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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옥 Aug 07. 2021

사랑은 동사다

『친밀함』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사랑은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친밀함』








어머님은 영하로 떨어진 추운 겨울, 물이 꽁꽁 언 개울을 깨고 얼음물에 빨래를 하셨다. 한 겨울의 추위는 흐르는 개울이 얼 정도였으니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 맨손으로 빨래를 한다는 건 무척 고된 일이었다. 임시방편으로 집에서 가져간 뜨거운 물은 영하의 날씨에 금세 식어버려 무용지물이 되었다. 빨래를 하던 어머님 손은 칼날 같은 추위로 빨갛게 부어올랐다. 애써 빨아둔 빨래는 차가워진 날씨로 금방 살얼음이 뒤덮였다.



어촌인 시댁은 개울 상황도 좋지 않았다. 집과 한참 떨어진 곳이라 빨래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이동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었다. 동네에 하나뿐인 우물도 개인 소유라 사용하는 데는 제약이 많았다. 물이 필요할 때 맘 놓고 드나들 수 없었고 우물에서 빨래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물 주인의 신세를 져야 했지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어머님 성정에 힘겨워하셨다. 그럼에도 식수를 길어오기 위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오시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겨울 추위가 극도에 달하던 겨울, 선장이셨던 아버님이 집에 오셨고 한동안 집에 머물게 되었다. 늘 해온 것처럼 어머님은 아버님 옷을 개울에서 빨아오던 날이었다. 빨래를 해온 어머님이 추위에 언 손을 호호 불던 모습을 본 아버님은 대문 옆 마당 귀퉁이 땅을 파기 시작하셨다. 동네 동생과 괭이와 삽을 이용해 언 땅을 한 달 동안 팠지만 물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열악한 장비와 추위로 언 땅은 속도를 더디게 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한 달이 가고 보름이 지나서야 물이 나왔고 드디어 어머님만을 위한 우물이 만들어졌다. 어머님은 더 이상 꽁꽁 언 물을 깨면서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물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있었다. 빨래도 더운물에 섞어서 할 수 있었으니 아버님에 대한 고마움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좋아하신 어머님의 우물은 늘 정갈했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찾아갈 때마다 어머님의 우물엔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고 있었다.



"아부지는 오직 어머니만을 위한 우물을 만들었던 거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물이었어."


등산 중 남편에게 들은 시아버님의 이야기였다. 아버님의 자상함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추운 겨울 힘들어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삽과 괭이를 이용해 한 달 넘게 땅을 파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님에게 가장 필요한 우물을 만들어주신 아버님의 사랑은 위대함이었다.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도 값진 마음이었고 거룩하고 따뜻한 헌신이었다.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 우주에서 변화를 주관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다.(p.82)"




어머님은 그때의 고마움 덕택인지 아버님을 극진히 사랑하셨다. 사이가 워낙 좋으셔서 동네에서도 잉꼬부부로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좋으신 분들이 오래 사셨으면 좋으련만 아버님 67세에 세상을 등지셨다. 오랜 선장 생활에 지쳐있던 아버님은 감기가 쉽게 낫지 않아 병원에 가셨는데 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안타깝게도 이미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어 수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님은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시골집으로 내려가셨고 그때부터 어머님께서는 아버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다. 투병 기간 동안 아버님은 자식들이 힘들까 봐 한 번도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갑작스럽게 위중하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 전까지에도 아버님은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다.


아버님은 암 선고를 받은 7개월 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셨다.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슬픔도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견딜만해졌다. 그래서 어머님 마음이 어떨지 헤아리지 못했다. 그때 나는 철없는 며느리였다. 힘들고 외로웠을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아이들을 핑계로 모시지 못했다. 아버님이 안 계신 빈집에서 시시때때로 찾아올 어머님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떠나신 빈집에서 적적하게 홀로 계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님 곁으로 가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어머님을 보내고 돌아온 날 동네 어르신들은 시어른 두 분의 사이가 좋아 떠나는 것도 그렇게 가셨다며 아쉬워하셨다. 두 분이 돌아가신 시골집 우물엔 꽃밭의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풀들만 무성하게 자랐다.



"당신도 아버님처럼 나만을 위한 우물을 만들어 줄 수 있어?"


앞서 걸어가는 남편을 불러 물었다. 남편은 그건 아버님 같으신 분이 하시는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속았네. 아버님을 보고 당신을 선택했는데."


남편은 웃으면서 앞서갔지만 그의 사랑도 동사임을 알고 있다.





'사랑'은 동사입니다. 당신이 말한 사랑의 느낌이란 사실 사랑이라는 동사의 열매이지요. 그러니 그녀를 사랑하세요. 그녀에게 헌신하세요. 당신을 희생하세요.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세요. 그녀에게 공감하세요. 그녀에게 감사하세요. 그녀를 지지하세요.
『친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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