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감기 기운이 느껴져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체온을 재고 목을 들여다보더니,
"많이 부었네요."라며 삼일 분 감기약을 처방해 줬다.
집에 돌아와 약봉투를 살펴보니 해열제, 항히스타민제, 소화제, 그리고 항생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 증상에 항생제가 필요한가 싶었다.
문득 예전에 유튜브에서 본 재미교포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항생제는 세균성 감염에만 효과가 있으며, 대부분의 감기는 바이러스 감염이라 항생제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의사는 항생제를 남용하면 장내 유익균이 죽고 면역력이 저하되어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오랜 기간 쓰게 되면 내성이 생겨 결국에는 항생제가 안 듣는 슈퍼박테리아로 인류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의사들은 감기에 항생제를 너무 쉽게 처방한다고 했다.
이 말이 떠오르자, 나는 처방받은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항생제를 빼고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단호하게 "나이가 있어서 편도선염이나 폐렴으로 진행될 수 있으니 처방 그대로 다 먹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말투에는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판단하기로 했다. 증상이 경미했고, 모든 감기 환자에게 일률적인 처방을 하는 현실에서 내 몸을 지키기 위한 책임은 내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싱크대 서랍을 열어보니 가족들이 먹다 남긴 약 봉투들이 여럿 있었다. 감기약에는 모두 항생제가 들어있었다. 심지어 몇 달 전 감기에 걸렸던 네 살 손주의 약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손주는 열이 38도 정도였는데, 나는 아이의 면역반응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판단해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지만, 부모는 곧장 병원에 데려갔다. 나는 더 말릴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그 약봉투를 보고 네 살 아이에게도 어른과 같은 항생제를 처방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득한 옛날, 국민학교 3~4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집안일은 친척 누이에게 맡기고 밖에 나가 바쁘게 일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자랐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아플 때는 항상 집에 계셨다. 학교에 못 나갈 정도로 독한 감기에 걸리면 어머니는 약국에서 지어온 감기약과 함께 말린 귤껍질을 끓인 물에 설탕을 타서 마시게 하셨다.
노랗게 우려난 달콤한 그 물을 마시고 온돌방에서 이불을 덮고 자고 나면 감기는 싹 나았다. 어머니는 열이 내린 우리의 이마를 짚어보며 "이제 괜찮다"라고 안심하시고 쇠고기 국을 끓여주셨다.
그러한 시간이 너무 좋아 나는 때때로 감기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수업 중 감기 증세도 있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조퇴를 하고 어머니의 가게로 향했다. 놀란 어머니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나는 그때 병원은 무조건 주사를 맞는 곳이라 생각해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병원은 일본식 기와집을 개조한 소아과였다. 백발의 노의사는 청진기를 댄 후 내게 부드럽게 학교 이야기를 물으며 긴장을 풀게 했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뭔가 지시했다. 간호사는 주사기가 아니라, 우동과 짜장면 중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우동을 골랐고, 배달된 따뜻한 우동을 먹은 뒤, 간호사는 내게 주사도 안 놓고 약도 안 주고 그냥 집으로 가라고 했다. 물론 그 뒤로 감기는 씻은 듯이 싹 다 나았다.
그 시절에는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요즘처럼 병원도 흔치 않았고, 건강보험도 없었기에 병원비는 큰 부담이었다. 감기가 걸리면 대부분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었고, 항생제는 특별한 경우에만 병원에서 주사제로 사용됐다. 감기의 대부분은 바이러스 감염이다. 따라서 증상을 완화하는 약은 있지만 바이러스를 죽이는 근본적인 치료제는 없다. 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감기 환자 중 실제로 세균감염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5~10% 정도 라고 한다. 그런데도 '혹시 모를' 2차 감염을 막는다는 이유로 감기의 초기 단계부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항생제를 투여해 버린다.
네 살 손주의 감기약에서 내가 먹으려던 것과 같은 항생제가 나왔다는 사실은,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우리 의료 현실에 대한 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날 손주가 병원에 갈 때 함께 따라가서 항생제를 빼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했더라면 하는 자책도 남았다.
그래서 오늘, 내 감기약 봉투가 왠지 모르게 사악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그것을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버렸다.
오늘 저녁은 마포의 중국집에서 마누라와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을 먹기로 했다. 어린 시절, 그 백발의 할아버지 의사가 처방해 준 가장 따뜻했던 감기약, 바로 그 한 그릇을 기억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