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이 만들어낸 최고의 여행
현충일 덕분에 6일(금)부터 8일(일)까지 3일간의 연휴가 생겼다. 남편은 이 황금 같은 연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제 일주일 남았다”라고 말하더니, 3일 전부터는 마치 소풍 전날 아이처럼 들떴다. 여행 전날이 되자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날씨도 도왔다.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서둘러 고속도로에 올랐다. 남편이 “오늘은 새로운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어보자”며 마침 눈에 띄는 마이산 휴게소를 제안했다. 흔쾌히 동의했고 그 선택은 성공이었다. 고명 가득한 라면은 보통 휴게소 음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기, 김치, 콩나물, 버섯까지 들어간 정성스러운 라면은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첫 목적지는 보령의 죽도 상화원이었다. 그저 작은 섬일 거라 생각했던 죽도는 뜻밖의 선물 같은 여행지였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 같은 섬, 그 안엔 다양한 미술 전시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수국화, 현대화, 민화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눈이 즐거웠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바다체험길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록 연휴라 사람들이 많아 고요함은 덜했지만 평일이었다면 평온함을 즐길 수 있는 쉼터가 될 곳이었다. 특히 무더운 날씨에도 걷는 길 위에 지붕이 설치되어 있어, 시원한 그늘 아래를 해풍을 따라 걷는 즐거움이 컸다. 시원한 그늘 덕분에 남편과 손을 잡고 걸었다. 작은 섬에 갇혀 섬 분위기에 취한 순간, 힐링이었다.
상화원을 나와 스카이바이크를 타러 갔지만, 아쉽게도 표가 매진되어 있었다. 미리 예매하지 못한 탓이다. 대신 대천해수욕장을 거닐며 바다를 만끽했다. 바다를 빠져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끌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회덮밥을 먹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묵을 숙소가 생각나 급하게 숙소를 잡기로 했지만 불안했다.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보령의 숙소는 이미 만실. 결국 1시간 30분 거리의 대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대전은 대도시답게 숙소가 많았다. 깔끔한 호텔을 어렵지 않게 예약할 수 있었고, 주변에 맛집도 많았다. 구석구석 기웃거리다 고기 부위별로 구워주는 식당을 발견해 저녁을 먹었는데, 15만 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만족감은 최상이었다.
여행 둘째 날, 우리는 대전까지 온 김에 계획을 바꿔 속리산으로 향했다. 사실 보령에서 다른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지만, 변경된 계획은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계획되지 않은 속리산은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지만 늘 새롭다. 편안한 세조길을 걸어간 후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문장대에 올랐다. 초록이 우거진 속리산을 걷는데 여름의 생동감은 가을·겨울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정상에서의 풍경은 여전히 감탄을 자아냈다. 발목이 살짝 시큰거리긴 했지만, 큰 무리 없이 산행을 마쳤다는 점도 감사했다.
하산 후 점심을 간단히 먹고 또다시 대전의 호텔을 예약했다. 어제보다 더 만족한 사성급 호텔이었다. 대도시답게 숙소 근처에는 다양한 식당이 즐비했다. 많은 식당 중 남편이 원하는 오마카세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좁은 식당 안이 온통 남자들뿐이라 괜히 쭈뼛해졌다. 남편의 팔을 끌고 나오며 남자들이 많아 싫다 말했다. 남편은 그 상황을 한참 웃으며 놀렸다. 그렇게 다시 소고기집으로 향했다. 오픈한 지 8일이 되었다는 식당은 정갈했고, 젊은 직원들의 친절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고 깨끗하고 조용한 숙소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는 남편에게 숙소가 깔끔해서 음식이 맛있어서 도시가 친절해서 속리산 풍경이 좋아 이번 여행은 “100% 만족”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실, 우리는 둘 다 MBTI에서 P형(인식형)이다. 특히 여행에서는 더더욱 즉흥적이고 유연하다. ‘무계획이 곧 계획’이라며 계획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는 스타일이다. 계획 없이 움직이다 보면 간혹 오늘처럼 숙소를 예약하지 못한 불편도 생기지만, 그보다 더 자주 우연한 행운이 찾아왔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보령의 숙소가 없어 대전으로 향했고, 덕분에 더 좋은 숙소와 다양한 음식, 대도시의 편리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연히 방향을 틀어 머문 대전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했다. 고르고, 누리고, 먹고, 쉴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이 도시에는 있었다. 보령 바다의 시원함과 산의 고요함, 도시의 편리함까지 오가며 누린 이번 여행에서 가끔은 계획보다 우연이 더 탁월할 수 있음도 마주했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차 안에서 손을 마주 잡고 행복하다 말했다. 아무 계획도 없었지만 모든 순간이 채워졌고, 방향도 없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고 즐거웠다.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어디서든 좋았다.
무계획인 여행이었지만 우리가 함께 걷는 순간이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