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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박 Mar 08. 2023

당신은 웬만하면 망하지 않는다

평범함의 비범함 07

“망했다…”
(혹은 더 실감 나게, X됐다!)


살면서 이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나 낭패, 뜻밖의 불운을 마주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말을 자주 하게 될 것이다. 필자도 그렇고. 하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망하지 않았다. 망(亡)하다의 정의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라고 한다. 당신이 정말 망했다면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정말 ‘끝장’이 나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일 테니까. 즉, 당신은 앞으로도 웬만하면 망하지 않는다. 


(이제는 음성이나 자막이 없어도 들리는 성기훈 씨의 한마디)


망했다, X됐다는 즉 상황이나 상태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지 사실이나 팩트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 해가 뜨는 것은 팩트지만 좋다/밝다/눈부시다는 우리의 느낌이자 판단이다. 이와 반대되는 느낌으로 국가의 멸망을 들 수 있다. 역사 속에서 고구려 멸망이니, 조선 멸망이니 하는 대목을 심심치 않게 봤을 것이다. 혹은 기업이나 법인의 흥망은 숫자로 나타낼 수 있기에 어느 정도 측정도 가능하고 정말로 ‘법인의 소멸’은 정식으로 쓰이는 용어기도 하다. 법인의 반대 개념인 자연인, 즉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떨까? ‘자연인의 소멸’이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여러분이 “아 망했네”라고 한다면 자연인의 소멸을 뜻해야 하는데, 당신은 소멸하였는가? 아마 장담컨대 아닐 것이다. 


“망했다, X됐다”라는 표현은 위상적으로 “춥다, 따듯하다, 멋지다, 구리다” 같이 개인의 느낌이나 판단을 나타내는 표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말만 그럴까? 영어에서는 보통 “I’m Screwed”라고 한다. (당. 연. 히, F로 시작하는 표현도 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마치 꼬여있는 스크루처럼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뜻한다. 더 심하면 “I’m Doomed”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정말 망했다는 어감과 비슷할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시쿠짓타(しくじった)” 즉 실수했다라든지 아니면 “모-다메다(もうダメだ)” 즉 “더는 안 되겠다”라고 한다. 어떤 언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상황에 대한 나 자신의 판단, 그리고 그 느낌을 서술한 표현들이다.

주변에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아 난 망했어”라고 하는 것을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겉으로 티는 못 내겠지만 가끔 속으로 ‘이 친구, 정말 큰일 났네’라고 공감할 때도 있었을 테지만, 가끔은 ‘뭐가 망했다는 거지?’라는 의아함도 느꼈을 것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깜냥’이 다르고 스스로가 그 상황에 직접 있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그런 상황이라 함은 시시각각 변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변하고 각도나 관점에 따라서도 달리 볼 수 있다. 일례로 2022년 카타르월드컵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전반 일찍 실점했을 때 국민 여러분 중 상당수가 “아 이번 월드컵도 망했네”라고 느꼈을(혹은 외쳤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전화위복, 새옹지마 같은 사자성어를 들먹일 것도 없이, 당신은 이제껏 실제로 정말로 진짜로 망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읽고 있으며, 아마 장담컨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타인이 “당신은 망한 인생이군요”라고 헐뜯었을 때, 순순히 “네, 정말 그렇네요”라고 재빨리 수긍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버럭까지는 아니더라도 창자에서부터 발끈 혹은 꿈틀 하지 않겠는가? 생존하고자 했던 DNA만이 살아남아있는 것이 현대의 우리이며, 그것은 생물학적 생존이 아닌 심리적인 자기 보호 또한 포함하고 있으리라. 


상황판단은 좋은 것이다. 기업이나 국가도 상황판단부터 되어야 대책을 세우고 문제점이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움직일 수 있다. 개인이라고 다르겠는가? 상황판단을 해야 다음 액션으로 넘어간다. [무릎이 아프네, 못 참겠네, 주변에 정형외과 찾아보고, 가봐야지]라는 프로세스에서, ‘가봐야지’까지 도달하려면 일단 무릎이 아프고 그냥 참기 어렵다는 상황판단이 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무릎이 아프네’에서 ‘아 망했네 부러졌나?’로 점프해버리곤 한다. 요즘같이 혼란하고 어려운 세태에는 더욱 그런 사람들이 늘기 마련이다. 



상상해 보라 여러분 기업의 CEO나 우리 대통령께서 “우린 망했습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아니 대책이라도 내야 할 거 아니오! 어떻게 리더께서 그런 말씀을 감히 입에 담는다니!라고 반발하지 “그렇죠, 우린 망했죠”라고 순응하고 같이 주저앉아 망연자실해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러분의 육신과 정신의 리더는 여러분이다. 그런 여러분이 상황판단을 하고 나서 “망했네” “X됐네”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해 왔다면 스스로에게 조금 미안해해도 된다. 


필자는 최근 의도적으로 “망했네”보다는 “큰일 났네, 어떡할까?”라고 표현하고 반응하려 노력한다. 처한 상황은 상황이고, 실행취소(ctrl+z)로 돌이킬 수도 없고, 어쨌든 대책은 크든 작든 세워야 한다. 왜냐면 난 망한 건 아니니까, 조금 어렵고 난처한 정도니까. “국민 여러분 우리는 망했습니다”라고 던지는 대통령은 없듯이, 내 몸과 내 인생의 대통령인 내가 “종박아, 너는 망했다”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법인도 국가도 아닌, 평범한 자연인인 우리들은 웬만하면 ‘진짜로’ 망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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