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덜 아프게 하는 사람

by 박종옥




아침에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가라산 말고, 백화점에 가자.”


먼저 일어난 신랑이 밥을 짓고 상을 차렸다. 밥을 다 먹고 씻는 사이에는 세차장에 들러 차를 닦고 돌아왔다. 특별한 일을 했다는 표정은 없었지만, 그 움직임들에는 공통된 마음이 있었다. 하루를 조금 덜 지친 얼굴로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 그는 늘 그렇게 먼저 헤아렸다.


이 사람은 곁에 있는 방식부터 다르다. 더 강해지라고 등을 떠밀지 않고,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걸 먼저 알아본다. 아픈 날이 잦은 몸과 마음을 탓하기보다, 그 시간을 함께 건너는 쪽을 선택한다. 기운이 빠져 보이는 날이면 설명보다 하루의 방향부터 바꾸는 사람인데 오늘은 더 특별했다.


백화점에 가기 전 롯데 상품권이 있어 아울렛에 들렀다. 신랑 겨울 점퍼 하나쯤은 꼭 사주고 싶어 상품권을 꺼냈다. 옷을 입어본 그는 역시 어떤 옷도 잘 어울렸다. 퇴근 후 달리기를 거르지 않는 사람, 자주 아픈 나를 오래 지키려면 자신이 먼저 건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과 마음이 옷맵시가 되었다.


이제 가자고 했을 때,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등산화 매장으로 향했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이미 신발을 고르고 있었다. 발목 수술 이후에도 산에 오르다 헛디뎠던 장면을 그는 마음에 남겨두고 있었다. 신발을 신어보니 발목이 단단히 잡혔다. 그제야 알았다. 이 신발은 더 멀리 걷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아프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골라졌다는 것을. 신발을 신어보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유난히 밝았다. 자기 옷을 고를 때보다 나의 것을 고를 때 더 기쁜 표정이었다. 힘들수록 먼저 챙기고, 늘 좋은 것을 건네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 마음을 받아 살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백화점으로 향했다. 상품권도 있었고 마음에 드는 옷도 눈에 들어왔지만, 가격 앞에서 결정은 쉽게 나지 않았다. 몇 번을 입어보고 내려놓는 사이, 그는 아무 말 없이 카드를 꺼냈다. 더 망설이지 않기를, 오늘만큼은 마음이 가벼웠으면 한다는 바람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는 웃으며 스트레스가 좀 풀렸느냐고 물었다. 무엇을 샀는지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조금 덜 아픈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 담긴 질문이었다.


며칠 동안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일 때문이기도 했고, 사람 때문이기도 했으며, 신뢰에 대한 실망 때문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같은 말을 건넸다. 그만둬도 괜찮고, 자신에게는 나란 존재면 충분하다고.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내가 덜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을 내보이는 사람, 내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마음이 지쳤을 때 무엇이 필요한지 굳이 묻지 않고, 웃음이 돌아올 수 있는 곳으로 먼저 데려간다.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통증이 조금 줄어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 속 깊은 마음 덕분에 아픔을 덜어내고 다시 숨 쉴 수 있었다. 그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