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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athan Feel Apr 15. 2019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평등하게 커피 한 잔

[밤9시의커피] 4월 15일 떠난 링컨을 그리며

If this is coffee, please bring me some tea; 

but if this is tea, please bring me some coffee.

(이것이 커피라면 저에게 홍차를 가져다주시고

이것이 홍차라면 커피를 가져주세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미세먼지 자욱한 날, 유일한 위안은 공기는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재산, 학력, 신분 등에 상관없이 미세먼지는 들이켜야 했다. 물론 비싼 공기청정기를 사서 돌리거나 마스크조차 마련할 수 없이 가난한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미세먼지 없는 공기는 없다. 미세먼지는 평등하다. 그런 날에 밤9시의커피를 찾은 태호 씨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투덜거렸다. 


“아저씨, 미세먼지 공포가 너무 과도하고 막연하지 않아요? 마스크 쓴 사람들 보면 느닷없이 고담(주.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 도시)에 떨어진 것 같아요.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어요. 그렇다고 과거보다 미세먼지가 악화된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쓰라고 권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대요. 농도가 어느 정도일 때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데이터도 없는데 말이죠. 커피 주세요!”


그 투덜거림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죽하면 미세먼지에 좋은 커피가 무엇인지 묻는 사람도 생겼다. 농담으로 묻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정색하고 진지하게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땐 살짝 당황한다. 대체, 미세먼지에 좋은 커피가 있을까. 


“좋아요. 오늘 커피는 ‘링컨’으로 이름 붙였는데, 한 잔 줄까요?”

‘잔인한 4월’의 봄, 링컨이 생각났다. 링컨이 커피를 좋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링컨이 어느 레스토랑에서 꺼냈다는, 당최 의미를 알 수 없는 멘트에 대한 맥락은 모른다. 전해진 바로는 커피를 마신 링컨이 형편없는 맛 때문에 맛있는 커피를 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미국식 유머(?)를 작렬했다고 한다.


링컨은 '평등'


왜 커피 이름이 링컨이냐고 묻는 태호 씨에게, “평등”이라고 짧게 답했다.

태호 씨는 세상에 놓인 불평등, 특히 경제적 불평등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아니 활동가 혹은 운동가라고 보는 게 낫겠다. 그는 3월에도 ‘세계 여성의 날’ 앞뒤로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며 시위와 가두 행진에 참여했다. 무대에 올라 ‘성별 임금 불평등’에 대한 통계와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말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링컨이 어울릴 것 같았다. 


노예제 폐지를 향한 링컨의 신념은 확고했다. 이런 말도 던졌다.

“노예제도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세상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확신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기원을 둔다. 독립선언문에 기재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문구. 미국 독립혁명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처럼 노예제 폐지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이 죽은 지도 150년이 지났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2.12 ~ 1865.4.15.). 1865년 4월 14일,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한 링컨은 가까이 있는 페터슨 하우스로 옮겨졌고, 이튿날 오전 7시 22분, 사망 선고를 받았다. 56살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미국 독립선언문에 기초해 ‘흑인=노예’라는 제도적 틀을 깼던 평등의 아이콘이 스러졌다.


물론 노예 해방에 대한 링컨의 진심을 둘러싼 의심도 여전히 떠돈다.

의심의 핵심은 링컨이 노예제 폐지보다 연방 통일에 더 중요한 방점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링컨은 남북전쟁 발발 후, 한 기자에게 쓴 서신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전쟁에서 내 최고 목표는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도를 구하거나 파괴하는 게 아니다. 노예를 해방하지 않고도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요, 노예를 해방해야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링컨 역을 맡았던 영화 <링컨>을 보면 그 반대에 가깝다. 연방 유지라는 명분과 전쟁의 유리한 국면을 위해 노예제 폐지를 들고 나왔다면 굳이 노예제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킬 필욘 없었다. 영화 속 링컨은 종전이 되면 노예제 폐지 법안이 폐기될 것을 우려해 전쟁이 끝나기 전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키고자 온갖 애를 쓴다. 의원 설득은 물론 이해와 갈등을 조율해가는 링컨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멋지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당연한 노예제를 없애고자, 세상을 바꾸고자 애썼던 사회혁신가 링컨이 거기에 있다.   


“링컨을 연방주의자와 노예해방론자 사이에서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태호 씨가 물었다. 나는, 다른 말보다 커피를 건넸다.  

“자, 링컨을 위하여. 평등(Equality)!”

연방 통일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손, 노예제 폐지를 위한 링컨의 신념을 의심하고 싶진 않았다. 

“맛은 어때요? 링컨이 건넨 유머처럼 차(tea)로 바꿀 이유는 없죠? 하하.” 


커피를 마신 태호 씨가 답했다. “와우, 커피 맛 참 좋은데요. 뭐랄까. 세계의 평등한 기운이 느껴져요. 이것이 커피라면 평등을 가져다주세요. 하하”  

우리 둘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우울증 앓았던 수다쟁이 링컨

링컨은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다. 

헌데, 그 우울증이 ‘저주받은 축복’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우울증 덕분에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견해다. 어릴 때부터 타인, 동물의 불행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링컨은 남부(켄터키 주) 출신이었지만 노예 해방에 관심을 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링컨은 우울이 밑바닥을 향하게만 놔두지 않았고 타인의 우울도 함께 바라봤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링컨은 과장법까지 써가며 유머를 섞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노예제에 찬성한다고 할 때마다 그를 노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느 정도 실제 모습을 반영했겠지만, 영화 속 링컨은 수다쟁이요, 이야기꾼이었다. 단순한 수다쟁이 이야기꾼과 다른 링컨의 ‘문학성’도 우울증에서 발현되었던 것 같다. 그는 특히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즐겨 인용했다. 죽음을 품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詩와 우울을 희석해줄 유머에도 탐닉했다.


