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친구의 두 아이가 학교를 못갔다. 나를 보면 늘 맑은 눈망울로 환하게 웃어주던 아이들. 중학교 1학년이 된 똘똘한 첫째 아들도, 어디든 팔짝 팔짝 뛰어다니는 귀여운 일곱살 둘째아들도, 아버지 사업 사정이 어려워져서 학비를 내지 못하게 되자 하루아침에 매일 가던 학교에서 등교 거부를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돈이 마련되어 다시 학교에 가기까지의 그 2주는 정말 길었다. 홀로 남은 텅 빈 동네가 싫어 집에만 있었던 두 아이들에게도, 매일 매일 돈을 구하러 다니는 아버지에게도, 풀이 죽어 있는 아이들을 지켜봐야만 했던 어머니에게도 그 2주는 정말 긴 시간이었다. 잡힐듯 잡히지 않던 돈이 마련되어 마침내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그 일이 가족에게 준 상처는 여운이 길었다.
너무 당연해 공기처럼 느껴지는 한국의 무상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안전망인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 아이들에게 동일한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할때면, 부모로써의 그 좌절감과 무력함과 미안함에 울컥함이 차오르는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그 부모님들이 겪으셨을 아픔과 슬픔이 이러했을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눈물 흘려 일궈내신 그분들께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