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왕의 DNA'
2022년 11월, 당시 교육부 6급 주무관이던 학부모 A씨가 새로 부임한 초등생 자녀의 담임 교사에게 보낸 메일 한 통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선 학부모의 "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는 식의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씁쓸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며 혀를 찼지만, 이 사건을 단순히 한 개인의 유별난 행동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네덜란드의 발달 심리학자 에디 브루멜만(Eddie Brummelman)과 동료들의 연구는 이 '왕의 DNA' 논리가 어디에서 시작되며, 그 끝이 아이에게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브루멜만 교수는 2015년 연구에서 **'부모의 과대평가 척도(Parental Overvaluation Scale, POS)'**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일부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특별하고, 우월하며, 더 많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경향을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이들에게 내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마치 '인류에게 내려온 신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왕의 DNA' 발언은 바로 이 **'부모의 과대평가'**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입니다. 해당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보통 아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믿었기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요구와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를 객관적인 모습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기는 부모의 신념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렇다면 자녀를 '신의 선물'이라 믿는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대할까요? 브루멜만 교수는 2014년과 2017년 연구를 통해, 자녀를 과대평가하는 부모일수록 '과장된 칭찬(Inflated Praise)'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과장된 칭찬'이란 아이의 행동 결과물에 대해 현실을 넘어선 극찬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 칭찬) "그림 참 예쁘게 그렸네."
(과장된 칭찬) "이건 그냥 그림이 아니야!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세기의 걸작이야!"
(일반적 칭찬) "문제를 잘 풀었구나."
(과장된 칭찬) "넌 정말 상상도 못 할 만큼 똑똑한 천재라니까!"
부모는 이런 칭찬이 아이의 기를 살리고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내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으니, 그에 걸맞은 최고의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브루멜만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부모의 과장된 칭찬은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아이를 망가뜨립니다.
도전을 회피하게 만든다: 특히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에게 "넌 천재야!"와 같은 과장된 칭찬을 하면, 아이는 '다음에도 천재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결국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도전 자체를 피하게 됩니다.
자존감을 오히려 깎아내린다: 아이들은 부모의 과장된 칭찬이 진실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부모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아이'의 허상과 현실 속 자신의 모습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높은 기대는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독이 됩니다.
자기중심성과 나르시시즘을 키운다: 지속적으로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받은 아이는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규칙을 무시하며, 실패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자기중심적 성향과 나르시시즘(자기애성 성격)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왕의 DNA' 논란은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립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아이를 과대평가하고, 그 믿음을 '과장된 칭찬'으로 쏟아낼 때, 우리는 아이를 왕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만들고 있을지 모릅니다.
브루멜만의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너는 특별해"라는 공허한 외침이 아닙니다. 아이의 타고난 재능이나 결과물이 아닌, 노력하는 과정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림이 정말 멋지구나! 여러 가지 색깔을 쓰려고 노력한 점이 특히 좋아 보여."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어."
이런 '과정 중심의 칭찬'이야말로 아이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건강한 자존감의 토대 위에서 성장하게 하는 진짜 '부모의 사랑'일 것입니다. 내 아이를 '왕'으로 만들기보다,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Brummelman, E., et al. (2015). My Child Is God’s Gift to Humanity: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the Parental Overvaluation Scale (PO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8(4), 665–679.
Brummelman, E., et al. (2014). ‘That’s Not Just Beautiful—That’s Incredibly Beautiful!’: The Adverse Impact of Inflated Praise on Children with Low Self-Esteem. Psychological Science, 25(3), 728–735.
Brummelman, E., et al. (2017). When Parents’ Praise Inflates, Children’s Self-Esteem Deflates. Child Development, 88(6), 1799–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