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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Aug 17. 2021

엄마의 춤

『영혼의 자서전』


"마르기, 노래를 불러.'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다름 남자들이 모두 함께 있는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허락했다. 이유도 없이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어머니를 보호하려는 듯 잔뜩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로 왈칵 달려가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어깨를 눌러 나를 자리에 앉혔다. 어머니는 온통 비와 번갯불에 에워싸인 듯 얼굴이 반짝여서 누구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머리를 뒤로 젖혔다. 길고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가 갑자기 풀어져 어깨너머로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늘어지던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어머니는 노래를 시작했다...... 깊고, 감미롭고, 정열이 가득해서 목이 멘 기막힌 소리였다."
 『영혼의 자서전』 <어머니>





어린 시절 어느 여름이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집에서 큰 행사를 치렀던 날이다. 마을 주민들이 마당 가득 넘쳐났고 처음 보는 잔치 음식들이 가득했다. 마당 한편에는 집에서 키우던 돼지가 가마솥에서 삶아지고 있다. 고기 삶는 냄새 사이로 동네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작은 시골이라 동네잔치가 벌어지면 마을 주민 모두가 함께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잔치가 벌어지면 마을 자체적으로 구성된 농악대가 출동했다. 잔치가 있는 날 북, 장구, 꽹과리, 피리 소리 덕분에 작은 마을이 하루 종일 들썩거렸다. 풍악에 맞춰 동네 어르신들은 너나없이 마당으로 나와 춤을 추었다. 흥에 겨운 아주머니와 동네 아저씨들의 얼굴엔 노동의 피로를 단박에 씻어낸 웃음이 가득했다. 시간이 갈수록 음악이 극에 달하고 춤이 절정에 이르렀다. 나는 엄마 치맛자락을 꼭 잡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서 춤을 추던  아주머니 한 분이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 손에 이끌러 마당 중앙으로 나가셨다. 엄마가 끌려가는 걸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주춤하시던 어머니의 어깨가 판소리 가락에 따라 들썩거렸다. 장구 소리는 빨라지고 판소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는 온몸을 음악에 맡겨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흰 한복을 입고 머리를 쪽진 작은 체구의 어머니는 어린 내가 봐도 춤사위가 우아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마을 사람들과 어머니는 모두 하나가 되어 덩실덩실 춤판이 벌어졌다. 구성진 판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고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그때였다. 내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에 농악은 멈췄고 어머니는 나에게 다가왔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당을 빠져나왔다. 부엌으로 들어온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얼굴이 동백꽃처럼 붉었다. 어머니는 나를 안아 달랬지만 화가 나 더 크게 울었다. 어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게 싫었다. 아니 어머니가 춤추는 게 창피했다. 다른 사람들이 흥에 겨워 춤추더라도 어머니만큼은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춤추는 건 어머니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훌쩍훌쩍 흘러 어머니 나이 45살에 낳은 막내딸인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시던 엄마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염하는 모습을 봐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차가운 곳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건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는 거였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보았지만 실감 나지 않은 상태였다. 죽음은 어머니와 내 것이 아니어야 했다. 어머니의 차가운 몸을 만지고 나면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게 무엇보다 두려웠다. 온기가 사라진 엄마의 몸을 본다는 게 무서웠다.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날 언니는 안 봐도 괜찮다며 달랬다. 언니들이 들어간 난 후에도 선뜻 들어가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울음만 훔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다가와 손을 잡았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를 끝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 손에 이끌려 어머니가 누워있는 곳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차가운 곳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흐려진 시야 사이로 어머니가 저세상에 입고 갈 하얀 수의와 하얀 버선이 신겨졌다. 희디흰 수의를 곱게 입으신 어머니는 평안해 보였고 아름다웠다. 이상하다 생각했다. 수의를 입은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모습이라 생각했다. 혹시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두려워 선뜻 어머니에게 가지 못했는데 아니었다. 핏기 없는 몸은 깨끗했고 흰 얼굴은 고왔다. 그래서 더 슬펐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부디 편안하게 가시라고 빌고 또 빌었다.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나 죽으면 우리 막내 실컷 울어라"라며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는 그 말이 그토록 야속했는데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고 나서는 어머니의 깊은 뜻을 알 것 같았다. 여한 없이 실컷 울라는 어머니의 깊은 속뜻이었다.



살아생전 8남매를 키운다고 여자로서의 삶은 없었던 어머니였다. 특별히 예쁜 외출복도 없었고 화장품이라고는 스킨과 로션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머니가 어느 날 자신을 위해 큰돈을 썼다며 나를 앉혔다. 보여주겠다며 들고 나온 옷은 흰 수의였다. 저 세상 갈 때 입을 옷을 미리 준비했다는 말에 왜 벌써 수의를 준비했느냐고 투덜거렸다. 수의를 보면서 생각도 못했던 어머니의 부재가 두려웠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피하면서도 마음이 복잡했었다. 언젠가는 어머니를 보내드려야 한다는 상상만으로 울컥 눈시울이 뜨거웠었다.



수의를 입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고 나서 엄마의 죽음을 인정했다. 편히 보내드려야 하기에 엄마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옷자락을 잡자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던 철없던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잡고 있던 옷자락이 엄마의 삶에서 걸림돌은 아녔을까 생각했다. 부모로서만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삶을 너무 늦게 알았다.



"엄마, 엄마의 춤은 나비처럼 아름다웠어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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