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비우며

퇴원 27일 차

by 박종옥




통깁스를 풀고 난 뒤 비로소 평온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삶의 질을 떨어뜨렸던 어깨 통증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아직은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가.


깁스를 처음 푼 날, 제일 먼저 한 일은 옷장 정리였다. 실은 수술할 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행여 삶이 끝나면 남편과 아이들이 내 물건들을 정리해야 할 텐데, 짐이 많다면 그것 또한 고단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발의 움직임이 가장 먼저 옷장부터 열게 되었다.


옷장 안은 입지 않는 옷들로 가득했다. 언젠가는 입겠지 하며 붙잡아둔 옷, 유행이 지나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옷, 마음먹고 샀지만 결국 어울리지 않아 미뤄둔 옷들. 하나둘 꺼내다 보니 금세 산더미처럼 쌓였다. 답답하게 빽빽하던 옷장이 조금씩 비워지자 바람이 통할 여유가 생겼다.


옷을 정리하면서 문득 마음속 풍경이 겹쳐졌다. 직장 생활 중 원망, 섭섭함, 미움 같은 감정도 옷처럼 쌓여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풀지 못한 숙제처럼 답답했다. 한 번 마음속 깊이 넣어둔 채 버리지 못하고, 언젠가는 풀리겠지 하며 미뤄둔 감정들. 그런데 그 감정들이 결국은 나를 더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옷을 하나씩 버리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속 부정적인 감정도 함께 내려놓았다. 손에 뜨거운 불덩이를 쥔 것처럼 괴롭던 원망과 미움이 조금씩 풀려나가자, 마음에도 작은 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불필요한 옷이 사라지자 옷장 안이 여유로워졌듯, 마음속도 한결 가벼워졌다.


몸이 아파보니 알겠다. 건강하려면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야 한다는 것을. 옷을 버리며 함께 묵은 감정까지 덜어냈다. 옷장이 한결 비워지듯, 마음도 조금은 더 단순해지고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