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손끝에서 시작되는 인간다움

AI 대학원생이 굳이 '손글씨 앱'을 만드는 이유

by 김종보

도서: 『경험의 멸종』 (크리스틴 로젠,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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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도서명: 경험의 멸종 (The Extinction of Experience)

저자: 크리스틴 로젠 (Christine Rosen) / 역자: 이영래

출판사: 어크로스 (2025년 5월)

한 줄 평: 편리함에 취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뇌과학과 철학으로 뼈아프게 증명하는 책.


토요일 모임이 있어 몇 시간 먼저 도착해 붕 떠버린 시간에 들어간 교보문고였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경험의 멸종』이라는 제목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부제는 더 도발적이었다.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나는 현재 인공지능융합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졸업 프로젝트 주제는 최첨단 AI가 아니라, 학생들이 태블릿 위에서 '손글씨'를 쓰게 만드는 앱을 개발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무슨 손글씨야? 타이핑이나 음성 인식이 더 빠르잖아."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오던 터였다.


이 책의 3장, <손으로 써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을 펼친 순간 전율이 일었다. 내가 막연하게 느끼던 '손의 가치'가 수많은 뇌과학와 철학적 레퍼런스로 증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화된 인지', 몸이 없으면 생각도 없다

우리는 흔히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몸은 그저 수행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은 메를로퐁티와 인지과학 이론을 빌려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몸으로 생각한다."

독일의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는 '이해하다(Begreifen)'라는 단어가 '움켜쥐다(Greifen)'에서 파생되었음을 지적한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우리 뇌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만지고 조작하는 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왜 아이들에게 '탭(Tap)'이나 '스와이프(Swipe)'가 아닌 '손글씨'가 필요한지 확신을 얻었다. 2012년 카린 제임스(Karin James)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키보드를 치거나 글자를 눈으로만 본 아이들의 뇌는 잠잠했다. 그러나 서툴더라도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쓴 아이들의 뇌에서는 어른의 '독서 회로'와 같은 영역이 환하게 불타올랐다.

"오직 세 손가락만 쓰지만, 온 뇌가 작동한다."

이보다 더 명확한 이유가 있을까. 타이핑은 추상적이다. 'A'를 칠 때나 'B'를 칠 때나 손가락의 움직임은 똑같다. 하지만 손글씨는 글자의 모양, 획의 순서, 종이의 저항을 온전히 느껴야만 하는 '신체적 경험'이다. 이 경험이 생략된 채 효율성만 좇는 디지털 교육은, 어쩌면 아이들에게서 '깊이 사고하는 회로'를 앗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효율성이라는 '유리 감옥'

책을 읽으며 내 프로젝트의 방향성뿐만 아니라, 우리 삶을 지배하는 '편리함'의 이면을 보았다. 우리는 귀찮은 과정을 삭제하고 결과만을 빨리 얻고 싶어 한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그리고 챗GPT까지.

하지만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과정을 건너뛰는 삶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해치우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설거지의 따뜻한 물 감촉, 펜이 종이를 긁는 사각거리는 소리, 잘 풀리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 이 '마찰'과 '저항' 속에 사실은 우리가 인간임을 느끼는 기쁨이 숨어 있다.

건축가들이 CAD 대신 손으로 스케치를 고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마우스 클릭은 너무 매끄러워서 실수가 없다. 하지만 손 그림의 불완전함과 잉크 번짐 속에서 뇌는 우연한 영감을 발견한다. 기술이 주는 매끄러움은 우리를 실수 없는 세계로 인도하지만, 동시에 사유와 성찰이 없는 '유리 감옥'에 가두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불가능해지는가?

물론 저자 크리스틴 로젠의 시선은 다소 디스토피아적이다. 읽다 보면 "그럼 스마트폰을 다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야 하나?"라는 반발심이 들기도 한다. 기술은 이미 우리 삶의 상수다. 무조건적인 배척은 답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슐라 프랭클린의 질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대안적 태도'를 제시한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 "이것으로 무엇이 가능한가?"(효율성)만 묻는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기술로 인해 무엇이 불가능해지는가? 무엇이 침묵하게 되는가?


줌(Zoom) 수업은 공간의 제약을 없앴지만, 교실의 공기를 공유하는 유대감을 불가능하게 했다. 아이패드 필기는 무한한 수정을 가능하게 했지만, 종이에 꾹꾹 눌러쓰는 행위가 주는 '내용에 대한 책임감'을 침묵시켰다.

내가 개발하려는 앱이 단순한 '디지털 필기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아이들이 태블릿 위에서도 최대한 '저항'을 느끼길 바란다. 쉽게 지우고 쉽게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끝 감각에 집중하며 느리게 생각하는 경험을 기술 안에서 구현하고 싶다.


왕좌 위에서도 우리는 엉덩이로 앉는다

몽테뉴는 그의 에세이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도 결국 제 엉덩이 위에 앉아 있을 뿐이다."

AI가 글을 대신 써주고 로봇이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육체를 가진 생물학적 존재다. 우리는 몸으로 느끼고, 손으로 만지며, 타인의 눈을 보고 배운다.

이 책은 나에게 경고가 아닌 나침반이 되었다.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안에서 멸종되어 가는 경험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그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References]

[1]: Manfred Spitzer, “To Swipe or Not to Swipe? The Question in Present-Day Education,” Trends in Neuroscience and Education 2 (August 2013): 95–99.

[2]: Karin H. James and Laura Engelhardt, “The effects of handwriting experience on functional brain development in pre-literate children,” Trends in Neuroscience Education 1, no. 2 (December 2012): 32–42.

[3]: Audrey L. H. van der Meer and F. R. van der Weel, “Only Three Fingers Write, but the Whole Brain Works: A High-Density EEG Study Showing Advantages of Drawing over Typing for Learning,” Frontiers in Psychology 8 (2017): 706.

[4]: Julian Baggini, “Joy in the Task,” Aeon, January 9, 2013.

[5]: Nicholas Carr, The Glass Cage: Automation and Us (New York: W. W. Norton, 2014), 142.

[6]: Ursula Franklin, The Real World of Technology (Toronto: House of Anansi Press, 2004), 51.

[7]: Michel de Montaigne, The Complete Essays, translated by M. A. Screech (New York: Penguin, 1993), 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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