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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Jan 13. 2019

협동조합 정신을 이식한 블록체인

[블록체인 선언] (15) 협동조합과 블록체인은 어떻게 만나고 진화하는가

근대 협동조합의 최초 성공 모델인 영국 ‘로치데일공정선구자협동조합’(로치데일)은 조합원이 될 사람을 모집해 출자금을 받았다. 그리고 이익이 나면 조합원에게 배당금을 분배했다. 로치데일은 여러모로 선구자였다.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1인 1표 원칙을 뒀다.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 당시 영국에는 여성에게 선거권이 없었다. 특히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블록체인이 중개자를 없앤 것처럼 중간 유통을 없앤 덕이었다. 덕분에 조합원은 품질 좋은 상품을 비교적 좋은 가격에 얻었다.  


협동조합은 출자금을 내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다. 탈퇴도 자유롭다. 열린 방식이다. 협동조합은 무엇보다 조합원 자치에 의해 운영된다. 특정 개인이나 주주의 이익에 복무하지 않는다. 주식회사는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힘을 갖지만 협동조합은 출자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로치데일이 그러했듯, 협동조합 최초의 기치는 양질의 저렴한 상품 거래였다. 이는 중간 유통을 생략하고 직거래 체계를 구축했기에 가능했다.

 

블록체인은 이런 협동조합이 지닌 가치를 품고 있다. 협동조합 모델과 비슷한 측면을 블록체인 생태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는 같은 뜻과 목적을 가진 사람 혹은 조직이 중개인 없이 효율적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키워나갈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꽃이라고 불리는 주식회사 제도도 하부 구조를 보면 협동이 존재한다. 즉 주식회사 내 협동 모델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식회사에는 불평등한 협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1주 1표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가 ‘코-워킹(co-working)’으로 돌아간다면 협동조합은 코-워킹 이상의 ‘코-오퍼레이티브(co-operative)’를 요구한다. 코-워킹과 코-오퍼레이티브는 다르다. 코워킹은 소유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같이 일하자는 개념이 강한 반면 코-오퍼레이티브는 코-워킹을 기본으로 깔고 운영에 동등한 역할을 부여한다. 함께 소유한다는 개념도 들어가 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라. 협동조합은 주식회사보다 쉬이 만날 수 없다. 그나마 서울우유나 농협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협동조합이나, 많은 사람은 이들이 협동조합인지 잘 모른다. 의사결정이나 자본을 모을 수 있는 효율로 따지면 주식회사가 협동조합보다 낫다. 집중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된 모델이 주식회사다. 다만 주식회사에서 얻은 결과물은 소수에게 집중되기 일쑤다. 주식회사 제도 자체가 아니라 운영상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 주식회사 제도는 권력과 부의 집중은 만들어내나 분배가 취약하다. 대안이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져도 분배에 대한 문제는 잘 다룬다. 1주 1표와 1인 1표의 차이점이다.


기존 은행이나 금융회사는 주식회사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소수가 금융을 장악하니 소수에게 이익이 몰린다. 문제는 금융이 가진 영향력에 있다. 금융은 여느 주식회사처럼 자신만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한정된 규모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 금융은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 시중은행 계좌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수백~수천 사용자를 가진 회사가 금융을 다루면서 소수 이익만 대변하면 다수의 이익을 침해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은 상품으로 보자면 사실 실체가 없다. 작은 자본으로 큰 규모의 여신을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여신을 만들어내는 데 누구의 결정으로 누구에게 제공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 제기가 협동조합 금융을 만들었다. 신용협동조합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신용협동조합은 십시일반 긴 시간에 걸쳐 금융을 만들어내나 소유자 등 소수에게만 혜택이 가지 않는다. 사람이 그것을 제어해왔다. 

협동조합은 쉽게 말하자면 조합원 간에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어 함께 이용하거나 운영하면서 이익이 나면 조합원이 함께 갖는 모델이다. 블록체인도 이와 같다. 규칙을 만들어 코드로 제어하면서 사람이 제어할 일을 기계가 대신한다고 보면 된다. 즉 협동조합을 기계로 적용한 모델이 블록체인이다.


기존 주식회사 모델을 온라인으로 확장한 것이 플랫폼이다.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등이 그것이다.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플랫폼 모델은 달리 말하면 주식회사의 온라인 버전이다. 그렇다면 협동조합 모델이 온라인에서 대규모로 조직된 개념은 있을까. ‘토렌트(Torrent)’가 떠오를 수 있으나 불법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식 서비스로 인정받지 못한다. 대신 퍼블릭 블록체인이 온라인 플랫폼에 대응하는 협동조합 확장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오프라인에서 협동은 쉽지 않다. 사람이 많이 모여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대리 구조나 대의제를 택한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가면 규모에 대한 문제가 쉽게 풀린다. 협동을 할 수 있는 단위가 커진다. 블록체인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규칙을 블록체인에 담으면 끝이다. 실행과 분배도 블록체인이 대행한다. 


다만 블록체인에는 단점이 있다. 규칙을 세팅하면 변화가 있을 때 취약하다. 이 또한 협동조합이 변화에 취약한 구조와 비슷하다. 상황이 변하면 상황이 변한 것을 논의하고 코드를 수정해서 넣어야 한다. 블록체인은 그렇게 진화하나 합의 구조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보니 쉽지 않다. 이를 위한 거버넌스 구조(의회 모델)가 필요하다. 보스코인이 블록체인 상에 의회(Congress)를 둔 이유다. 합의 알고리즘뿐 아니라 의회 구조를 두고 의회가 결정한 것을 블록체인에 반영한다. 

블록체인은 협동조합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한다. 협동조합 본연의 가치 외에도 더 나은 대안을 조직할 수 있는 기술이 블록체인에 있다. 조합원이 아니어도 블록체인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중개인 없는 거래가 가능하다. 의사결정권을 협동조합처럼 1인 1표로 묶어놓는다면 주식회사처럼 지분이 늘어난다고 권한이나 권력이 커지지 않기에 민주주의 구현에 유리하다. 블록체인에는 또 협동조합에 없는 장점이 있다. 사용자에게 암호화폐를 부여함으로써 동기를 유발한다. 커뮤니티의 질적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암호화폐 가치가 높아진다면 자신이 분배받을 수 있는 몫도 커진다. 돈의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특히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종종 협동조합 성장을 방해하지만 블록체인은 이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을 가졌다. 자본 조달을 비롯해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블록체인은 협동조합이 갖지 못한 열쇠를 갖고 있다.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협동조합이다. 몬드라곤의 성공에는 금융이 큰 몫을 했다. 산업과 금융이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물론 이를 단순하게 금산결합으로 봐선 안 된다. 기저에 깔린 ‘협동’과 ‘신뢰’가 밑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다. 블록체인을 통한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의 발현은 ‘글로벌 몬드라곤’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협동조합과 블록체인이 결합한 ‘쿱체인’의 등장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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