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5월 5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남편과 함께 충남 보령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남편 회사 일이 바빠 여행은 취소되었다. 4일간의 연휴, 무얼 하며 보낼까 고민하다 문득 마음이 이끄는 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책을 꺼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4.3 제주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려왔다. 아픈 제주의 역사 앞에 분노가 치밀었고, 권력을 위해 생명을 도구처럼 여긴 자들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일었다.
한강은 책 속에서 고백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기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를 쓰며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고. 작가 자신의 감정이 작품의 인물로 투영되어 있었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소년이 온다』를 처음 읽은 건 오래전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에 책을 샀고, 3분의 2쯤 읽다가 덮었다. 그때는 뭔가 허전했다. 왜 그런 잘못된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듣고 자란 광주의 비극과 비교해 내용이 너무 '차분하다'고 느꼈던 탓일까. 그 시절, 나는 전남 작은 섬에 살던 초등학생이었다. 어른들은 광주의 일을 쉬쉬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고, 나는 임산부가 칼에 찔리고, 어린 학생들이 죽임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포에 떨었다.
세월이 흘러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광주 이야기는 점차 기억 속에서 흐릿해졌다. 하지만 고맙게도 5.18의 진실은 증언과 기록, 영화와 책을 통해 다시 살아났다. 어린 시절 들은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소년이 온다』의 작가의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너무 ‘자극적인 장면’을 기대했던 건 아닐까? 책을 읽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덮어버렸다. 그때의 내가 부끄럽다.
다시 읽기 시작한 『소년이 온다』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주인공들의 고통과 공포가 고스란히 마음에 와닿았다. 친구의 시신을 남겨두고 도망쳐야 했던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호, 시체를 닦고 기록했던 은숙과 진숙, 고문으로 자궁이 찢기고도 끝까지 침묵했던 그녀들, 아들의 시신을 찾아 헤매던 부모들, 결국 살아남은 자의 고통으로 자살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시민들...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몇 번이고 책을 덮고 울었다. 펑펑 울고, 다시 읽고, 또 울었다.
역사를 모르면, 우리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광주는 특별하다. 언론이 봉쇄된 상황 속에서 외신 기자들의 보도로 세계에 참상이 알려졌다. 국민은 몰랐고, 광주는 고립되었다. 그럼에도 광주 시민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목숨을 담보로 민주주의를 지켰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어릴 적,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텔레비전 속 무식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으로 그려졌다. 나는 경상도로 시집 와서도 오랫동안 고향을 당당히 말하지 못했다. 지역감정이라는 이름 아래 나 역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깨운 건 다름 아닌 한강의 글이었다. 쉽지 않은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잊혀질 뻔한 역사를 끌어올린 그녀의 용기에 마음 깊이 감사한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무지에서 깨어나게 했다. 그리고 다짐한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나는, 민주 시민들과 작별하지 않겠다. 그들이 목숨을 받쳐 지켜낸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올바른 지도자를 뽑는 일에 책임을 다하겠다. 그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