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가르칠수있다는착각 #우리학교
김성우, 김재인, 김현수, & 천경호. (2025). 인공지능이 가르칠 수 있다는 착각: AI 시대, 교육의 가치와 교사의 역할을 다시 묻다. 우리학교.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842382
음….별로 안 팔릴 것 같은 책이다. 관심 가질 독자층이 일반인이 아닌 교사층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 근거는 없으나 요즘 책을 사서 읽는 독자 중에 교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그래도 좀 팔릴 것이라고 본다. 처음에 가볍게 읽었는데 강연과 대담을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입말(구어체)로 표현되어서 잘 읽히는데다가 내용도 알차다. 주변에도 소개해주고 싶다. 잘 만들었다. 참고문헌을 미주로 다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러면 잘 안 읽게된다. 이 책은 각주로 달아놓아서 찾아 보기도 쉽게 해두었다.
이 책은 ‘인공지능과 학교’를 주제로 AIDT를 비롯한 인공지능 시대에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가에 관해 다루고 있다. 강연자는 세 명으로 기술철학자 김재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응용언어학자 김성우다. 강연이 끝나면 현장의 선생님과 강연자와 대담을 한다.
먼저 김재인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인류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역할을 하는 학교는 유전되지 않고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읽기, 쓰기 능력을 기르는 데에 힘써야 한다.
다음은 내가 정리한 것과 발췌한 부분이다.
김재인. (2025). 공동 뇌 프로젝트(과학문명담론총서 6). 동아시아. 책 소개를 했다. ‘공동 뇌’와 비슷한 말로 ‘문화’, ‘문명’, ‘사회’, ‘공동 지능’, ‘공동 기억’ 등이 있다. 공동 뇌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도서관과 학교다. 도서관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 유산 같은 것이 저장되어 있는 곳이고 학교는 인류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곳이다. 인류는 어떻게 비언어적인 것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몸 때문일것이다. 김재인은 공감보다는 ‘공명’으로 명명했다. 만약 인공지능이 몸을 가진다면 어떨까? 읽기, 쓰기는 오천여년 전에 만든 발명품이다. 유전되지 않고 후천적 훈련으로 시각인식 능력을 가진다. 인공지능이라고들 말하는데 인공지능은 기능과 목적이 다양하기 때문에 선별해야한다. 좋은 기술이 있으니 그걸 쓴다? 글쎄… 지능이란 무엇인가? 지능이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서 정리하는 능력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것이 문제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은 증강기술이다. 주니어(능력 4)와 시니어(능력6)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섯 배의 능력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면 격차가 2에서 10으로 증강된다. 학교는 시니어의 맨몸의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AIDT는 문제풀이 drill이던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몸을 가진 학생과 교사끼리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자. 전자책은 책이 아니다. 장소성이 없기에 기억과 인출에 용이하지 않다. AI는 대필작가와 같다. 글쓰는 훈련을 하는데 대필작가를 쓰면 안되지 않나? 글쓰기는 ‘생각의 근력을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어 내기, 자료조사, 자료정리, 표현하기의 과정에서 생각의 근력을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읽기를 하는 이유는 첫째, 개인의 경험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다. 둘째,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다.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세상을 읽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읽기 능력이 필요하다. 초등학교는 ‘내용’을 가르치기 보다는 ‘언어’를 가르쳐야한다고 본다. 수학, 과학도 도구적 언어다.
대담에서 한희정 교사는 기계는 화내지 않는다. 그래서 수백번, 수천번 반복할 수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교사에게 선택권을 주어 학생에게 맞는 것을 제공하자. 내 의식으로 내 신체를 제어하는 능력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는 다릅니다. 읽기와 쓰기 능력은 유전자 안에 없기 때문에 태어난 후에 뇌의 어떤 부분을 강제로 변형시켜야 해요. 그 부분이 시각 인식과 관련된 부분이에요. 글자도 보이는 것들 중 일부잖아요? 그래서 보이는 것 중에서 특정한 표시들을 골라 문자를 만들어 음성을 대신하게 했어요. 뇌의 시각 영역 일부의 용도를 변경해서 억지로 훈련해 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했죠.
