트코인을 규정했다.


커뮤니티는 집단지성의 발현 가능성을 높인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생태계는 풍성해질 수 있다. 중앙에 자리한 누군가의 통제가 아닌 자발성을 가진 개인이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은 블록체인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이들이 합의를 통해 만든 규칙이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수많은 블록체인은 해당 커뮤니티에 속한 이들의 합의와 결정에 의해 움직인다. 이것은 중요하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인간 본성에는 이기심과 협동심이 공존한다. 두 마음이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데 커뮤니티는 경쟁과 개별성보다 협력과 사회성을 생명으로 한다. 이타성과 사회성은 집단 안에서뿐만 아니라 집단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다가 인류 차원의 거대한 협력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를 ‘초사회성’(ultrasociality)이라고 부른다. 인류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피터 터친(Peter Turchin)은 ‘무리 속에서 낯선 이들과 협력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능력’을 이렇게 일컬었다. 


터친은 “어떻게 생면부지의 수많은 인간이 서로 협력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초사회성을 끄집어냈다. 이는 작은 마을부터 도시, 국가, 그 이상 큰 집단에서도 가능하다. 그는 이런 성정이 전쟁과 함께 발전돼 왔다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만들어진 국제연합(UN)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또 16개국이 합작한 우주개발사에서 위대한 사건 중 하나인 국제우주정거장(ISS)도 “가장 멋지고 거대한 규모의 국제적 협력 사례”다. 현재 ISS를 지원하고자 세금을 보태는 사람은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다. 그는 “집단의 생존이 좌우될 만큼 혹독한 환경적 조건에서라면 협력을 잘 이루어낸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고 협력을 잘 이루어낸 집단일수록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협력이 불가피했다. 인간보다 세고 강한 맹수와 싸우고 식량을 구하며 집을 짓기 위해 협력했다. 아니, 협력해야만 했다. 배를 채우고 다른 동물과 자연의 위협을 피하려면 힘을 합하고 서로 도와야 생존과 생활이 가능했다.  

인간은 무엇보다 협력하면서 그 능력이 비약적으로 진화했다. 협력이 위대한 기술, 경제, 사회, 문화 진보를 이뤄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가 이해타산과 경쟁, 갈등의 측면에서 인간 개체를 바라본다면 ‘초사회성’은 협력과 협동의 관점에서 인간을 설명한다.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초토화됐던 한국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일궈낸 것도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기치 아래 협력에 적극 나선 덕분이었다.


물론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이 발휘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협력을 이끌 동인이 있어야 한다. 모든 개인에게 충만한 이기적인 본능이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적 보상이나 심적 보상이 필요한 이유다. 블록체인이 택한 인센티브가 암호화폐다. 커뮤니티는 암호화폐를 통해 협력의 가능성을 높인다.


블록체인의 진짜 가치는 커뮤니티에서 나온다. 암호화폐 투자회사인 ‘블록체인 캐피털’ 공동 창업자이자 비트코인재단 대표를 맡고 있는 브록 피어스(Brock Pierce)는 ICO를 ‘Initial Community Offering’으로 부른다. 그만큼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당연하게도 블록체인 커뮤니티에 좋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백서)와 경제 생태계를 탈중앙화 하는 데 대한 믿음으로 자유롭게 모인 개인이 서로 연결된다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더 깊이 들어가면 단기간에 큰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선택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이들은 암호화폐 시세에 일희일비하고 상장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암호화폐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소비한다. 물론 그게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행여 그런 목적으로 커뮤니티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커뮤니티 내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한다.


암호화폐는 다른 자산보다 커뮤니티 시각이나 관점에 많이 좌우된다. 그렇다고 커뮤니티 문화가 단기간에 형성되진 않는다. 처음에 백서를 보고(혹은 보지 않고 무조건 투자에 나선 사람도 있겠지만) 모인 개인이 연결되나 시간과 관계가 축적돼야 커뮤니티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형성된 커뮤니티 정체성이 암호화폐 성격을 구성하고 정의한다. 모든 블록체인 커뮤니티가 선한 의도만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만 낳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기초 아이디어에 대해 커뮤니티가 어떤 생각과 열정을 갖고 진화하는가에 크게 좌우된다. 


모든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다르다. 기술과 커뮤니티 개발에 얼마나 열의를 가졌는지 각양각색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참여와 공동의 이익을 끌어내는 것이다. 암호화폐를 평가할 때 지금 가장 쉽게 쓰이는 시가총액이 아닌 커뮤니티를 평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지수로 만드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커뮤니티 활동이나 충성도 등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툴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끌 것인가 고민하는 커뮤니티는 스스로 함께 만든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모든 권한이 커뮤니티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뮤니티만 존재한다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다. 어떻게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합의의 조건이 무엇인지도 중요하다. 세상 어떤 경우에도 불평등과 피할 수 없는 부정행위가 도사리고 있다. 초점은 부정행위가 있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부정행위 빈도를 제한할 것인지에 둬야 한다. 협력이 항상 높은 수준에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부터 협력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만은 기억하면 좋겠다. 가장 훌륭하고 바람직한 그리고 공정한 방법은 그 문제와 가장 관련성 깊은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일이다. 어떤 사안을 놓고 결정하는 일은 오로지 당사자들만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분배든 재분배든 하나부터 열까지 검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사자뿐이다. 제 아무리 전문가라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다른 누가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왁자지껄해야 한다. 내 일이고 우리 일이니까. 민주주의 툴을 갖춘 블록체인은 커뮤니티에서 언제든 소사이어티로 약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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