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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Aug 18. 2021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수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뜨거운 사랑은 오래 묵고 많이 참는 단련의 과정을 거쳐 그윽한 사랑이 된다. 오랜 세월 사랑을 지켜주는 것은 책임과 인내이다."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면 우리 부부는 등산을 동반한 여행을 한다. 같은 취미를 향유하는 우리가 갖는 행복이다. 이번 토요일에 떠날 여행지는 변산반도다. 변산에 있는 산을 오르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조용한 곳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하려는 계획이다. 남편은 유독 이번 등산에 애정을 쏟았지만 안타깝게도 계획했던 여행에 변수가 생겼다. 갑자기 내린 비로 여행이 취소되었다. 아쉽게 떠나지 못한 토요일 현관 앞에 스틱이 할 일 잃은 백수처럼 자리를 지켰다.



아침 일찍 출발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 덕분에 신경 써서 아침을 준비한다. 홍합 넣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감자와 버섯, 고추 넣은 간장 졸임과 계란찜을 한다. 묵은 김치를 송송 썰어 김치전을 고소하게 구워낸다. 아침을 거하게 먹고 나자 남편은 비가 오니 커피 마시러 가자며 씻기를 권유한다. 귀찮았지만 신랑이 원하니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드라이브하다 도착한 곳이 그동안 가보지 못한 마을의 작은 동네다. 낯선 동네를 가보는 즐거움은 색다른 여행의 맛이다. 16년을 거제에 살았는데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낯선 동네를 달리는 동안 차 유리에 떨어진 빗방울과 차 안에 울리는 음악이 적절히 섞이면서 영화 속 풍경을 만들어낸다. 비를 좋아하는 우리라 한껏 바깥 풍경을 즐기는 도중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과 커피 마시러 가는 중이라는 하자 "제일 재미없는 일을 하고 있구나. 여행은 남편이랑 가는 게 아니야."라는 농담을 전한다. 함께 놀 사람이 남편뿐이라 어쩔 수 없다며 한바탕 웃었다.



경치 좋고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 헤매다 만난 곳이 '카페 스테이지'다. 지인과 함께 오고 나서 남편과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해둔 곳이다. 운 좋게도 헤매다 만난 곳이 다시 오고 싶었던 카페였다니 우연이 만들어준 소소한 기쁨이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 스테이지 넓은 창을 통해 비 오는 바다를 맘껏 즐긴다. 떨어진 빗물이 파도와 섞여 끊임없이 흐르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마치 우리 삶처럼. 섬 안쪽 길가에 심어진 야자수 잎이 비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바다 위를 나르던 갈매기가 바람에 휩쓸러 날아간다. 힘을 뺀 연이 바람에 날리듯 갈매기는 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바람의 속도대로 몸을 맡겼다. 바람을 즐기며 몸을 맡긴 갈매기처럼 자연의 순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문했던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수가 나왔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달고 부드러운 티라미수 매력에 흠뻑 빠진 날이다. 달고 부드러운 티라미수가 향이 짙은 쓴 아메리카노와 함께 마시자 자꾸 손이 간다.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수가 함께 하자 커피는 썼지만 부드러워지고 케이크는 달았지만 맛이 깊어졌다. 극과 극인 맛이 조화로 풍미가 깊어졌다. 사람 사이에 궁합이 있듯 음식에도 궁합이 있다며 궁합이 우리 대화 소재가 된다. "우린 왜 서로가 궁합을 보지 않았지?" 그에게 물었다. "궁합이 뭐가 중요해? 서로 맞춰가는 게 궁합이지." 그가 커피를 마시며 무심한 듯 대답했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 궁합이라는 것을 보지 않았다.  마음이 중요하지 딱히 봐야 한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도 살다가 힘든 일이 생겼다. 서로 맞지 않은 시선이 원인이 되어 부부 싸움도 격렬하게 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고비도 넘겼다.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아픈 과정도 함께 겪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남편이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기억했다.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쳐주었으면 좋겠다며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다. 그는 감사하게도 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크게 봤다.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다행히 좋은 점을 크게 봐주니 큰 싸움이 일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길 원하다가도 한발 물러서는 용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궁합을 맞춰갔다.



궁합이란 서로 다른 삶을 살다 만난 이들이 벼리어 맞춰가는 노력의 합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 부족하고 모난 부분을 노력으로 둥글게 만들어 간다. 그게 맞추는 궁합이다. 결국 맞는 궁합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맞춰가는 과정인 셈이다. 우린 조금씩 맞춰가면서 24년을 살았다. 서로 생각이 맞질 않아 말다툼하다가도 계획한 날 여행은 떠났다. 일상이 지루해지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함께 떠나는 여행은 보약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으로 생각의 틀이 자유로워져 감정이 몽글몽글해졌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연애시절을 떠올리게도 했다. 덕분에 함께하는 여행에서 돌아오면 감정 통장 잔고가 두둑해졌다. 감정 저축이 쌓이면서 웬만한 섭섭한 일들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애정 창고에 저축이 쌓이는 여행은 궁합을 맞춰가는 최고 양념이었다. 여행 덕분에 잘 살았다고 우린 가방을 풀면서 이야기하곤 한다.



카페 스테이지를 나오는 계단에서 신랑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린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지? 남들은 부부끼리 여행 가는 게 아니라는데 우린 자주 함께 다니는 걸 보면 말이야."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열었다. 감성이 충만된 나는 조잘조잘 연신 시끄럽게 떠든다. 그가 대답하든 말든.



비는 여전히 세차게 차 문을 두드린다. 투두둑 차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다. 두드림이 아름다운 비 오는 오후다.


(2019. 6. 8)






사랑은 쓰기도 달기도 하잖아. 아메리카노와 티라미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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