스타니슬라스 드앤 Stanislas Dehaene 이라는 프랑스 언어심리학자가 읽기와 쓰기에 관해서 쓴 글 읽는 뇌』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우리가 동물로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시각적인 인식이 있어요. 얼굴을 알아봐야 하고 건물 모양과 같은 것들을 알아봐야 해요. 이런 것을 알아볼 때 우리는 그것을 전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모서리같은 특징들을 중심으로 알아본다고 해요. 그래서 인간이 문자를 만들 때 그런 특징들을 집약해서 서로 변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글자들이 서로 구별되어야 하니까요. 즉 인간의 시각 인식에서 가장 차이 나는 특징들을 조합해 만들었는데, 그러면서 알파벳이 나오게 되었죠.
이런 문자들이 나온 지 역사적으로 얼마 안 지났기 때문에 새로 태어나는 인간은 문자를 강제로 훈련해야 해요. 이렇게 문자를 훈련하는 일이 초등 1학년 전후부터 일어나요. 그 전에는 훈련이 잘 안 돼요. 그 전에는 구어를 익히는 훈련에 집중해야 하거든요. 문자를 배우면서 글쓰기를 통해 구어와 긴밀하게 연동된, 속도로 따지면 0.4초 정도의 시간에 글자가 음성 언어로 처리되는 훈련을 초등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수행한다고 합니다. 읽기 능력을 훈련해서 발달시켜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럼 6학년 이후에는 발달이 불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겠죠? 6학년까지 훈련이 되지 않으면 난독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요. 그래서 1학년에서 6학년 사이에 하는 일이 무척 중요해요. 이것이 이 훈련의 전문가인 초등 교사들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겁니다. -23~24쪽
AIDT를 이야기하려면 교실과 교사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이들이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해요. 아이들과 선생님이 대면 관계에서, 즉 서로 직접 맞닥뜨린 관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계가 측정할 수 없는 것들, 교사가 학생을 직접 대면해야만 측정할 수 있는 것들과 기계가 키워 줄 수 없는 역량들을 키워가야 해요. 인천시 교육청의 모토가 '읽기, 걷기, 쓰기'더군요. 저도 이 세 가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역량은 읽기와 쓰기, 그리고 몸 관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이것부터 다져 주는 게 사회 정서 학습의 기본이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이런 것은 학교 현장, 교실에서만기를 수 있는 역량인데, AIDT가 과연 이런 교육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까요?
요즘 학교에 특강을 가 보면 디지털화가 정말 잘되어 있어요. 고등학교가 대학교보다 훨씬 시설이 좋아요. 전자칠판도 있더군요. 여기에 더해 태블릿으로 AIDT 또한 보급하는데 전 그것까지는 과하지 않나 해요. 사실 전자 칠판까지도 필요없고 그저 선생님이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활용해 보여 줄 수 있으면 돼요. -37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강연을 요약하자면,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과 아직 발달 중인 아이들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아이들에겐 유용하지 않다.
“현존하는 기술 대부분은 어린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린이의 주의력과 집중력을 빼앗아 가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회사가 아이들의 집중력을 훔치고 있다. 인공지능 때문에 생기는 철학적인 질문을 선생님과 아이들이 던지고 나누어야 한다. 인공지능 암 진단 프로그램 ‘왓슨’을 도입했는데 철수하고 있다. 이유는 인간이 생각보다 알 수 없는 존재라서 그렇다. 인공지능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일본에서 아이 키워주는 비디오가 나온 적이 있다. ‘비디오 증후군’이라는 병명만 남겼다.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초기에는 더 기초적인 뇌가 발달하고 이후 커 가면서 점차 학습하는 뇌가 발달한다. 이 자연스러운 발달을 훼손하면 뇌신경 회로망은 엉망이 된다. 인공지능은 관계를 전수할 수 없다. 인공지능과 연애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의학에서는 한 개인이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와 연애하는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 양육의 두 번째 위험은 양육 데이터다. 양육은 문화적 행위다. 회사가 제공하는 양육 데이터에 따라 다른 문화권의 아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양육과 교육에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인공지능 챗봇과 대화하다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현재 다른 나라들은 AIDT를 폐기하고 있다. 디지털 교과서는 종이책보다 못하다, 스크롤 속도만 빨랐지 의미 있는 학습이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다. 