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아픈 사람이 가는 병원

by 가야천

1. 거울 앞에서 시작된 불안


아침 세안 후 거울을 보다가 왼쪽 귀 아래에 생긴 작은 갈색 반점이 눈에 들어왔다. 새끼손톱만 한 크기에 표면은 거칠고 딱딱했다. 몇 주 전에도 본 기억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자 불안감이 커졌다.


출근 후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기미나 검버섯 외에도 피부암 가능성이 있다는 글들이 눈에 띄었다. 모양이 좌우 비대칭이거나 경계가 불분명하면 바로 병원에 가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얼굴을 들여다봐도 대칭 여부나 경계의 선명함을 판단하기 어려웠고, 결국 병원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2. 진료보다 미용이 앞서는 병원


포털에서 '피부과'를 검색했더니 대부분 미용 시술 광고였다. 피부병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동네 지하철역 근처 피부과 의원이 문득 떠올라 퇴근길에 들러기로 했다.

병원은 넓고 깔끔했다. 고급스러운 소파와 의료기기 홍보물이 눈에 띄었고, 대기실에는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 앉아있었다. 20분쯤 기다려 내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플래시 달린 돋보기로 반점을 살펴보더니 "상처 딱지인가?"라며 혼잣말을 했다. 발견한 지 보름쯤 되었다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약을 일주일 분 처방할 테니 다 먹어보고도 안 없어지면 그때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라고 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자, "지금은 단정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처방을 내리는 듯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그 소리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3. 마음보다 더 무거운 다리


약국에서 받은 약 봉투를 확인하니 항히스타민제와 소염제, 그리고 위장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집까지 걷는 길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퇴직 후 전립선암과 방광암 진단을 받고 수차례의 수술과 치료과정을 겪은 사람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옵니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에 기다리는 일주일은 내게 트라우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걱정할까 싶어 "별일 없었다"라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진실을 캐묻고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4. 다시 찾은 병원, 다른 태도


아내는 집 근처에 신뢰할 만한 피부과가 있다며 함께 가보자 했다. 나는 처음 병원에서 받은 불쾌한 진료가 마음에 남아 망설였고, 며칠간 약을 복용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불안정한 모습에 결국 아내가 강하게 나섰고, 우리는 금요일 오후 다시 병원을 찾았다.

30분쯤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가자, 중년의 남자 의사는 환부를 살펴본 후 단번에 말했다.

"검버섯이네요!"

아내가 "피부암과는 관계없나요?"라고 묻자 의사는 "피부암과는 모양이 전혀 다르다"라고 확신에 찬 답을 했다. 몇 주 전 공원에서 운동하다가 벌레에 물린 듯 가려워 심하게 긁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의사는 " 검버섯을 긁어서 상처가 난 것"이라며 연고만 처방했다.

하루 연고를 바른 후 환부의 거칠고 딱딱한 느낌이 사라졌고, 며칠 뒤 반점의 색도 옅어졌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5. 병원은 누구를 위한 곳인가


마음이 놓이자 처음 병원에서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 다시 떠올랐다.

처음 방문했던 병원 홈페이지에는 온통 피부미용 광고뿐이었다. 고객 리뷰도 대부분 젊은 여성들의 칭찬 일색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꼼꼼하고 자상하다"는 리뷰를 읽으며, 나에게는 왜 그렇게 무관심했는지를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악플을 달까 하다가 그만뒀다. 병원을 잘못 고른 내 책임도 있지 않은가 싶었다. 의료계의 현실을 남들보다 조금 더 안다는 내가 그 선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 병원은 아픈 사람이 가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은 안 아픈 사람도 병원을 많이 찾는다. 병원도 건강보험 급여환자보다 비급여환자를 더 선호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의대생들이 선호하는 전공과는 외과, 내과보다 미용을 겸해서 하는 피부과나 성형외과라고 한다.

그래서 이비인후과도 코성형을, 안과도 쌍꺼풀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데가 있다고 한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우대받는 이상한 병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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