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가방, 언제 사러 갈까?”
가라산 등산로 초입을 지나 천천히 오르던 중,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뜻밖의 말에 웃음이 먼저 났다. 가방 값이 제법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돈이면 차라리 저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싼 가방을 굳이 들고 싶은 마음은 없으며, 그렇게 비싼 가방은 모시고 살아야 한다며 농을 쳤다. 그 말을 듣고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꼭 사주고 싶다 말했다.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다.
앞서 걷던 그는 몇 걸음마다 말을 건넨다.
“조심해.”
발목 수술을 한 뒤로는 그 말이 더 잦아졌다. 서두르지 말라고, 무리하지 말라고, 괜찮으면 잠깐 쉬어 가자고 한다. 앞서 걷고 있지만, 늘 내 속도로 함께 가는 사람이다.
이번 산행에는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 그가 사준 새 등산화를 신고 왔다. 자신의 등산화는 많이 닳았는데도, 날 위해 사준 신발이다. 끈이 느슨해 졌다는 말에 잠시 멈춰 서서 다시 묶어준다. 찬 바람에 장갑을 벗은 손이 조심스럽다. 그 손길을 마음 깊숙히 담는다.
햇살 가득한 중턱 넓적 바위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꺼냈다. 김밥과 쌀국수다. 맛있는 김밥 가게에서 준비해 온 김밥과, 간편하지만 국물 맛이 의외로 깊은 쌀국수다. 산에서는 충분한 한 끼다. 그는 늘 그렇듯 먼저 챙긴다. 김밥을 건네고, 국물이 식지 않게 뚜껑을 닫아 준다.
하산길에도 그는 앞서 가다 말고 자주 멈춘다.
“여기 미끄러워. 잘 보고 걸어. 낙엽이 많아 미끄러우니까. 발목 조심하고.”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산길이 한결 편안해진다.
나의 속도에 맞춰 산행을 하다 보니 그는 운동양이 부족했다. 부족한 운동양을 채우기 위해 그는 다시 달리기를 하러 나갔고, 나는 월요일 교안 준비를 했다. 두 시간이 조금 지나 현관문이 열렸다. 고개를 들자 꽃다발이 먼저 보인다. 한 손에는 꽃, 다른 한 손에는 장을 본 봉지다. 무슨 꽃이냐고 묻자, 꽃 좋아하는 왕비마마를 위해 샀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꽃 가게가 집 옆에 있었으면 자주 꽃을 선물했을 거라 말을 덤으로 했다. 겨울이라 꽃값이 비싸지 않냐 묻자, 장미 한 송이에 4,500원이라는 말에 돈 아깝다고 말했지만, 웃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꽃을 꽃병에 꽂아 두고는 아들에게 자랑하느라 괜히 분주해진다.
며칠 전 굴젓을 잘못 먹고 속을 앓았던 걸 기억해, 그는 속이 편한 아구도 사 왔다. 따뜻한 국물과 부드러운 생선살을 먹고 나니 몸이 편안하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나를 위해 멀리 시장까지 다녀오고, 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꽃을 사 오는 사람.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마치 나에게 모든 감각이 맞춰진 사람처럼, 그는 늘 나에게 정성이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갈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기에 가슴이 새삼 벅차올랐다.
글을 쓰다 말고 다시 꽃을 바라본다. 무슨 복이 많아 이런 사람이 내게로 왔는지...... 한참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