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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를 잠식하는 편안함, 그 너머의 성장을 향해

마이클 이스터 - 『편안함의 습격』

by 김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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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의 추천은 책을 집어 들게 한 시작점이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감상은 온전히 나 자신의 것이었다.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은 제목 그대로,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한 끝없는 ‘편안함’이 어떻게 우리의 본능을 잠재우고, 정신과 육체를 나약하게 만드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는 자신의 알래스카 순록 사냥 경험과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라는 두 개의 축을 이중나선처럼 엮어가며, ‘편안함의 위기’라는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를 생생하게 고발한다.


책의 핵심 주장은 명료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 온기, 최소한의 노력을 추구하도록 진화했지만, 오늘날의 기술 발전은 이 본능을 과도하게 충족시켜 오히려 우리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배고픔, 추위, 더위는 물론이고 ‘지루함’마저 느낄 틈 없이 완벽하게 보호받는다. 그 결과, 우리의 신체는 만성 질환에 취약해지고, 정신은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쉽게 무너진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기준점 자체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책에서 언급된 ‘문제 발생률에 따른 개념 변화(prevalence-induced concept change)’처럼, 우리는 더 적은 문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을 더 큰 문제로 느끼게 될 뿐이다. 결국 우리는 안락한 환경 속에서도 이전과 동일한 수의 문제에 시달리며 불안해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공감하고 직접 실천해 본 부분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의도적인 육체적 불편함의 추구였다. 저자가 묘사한, 인류가 수렵 채집을 하며 수십 킬로미터를 걷고 무거운 사냥감을 옮기던 모습은 현재 우리의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에 자극받아 나 역시 ‘고럭(GoRuck)’처럼 가방에 의도적으로 무게를 더해 걷고, 아파트 단지의 시멘트 길 대신 흙길을 찾아 걸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땀 흘리는 단순한 행위는 놀랍게도 정신을 더 맑게 하고, 복잡했던 생각들을 정리해주었다. 이는 저자가 말한 ‘바이오필리아(생물 친화 가설)’, 즉 인간 유전자에 각인된 자연과의 연결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책은 또한 ‘미소기(Misogi)’라는 강력한 개념을 소개한다. 1년에 한 번, 성공 확률이 50%에 불과한 극한의 도전에 임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힘든 일을 겪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확장하는 ‘통과의례’다. 분리, 전이, 통합의 세 단계를 거치며 개인은 기존의 컴포트존을 깨고 더 강인한 존재로 거듭난다. 거창한 미소기가 아니더라도, 책은 일상 속 작은 불편함의 실천을 강조한다. 저자가 알코올이라는 ‘편안한 이불’에 갇혀 지냈던 과거를 고백하듯, 우리 역시 스마트폰이 주는 즉각적인 보상에 중독되어 있다. ‘포그 행동 모형’에 따라 설계된 앱들은 우리의 ‘지루할 틈’을 빼앗고, 이는 곧 창의적 사고의 기회를 박탈한다. 토런스 창의력 테스트가 보여주듯, 성취의 가장 정확한 지표는 IQ가 아니라 창의력이었다. 멍하니 있는 시간, 그 지루함 속에서 뇌는 비로소 새로운 아이디어를 싹 틔운다.


결국 『편안함의 습격』은 우리에게 ‘의도된 불편함’으로 삶을 채우라고 강력하게 촉구한다. 부탄 사람들이 죽음을 일상적으로 인식하며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듯, 우리 역시 안락함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인간을 더 오래 살게 만드는 요소’를 탐구하는 과정이 역설적으로 ‘더 쉽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길임을 깨달았다. 편안함이 주는 달콤한 독에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음을 느끼는 현대인이라면, 이 책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통해 자신만의 ‘불편한’ 성장통을 기꺼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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