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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해력을 키우고 싶은 당신에게

한민. (2025). 도대체 한국인은 왜 그럴까

by 김종보

[서평] 내 마음 나도 모를 때, '한국인의 마음 설명서'를 펼쳐보다 - 『도대체 한국인은 왜 그럴까』

"너 지금 어떤 마음이야?" "…모르겠어요."

어른도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데,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곤 합니다. 갈등 상황에서 ‘사실, 나의 마음,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사나바' 대화법을 쓸 때, 아이들은 유독 '나의 마음'을 몰라 가장 어려워합니다. 그럴 때 교사는 아이의 마음을 짐작해 "혹시 서운했니?", "조금은 화가 났던 걸까?" 하고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기하게도, 일단 감정에 이름이 붙으면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이처럼 감정을 '명명(命名)'하는 것은 이해와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문화심리학자인 한민 교수의 신간 『도대체 한국인은 왜 그럴까』는 바로 이 '감정 이름 붙이기'에 탁월한 안내서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한국인의 복잡 미묘한 속마음을 56가지 감정 열쇠로 꿰뚫어 보며, 우리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지도를 선명하게 그려줍니다.

감정,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리는 흔히 감정을 막연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여기지만, 저자는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감정은 어떠한 경험이 불러일으킨 신체적, 정신적 반응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20쪽)

즉, 어떤 경험으로 인해 우리 몸에 변화(정동, affect)가 생기고, 이 변화를 각자의 관점과 문화적 배경으로 해석하는 인지적 과정을 거쳐 비로소 하나의 '감정'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감정을 세 가지 차원으로 분류합니다.

기본 감정: 이유와 의미가 명확해 문화 보편적인 감정 (예: 기쁨, 슬픔)

사회적 감정: 특정 문화권의 해석 방식을 따르는 감정 (예: 존경심, 고마움)

자의식 감정: 개인의 상황과 한국 문화적 맥락이 더해져 해석되는 감정 (예: 한, 억울함)

이러한 분류는 저명한 문화심리학자 스티븐 하이네(Steven Heine)가 제시한 '심리적 보편성'의 위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심리부터 특정 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심리까지 스펙트럼이 존재하듯, 감정 역시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과 '한국인만의 고유한 마음'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통찰을 줍니다.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감정 사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그 배경을 설명해준다는 점입니다. 막연하게 느끼던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명명하고 나면, 그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더 성숙하게 반응할 힘을 얻게 됩니다.

물론 약간의 아쉬움도 있습니다. 학술서가 아니다 보니 참고문헌이 따로 없는 점, 감정의 예시가 특정 직업군에 집중된 것처럼 느껴지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단순한 감정 설명을 넘어, 우리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창을 열어줍니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이 책이 주는 지적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더 깊이 생각해보기 1: 눈치와 고맥락(高脈絡) 문화

한국인은 왜 대놓고 말하기보다 돌려 말하고, 말보다는 '눈치'로 소통할까요?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이 대표적인 '고맥락(High-Context) 문화'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고맥락 문화란, 메시지가 언어 자체보다는 공유된 상황, 관계,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전달되는 문화를 뜻합니다. "척하면 착" 알아듣는 우리만의 소통 방식은 바로 이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죠.


더 깊이 생각해보기 2: 나만의 경험으로 완성되는 감정, '페레지바니에(переживание)'

책에서 설명하는 감정 형성 과정은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가 말한 '페레지바니에(переживание)'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페레지바니에란, 동일한 사건이라도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겪어내고 체험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주관적 경험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세 아이가 똑같이 시험을 망쳤더라도,

A는 "다음엔 잘할 거야!"라며 아쉬움을 느끼고 (성장 지향적 체험)

B는 부모님께 혼날 걱정에 불안을 느끼며 (불안 중심적 체험)

C는 "난 역시 안돼"라며 좌절을 느낍니다. (자기비하적 체험)

결국 객관적 사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나의 마음'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나의 감정'을 들여다볼 현미경을 선물해 줍니다.


마음의 문해력을 키우고 싶은 당신에게

『도대체 한국인은 왜 그럴까』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독특한 감정 지형도를 탐험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의 마음에도 선명한 이름표가 달리기를 바랍니다.

한민. (2025). 도대체 한국인은 왜 그럴까: 56가지 감정으로 꿰뚫는 한국인의 진짜 속마음. 푸른칠판.


[참고문헌]

Heine, S. J. (2020). Cultural psychology (4th ed.). W. W. Norton & Company.

Norenzayan, A., & Heine, S. J. (2005). Psychological universals: What are they and how can we know?. Psychological Bulletin, 131(5), 763–784.

이희경. (2012). 한국 문화의 의사소통 특성 연구: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어 의미학』, 39, 137-160.

김태승. (2022). 교사 감정 사전: 상처받는 교사를 위한 마음 챙김 멘토링. 푸른칠판.

한민. (2025). 도대체 한국인은 왜 그럴까: 56가지 감정으로 꿰뚫는 한국인의 진짜 속마음. 푸른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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