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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May 21. 2023

나의 도깨비 신랑

당신이 필요해요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혈압이 222입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의사 말에 놀란 남편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인지 몸살 기운이 왔다. 토요일인지라 종합병원과 한의원 들러 치료를 받고 왔다. 잠을 자고 싶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도깨비' 드라마를 연이여 4시간 정도 봤다. 저녁 5시쯤 되자 머리가 아팠다. 집에 있는 두통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이 퇴근하면서 사 온 두통약을 두 알이나 먹었는데도 오히려 더 심해졌다. 남편은 응급실에 가자고 했지만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거부했다. 고집불통이라 그가 말했다. 술을 먹기 전에 응급실에 가자는 남편의 말을 무시했다. 나아질 줄 알았다.



남편은 삼겹살을 굽고 된장찌개를 끓여 저녁상을 차렸다. 술을 좋아하는 그가 건강을 위해 술을 줄여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술을 먹기로 다짐한 한 날이다. 술잔을 따르는 그를 보고 혹시나 모르니 술을 먹지 말았으면 했다. 이미 술이 들어간 후였다. 두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지고 있었다. 남편은 응급실에 가자는 말을 했다. 또다시 거부했다. 두통약을 세 알이나 먹었으니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기우였다. 끙끙 앓은 소리를 나도 모르게 냈다. 아파하는 날 보더니 남편은 안 되겠는지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자기가 운전해 가야겠다며 차 열쇠를 챙겼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화를 냈다. 아파하는 날 보고 그가 이성을 잃었다. 아파하는 날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남편임을 알고 있다. 견딜 수 없어 아파하는 날 보며, 날 걱정하는 그를 보며 우린 잠시 티격태격 다투었다. "그러니까 응급실 가자고 할 때 가야지." "그러니까 당신이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지." 예민한 대화를 를 주고받은 사이에도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결국 택시가 잡히지 않아 아들을 시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택시 안에서 앉아있을 수 없어 뒷자리에 누웠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응급실 의자에 누웠다. 머리가 너무나 아팠다. 울음이 나왔다. 놀란 남편이 급한 사정을 알렸고, 1시간이나 되는 대기 시간을 제치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혈압이 222이었다. 급하게 뇌 CT를 찍고 피검사를 했다. 혈압은 한참이나 떨어지지 않았다. 진통제를 두 번이나 투여했으나 머리는 여전히 너무 아팠다. 울면서 말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남편 손을 잡아야 살 것 같아 남편 손을 잡았다. 겨우 안심이 되었다. 혈압이 175로 떨어지자 머리 아픔이 조금 사라졌다. 한 시간이 지나도 혈압은 160이었다. 응급실에서는 180 이상만 입원할 수 있어 퇴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가 말했다. 다행히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진통제와 어지럼증 약을 타오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걸을 수도 없는 통증을 겪으면서 무서웠다. 눈물이 나왔고 그 와중에 남편이 가져온 개망초가 생각났다. 도깨비 드라마를 보다 도깨비 신랑이 도깨비 신부에게 준 메밀꽃을 보고 "꽃을 받고 싶다" 남편에게 말했다. 차를 놓고 와서 꽃을 못 사 오겠다는 말에 알겠다고 한숨을 쉬고 끊었다. 띠르릭 그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다. '굿모닝'(그는 늘 퇴근하면서 굿모닝이라 말한다. 웃기는 인사이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여긴다) 그의 저녁 인사가 밝다. 대답이 없자 굿모닝을 몇 번이나 외친다. 고개를 드니 그의 손에 보라색 개망초가 들려있다. 이쁘다. 환호성을 지르며 받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어떻게 내가 갖고 싶은 꽃을 딱 맞게 가져왔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꽃병에 개망초를 꽂고 꽃멍에 빠졌다. 이 남자가 좋다. 내 맘을 알아주는 이 남자, 마누라가 갖고 싶다는 것은 어떻게라도 만들어내는 도깨비 같은 신랑. 그래 그는 나의 도깨비 신랑이다.



그 남자가 놀라 어쩔 줄을 몰라한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날 안고 병원까지 걸었고, 혈압이 220을 넘은 나를 보며 왜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지 걱정 가득 의사에게 물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펼치고 나를 눕히며 아프지 말라고 다독이면서 근심이 한가득이다. 만약, 그가 지속적으로 응급실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리석은 나는 집에서 혈압이 222를 넘은 무서운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응급실에 갔기에 나는 살 수 있었다. 그가 나를 살렸다. 응급실에 누워있으며 생각했다. 개망초의 꽃말처럼 만약 어떤 상황이 닥친다면  *'나를 잊지 말기를'을 읊조렸다. 다행히 그 말은 현실이 안 되어 고맙고 고맙다. 아침에 일어나 그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떡국을 끓이는 모습을 보고 있다. 뒷머리가 눌려 위로 솟아 있는 그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당신 도깨비 같다고 말했다. 그가 피식 웃었다.



극심한 고통, 죽을 만큼의 두통이 무서웠다. 세상이 꺼지는 듯한 세상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듯한 어지러움, 머리를 누군가 심하게 두드리는 듯한 두통 그 아픔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더 이상 이런 고통은 안 겪어야지 다짐했다. 운동을 해야겠다. 살기 위한 운동 말이다. 건강하게 지내자. 남편을 위해서라도.



 아침에 일어나 나를 안던 그가 말했다.

"제발, 아프지 마아."

그를 위해서 빗방울까지 조심한다고 했는데 난 여전히 나를 아끼지 못하고 있다.






*개망초 꽃말을 다시 검색해 보니 '화해',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 준다'이었다. 그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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