커피를 마시던 태호 씨가 다시 물었다. “링컨이 그렇게 수다를 잘 떨었어요?” 링컨에 대한 호기심이 그의 눈을 반짝이게 한다.  

링컨의 언설은 탁월했다. 연설하거나 남을 설득할 때, 그의 목소리는 흡입력이 있었다. 영화 속 링컨이 그런 것 아니냐고? 역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링컨은 뭣보다 달변가였다. 영화는 그런 링컨을 잘 그리고 있다. 링컨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섯 공리 중 하나인 ‘동일한 것의 같은 것은 서로 같다’를 인용하면서 인간은 평등하며 동등한 인권을 갖는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을 바로 정의라고 힘주어 말하는 링컨의 모습은 시큰한 감동을 안긴다. 지금 우리가 처한 비정규직 문제와도 겹쳐 보인다. 숱한 불평등에 노출되고 그 간극이 더 커지는 상황에 처한 우리 모습과 오버랩된다. 


“평등하며 동등한 인권을 갖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물론 어려우니까, 지금도 계속 그 문제를 풀고자 애쓰고 있는 거겠죠?” 


"자유! 그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태호 씨는 불평등을 연구하면서 종종 갑갑함을 느낄 때면 밤9시의커피를 찾아 넋두리를 늘어놓곤 했다. 우리는 그럴 때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토론을 펼치곤 했다. 오늘도 그럴 기세다. 


“인류 역사는 넓게 보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역사라고도 하잖아요. 노예제를 무너뜨린 근간에도 자유를 향한 숱한 외침이 있었고요. 링컨과 같은 정치가도 필요했지만 그런 정치가를 움직인 건 세상 평범한 장삼이사 아니었겠어요? 슈퍼갑의 사회를 깨뜨리는 출발선에 ‘을’의 성찰과 아우성도 있었으니까요. 영화에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고 뭉클했던 장면이기도 해요.”


<링컨>에서 영부인의 흑인 하인과 링컨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둘은 노예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생계유지 등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놓고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는 '노예 해방 뒤'에도 이른다. 하인(이름을 알지 못하는 건 참 미안하다!)도 링컨도 알 수 없는 미래였지만, 하인은 이렇게 힘주어 말한다. 

“자유가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 묻기 전에 자유를 찾는 게 먼저죠. 전쟁이 끝났을 때 평화에 대한 준비는 돼 있나요? 자유를 얻었을 때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몰라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으려고 싸우다가 죽었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자유. 그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태호 씨는 그때 그 장면에서 심장이 울컥했다고 말했다. 그 자유의 아우라가 내 몸을 휘감는 전율이 일었다고 덧붙였다. 태호 씨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을’로서 살아왔던, 아들을 백인의 무분별한 폭력에 잃고 말았던 그 하인이 몸으로 체험하지 못했으나 온 생을 관통해 갈망했을 자유였다. 먹물이 개념처럼 내뱉는 자유보다 더욱 절절하고 쫀득한 자유의 외침이었다. 자유는 그런 거 아닐까. 평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엇. 우리의 본능이 요구하는 자유와 평등. 손익 따위를 계산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산소 같은 것. 


“음, 아마 링컨이 노예제 폐지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그의 신념도 있겠지만 자유와 평등, 정의를 요구한 인민들이 있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링컨으로 하여금 그걸 요구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것 아닐까요?” 태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건넸다. 


“나도 동의해요. 그걸 위해 정치적으로 저열하다는 얘기까지 들으면서도 링컨은 우직하게 밀어붙이더라고요. 혹자는 더러운 음모와 술수라고 표현하겠지만, 정치가 어쩌면 궁극적으로는 고귀한 행위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더라고요. 왜 정치가 필요한지, <링컨>은 조목조목 느린 속도로 차곡차곡 쌓아가요. 우리가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사유할 수 있는 영화였어요. <링컨>은.”

우리는 그날, 미세먼지부터 시작해 노예 해방과 비정규직 문제 등을 관통하면서 자유와 평등을 찾아다녔다. <링컨>은 좋은 콘텍스트였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끈기도 필요하고, 미국 역사와 노예제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더욱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봄밤, 평등과 자유를 그리며


노예 해방을 둘러싼 미국 남북전쟁은 끝났지만 지구는 여전한 ‘남북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 공업화 정도와 경제 격차로 인한 구조적 문제가 그것이다. 커피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해야 한다.


링컨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하고 수다를 떨 듯, 우리도 커피 한 잔을 놓고 그렇게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우리는 ‘평등’과 ‘자유’를 마시면서 봄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링컨이 목구멍으로 집어넣다 말고 차로 바꿔달라고 농을 던졌던 커피가 아닌 링컨과 인민의 피에 흐르는 평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블렌딩 한 커피로. 우리에게 링컨 같은 대통령이 없음을 한탄하지 않고, 링컨(권력)을 움직이게 만든 가치를 말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유, 평등, 우애, 사랑 등 모든 가치가 돈(경제)으로 귀속되게 만든 우리의 무딘 감수성을 커피로 촉촉하게 적시면서.  


어디선가 밤이 돌아눕는 소리가 들렸다. 

태호 씨가 詩 한 구절을 읊었다. 밤이 이를 따라 읊조렸다. 밤이 아프다고 말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그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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