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우주와 지식에 설렘을 느낀 과정
“우주에서 본 지구는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 『코스모스』
몇 년 전, 큰맘 먹고 양장본 『코스모스』를 45,000원에 샀다. 유시민이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을 가져간다면?”이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코스모스』를 꼽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1순위'로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하지만 책장에 꽂힌 채 시간이 흘렀다. 500쪽이 넘는 두께와 낯선 천문학이라는 장르는 내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해마다 '올해는 꼭'이라는 다짐을 했지만, 첫 장을 넘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 모임에서 『코스모스』가 선정되었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혼자서는 시작하기 어려웠던 책을 책임감이라는 동력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마침 조용한 시간도 주어졌다. 남편이 휴일 출근을 하게 되어 온전히 책과 마주할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고, 처음 책을 구입했을 때의 설렘이 다시 찾아왔다.
『코스모스』는 천문학 책이면서도 인문학처럼 유려했고, 작가 칼 세이건의 문장력은 단박에 감탄을 자아냈다. 방대한 지식을 세련된 문장으로 풀어낸 그의 글을 읽으며,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처음의 감탄을 간직할 수 있었다. 좋은 책을 선정하는 기분도 짜릿하지만 글 잘 쓰는 작가를 만나면 황홀하다. 더구나 과학과 철학, 인문학을 아우르는 지식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코스모스』는 내게 그런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명료한 문장, 폭넓은 시야, 우주에 대한 경외감은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우리는 별의 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우주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우주의 기원을 따라가며 점점 작아지는 나를 느끼던 그 순간, 세이건은 되려 인간 존재의 경이로움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하찮은 티끌이라고 느끼던 존재는, 어쩌면 우주가 스스로를 인식하고자 만든 창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깨달음이,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깊은 감동이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나는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가. 이 넓은 시공간 속에 지구라는 점, 그 안에 나라는 존재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다. 그런데도 나는 그 점 안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던 걸까.
얼마 전, 사소한 오해 하나로 며칠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앞에서는 한순간의 파동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작은 진동에 휘둘려 평온을 놓치고 말았다. 빅뱅 이후 탄생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나와 타인.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별의 재로 이루어진 존재일 뿐인데, 왜 그렇게 애써 상처 주고 고집을 부리며 살아야 했을까. 흔들렸다.
책 속에는 빅뱅, 블랙홀, 웜홀, 팽창 우주, 도플러 효과, 퀘이사 같은 낯선 단어들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들을 마치 '맛있는 간식'처럼 하나하나 즐겼다. 영화 <콘택트>에서 블랙홀로 들어가는 장면이 이해되는 순간, 강의 영상에서 흩어진 지식이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은 기쁨 그 자체였다. 이석영 교수의 강의, 이명현 박사의 유튜브 강연 등을 통해 처음엔 낯설던 개념들이 점차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 변화가 스스로도 놀라웠다.
과학이 이렇게 아름답고 매혹적인 학문이라는 걸, 우주가 이토록 신비롭고 경이로운 존재라는 걸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계였다. 『코스모스』는 내게 지적 기쁨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고, 지루하다고만 여겼던 과학이 삶을 통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기쁨은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과 마침내 조우했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뿌듯함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젠가 다시 이 책을 펼쳐 보고 싶다. 첫 장부터 아끼면서 천천히, 그리고 깊이 있게 말이다. 광활한 『코스모스』를 다시 느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