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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낭만 Jonathan Feel Jan 13. 2019

특혜나 차별, 갑질 없는 블록체인 알고리즘

[블록체인 선언] (16) 다른 화폐 시스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협동조합 지지자들은 협동조합이 비즈니스 구조와 사회에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사업 결실을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고 특정인에게 권력이 편중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더 나은 사회적 책임을 제공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이 2012년 12월 기본법 시행 이후 1만 개 이상 설립된 것은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과 관련이 있다. 


지금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갑질, 차별, 불평등, 특혜 등이 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지 규명을 시도하고 해결책도 내놓지만, 사실 답은 간단하다.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비극과 슬픔을 동반하는 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유와 같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결과가 갑질이고 차별이며 불평등이다.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으로, 그럴 수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가령 기후변화를 봐도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다. 미래가 미리 결정된 필연에 따라서 진행되진 않는다.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인류는 더 나은 방향으로 공생할 수도, 재앙을 만날 수도 있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기술이 향하는 향방은 달라진다. 기술 혁신이 세상이나 삶을 어떻게 이끌지 미리 결정된 필연은 없다. 사람이 하는 선택과 결정이 미래를 이끌 것이다. 2018년 3월 타계한 스티븐 호킹은 생전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만약 기계로 생산한 부가 공유된다면 모든 사람은 고급스러운 여가를 누리는 인생을 즐길 수 있다. 그게 아니고 기계 소유자들이 부의 재분배를 반대하는 로비에 성공한다면 대부분 사람이 비참한 가난에 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추세는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활용되는 후자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기술은 이른바 금융 혁신을 뒷받침했다. 금융 거래를 손쉽게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덕분에 금융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했다. 더 빠르고 쉽게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금융 상품은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침투했다. 국경을 넘은 세계화 추세도 가속화됐다. 금융회사는 더 쉽게 돈을 벌고 판을 벌렸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글로벌 대침체의 촉매로 작동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금융은 가난한 사람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돈이 사각지대 없이 현장 말단까지 돌 수 있어야 한다는 ‘포용 금융’은 실현되지 못했다. 디지털 금융 혁신은 소외를 없애고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 외려 불평등을 키웠다.


블록체인 역시 디지털 기술이다. 블록체인이 기존 디지털 기술과 다른 점은 중앙 집중을 없앤 분산화에 있다. 정보 분산과 함께 권력도 공평하게 분산될 수 있다. 이는 특정 소수에게 정보와 권력이 집중돼 특혜나 갑질, 불평등을 야기하는 원천이 차단됨을 뜻한다. ‘정보는 곧 권력’임을 감안하면 정보(와 권력)를 분산한 블록체인이 품고 있는 철학은 남다르다. 기저에 담대한 철학을 품고 있는 기술이다. 2008년 기존 금융시스템이 노출한 치명적 한계를 꾸짖으면서 등장한 블록체인은 새로운 금융 기술로 인식해야 한다. 


기존 금융 체계를 보면, 은행 등 거대 중개자에게 완전하게 의지하고 있다. 거대 중개자는 모든 상거래의 사업과 거래방식을 보장하고 진위를 판별해준다는 이유로 모든 정보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 중개자를 믿고 거래한다. 그러나 해킹을 당하면 이 중개자가 갖고 있는 정보가 노출된다. 더 심각한 것은 모든 재산을 탈취당할 수도 있다. 거대 중개자는 이런 위험 때문에 보안에 엄청나게 큰돈을 들인다. 당연하게도 그냥 큰돈을 들이지 않는다. 중앙집중화된 기술은 특정 집단이 과도한 이익을 챙겨갈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블록체인은 이런 단점을 보완한다. 장부를 여러 곳에 분산·기록하기 때문에 거대 중개자 개입이 필요 없다. 즉, 특정 집단에 휘둘리는 부당함을 막을 수 있다. 분권화된 기술로 불공평한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경제(Programmable Economy)’가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왜 정부와 금융기관만이 신뢰를 확보하고 화폐를 만들고 통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암호화폐는 특정 주체가 아닌 참여자의 ‘자기결정권’과 ‘자기선택권’을 기본 철학으로 탑재했다. 스스로 화폐를 발행하고 관리하고 책임지겠다는 담대한 철학을 선언한 것이다. 암호화폐는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두 증명된다. 모두가 거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기에 정보가 한쪽으로 쏠리는 일도 막아준다. 계좌 등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모든 블록을 해킹해야 하므로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에서는 누구 하나 작정하고 나쁜 마음만 먹으면 돈을 뺄 수 있지만 블록체인은 불가능하다. 


화폐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블록체인은 기존 경제 체제에 없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만연한 특혜와 차별, 갑질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중앙에 있는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같은 생각을 가진 지지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합의하여 만든 규칙을 알고리즘화 혹은 프로그래밍화 해서 관리자 개입 없이 운영할 수 있다. 


알고리즘, 프로그래밍이 대단히 복잡한 것도 아니다. 가령 한 개의 빵을 두 명이 사이좋게 나눠 먹으려고 한다고 보자. 공정한 분배를 위해 ‘한 명은 반으로 나누고, 다른 사람이 그중에서 하나를 먼저 선택하게 한다’는 원칙이 알고리즘이다. 그 규칙을 컴퓨터 언어로 바꿔 기계적으로 실행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프로그래밍이다. 약속된 프로그램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알고리즘 안에서 특혜나 차별은 없다. 기존 중앙화 된 데이터베이스와 달리 블록체인은 사람 개입 없이 알고리즘에 의해 모든 것이 관리된다. 블록체인 운영에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화 돼 있고 프로그램으로 작성돼 있어 별도의 통제기관 없이 관리가 가능하다. 이더리움이 이를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이라는 형태로 구체화했다. 스마트 계약은 자동으로 타당성 입증과 실행이 진행된다. 계약 조건을 충족하면 바로 효력을 발생하고 실행된다. 스마트 계약은 일부 혹은 전체에 모두 적용될 수 있으며 스스로 실행되고 강제될 수 있도록 만든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계약을 관리하는 3자 혹은 거대 중개인을 삭제한다. 빵을 나눠 먹는 사례처럼 개개인의 성향이 공정해서가 아니라 내가 공정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프로그래밍 경제는 모든 구성원이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하도록 만들 수 있다.

블록체인이 왜 태동했는지 되짚어보면 우리는 새로운 신뢰 체계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중앙(정부와 금융권)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갔다. 거대 중개자가 만든 세상을 보라. 그들은 모든 이권을 탈취했고 농락했다.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게 했다. 그럴 수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지 않았을 것이다. 불평등, 차별, 특혜, 갑질 등을 “인간사에서 불가피한 것” 혹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방치해선 안 된다. 불가능한 일은 있어도 불가피한 일은 없다. 원하지 않아서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갖게 됐다. 혁신 기술이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는’ 추세라고 말한 호킹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기회다.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은 마련됐다. 그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세상을 바꿀지는 우리 몫이다. 또 다른 화폐 시스템, 경제 구조,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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