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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Jun 18. 2023

꽃보다 네가 더 이뻐




건강검진 날이다. 연차를 낸 남편과 부산 KMI한국의학연구소로 향했다. 이미 많은 검진자들이 대기실에 가득이다. 카운터에 주민번호를 말하자 카드 목걸이를 발급해 주었다. 안내대로 번호가 적힌 검사실로 향했다. 카드를 찍자 대기 번호가 찍혔다. 앞 대기자들 이름이 한참이나 불러 나가자 순서가 왔다. 검사가 끝나자 간호사가 다음 검사실 번호를 알려주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반복적인 일을 생각 없이 진행하자 불현듯 어렸을 때 보았던 찰리 채플린 흑백 영화가 생각났다. 특정한 일을 표정 없이 반복한 장면이다. 맥락 없이 대기자들이 자본가의 컨베이어 벨트에 돌아가는 부속품 같다 생각했다.


장장 3시간 30분을 소요한 12시 30분에야 검사가 끝났다. 혼자 있을 남편이 걱정되어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루했느냐고 묻자 그가 배고프다고 말했다. 일찍 서둘러 올라와 아침을 먹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오후 일정을 의논했다. 남편은 함양 걷기 좋은 길을 검색했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회사에서 시상금으로 받은 롯데상품권을 사용해 여름 정장을 사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가 알겠다며 김해 아울렛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찜통더위를 온몸으로 확인했다. 놀라 기온을 보니 30도다. 6월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면 한여름은 어떨지 걱정이라며 우린 지구 환경을 걱정했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지구 온난화를 대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하자 다짐도 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서둘러 들어간 매장 안은 빵빵한 에어컨으로 시원했다. 에어컨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일초 전 지구 환경 걱정하던 우리는 온데간데없이 말이다. 깔끔한 매장 가득 펼쳐진 새 옷을 보고 있자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떤 옷을 선택할지 고민하자 사장이 흰색 정장을 권유했다. 내가 고른 아이보리 정장도 입어보니 맘에 쏙 들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심각하게 고민하자 남편이 끼어들었다.

"뭘 고민해? 두 벌 다 사면되지."

이 멘트 맘에 든다. 그럼에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돼? 돈 많이 들 턴데?"

제발, 이 소리를 못 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순간, 그가 카드를 꺼내 사장에게 전달했다. 결재를 진행하고 돌아선 그를 향해 고맙다며 두 손 모아 90도로 인사했다.


숙소에 들어가서도 새로 산 옷이 눈에 아른거렸다. 입어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가 고맙게도 차에서 옷을 꺼내왔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매장에서 입어 본 느낌보다 더 맘에 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 옷 너무 이쁘지? 그치? 그치?"

한참 쳐다보더니 그가 말했다.

"네가 옷보다 훨씬 이뻐!"

"뭐야? 말을 왜 이렇게 이쁘게 해. 기분 좋은 말 하는 법을 따로 공부한 거야?"

(참고로 신랑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다)


그가 동문서답이다.

"어떻게 옷하고 널 비교해"



'뭐야? 설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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