의미 있는 학습이 안 되었다는 건 진도는 나갔지만 학습으로 남은 건 없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시행된 한 숏폼 미디어 중독 연구를 보면, 숏폼 영상에 중독되었다는 의심을 받는 학생들은 학업을 미루고, 주의력에 문제가 생기고,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초기 숏폼 비디오 중독의 대명사는 틱톡 중독인데, 틱톡 중독이 생기면 불면과 사회불안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숏폼 비디오(숏츠, 릴스)에 중독이 가능하도록 한 기술적 장치는 무한 스크롤Infinite Scroll 인데, 이 기술을 가능하게 만든 아자래스킨 Aza Raskin은 이 기술의 문제점을 스스로 고백하기도 했죠. 래스킨은 영상에서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기술로 인해 인간의 인지적 습관인 호기심과 추구적 경향이 자극되는데,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통제력을 잃으면 중독 성향이 강화되고,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경고한 바가 있습니다. - 69~70쪽
* Jin Xie, Xinyu Xu, Yamei Zhang, Yuxin Tan, Dazhou Wu, Mingjian Shi, Hai Huang (2023) The effect of short-form video addiction on undergraduates' academic procrastination: a moderated mediation model. Front Psychol. Dec 15:14:1298361. doi: 10.3389/fpsyg.2023.1298361
** Jiang, L., Yoo, Y. (2024): Adolescents' short-form video addiction and sleep quality: the mediating role of social anxiety. BMC Psychol 12, 369. https://doi.org/10.1186/s40359-024-01865-9
너무 앞서간 상상이라면, 이런 건 어떨까요? 인공지능은 보통 데이터에서 출발해요.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어떻게 입력하고 여러 슈퍼컴퓨터가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예측하는 바가 달라지지요. 그런데 AIDT를 만들 때, 그와 관련한 데이터를 누가 제공할까요? 또 그렇게 개발된 교과서를 개선하는 데 누가 참여할까요? 그 수는 소수일까요, 다수일까요? 그런 변수에 따라 교사들이 얼마나 종속되는지에도 차이가 있을 테지요. 이건 단지 상상이 아니라 AIDT 도입을 논의하는 순간부터 곧장 고민해야 하는 이슈입니다. - 80쪽
해리스 Tristan Harris와 래스킨 Aza Raskin을 비롯해 구글에서 퇴사한 사람들과, 마크 저커버그 Mark Elliot Zuckerberg의 회사인 메타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뭉쳐서 '인도적 기술 센터 Center for Humane Technology'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이 단체에서는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사회적 고발, 내부 고발을 해요. 디지털 기술 회사들과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영리를 위해 소비자로서의 시민을 어떻게 디지털 기계, 스마트폰, 디지털 플랫폼에 사로잡혀 지내게 하려고 하는지, 즉 중독시키려고 시도하는지에 대해 경고하는 일을 해요. 또 정치인의 입법 과정, 교육계의 교육과정에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사용할 것을 조언하는 일도 해요. 그와 관련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연구하고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일도 하고요. (https://www.humanetech.com/ 이 사이트를 방문하면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이분들의 활약이 이제 크게 빛을 보기 시작해서 여러 법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2025년부터 온라인 안전법 Online Safety Bill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모든 회사가 아동보호 장치를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법이에요. 이 법으로 실제로 구글이 큰 압력을 받아서 이제는 어린이에게 어린이 버전을 따로 쓰게 해요. 어린이와 어른의 사용을 분리한 거죠. -91쪽
관련 연구를 볼까요? 대표적으로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의 퍼트리샤 알렉산더 Patricia Alexander 교수의 연구 팀이 진행한 것이 있어요. 이 팀은 500단어 이상의 책이나 화면 한 페이지 이상의 긴 글을 읽을 때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했을 때 이해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요. 또 연구에 따르면 화면으로 읽을 때 더 큰 신체적·정신적 요구, 즉 스크롤의 성가신 불쾌감, 일부 장치의 지루한 눈부심과 깜박임이 있었어요. 브라우징과 멀티태스킹 등의 디지털 환경에 따라 집중력에도 차이가 있었죠. 반면 인쇄된 책으로 읽으면 마음속에 공간적 인상(예컨대 책에서 특정 구절이나 다이어그램이 나타난 위치에 대한 기억)이 남았습니다. 이 결과를 두고 연구팀은 이렇게 말했어요.
"학생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인해 읽는 속도가 더 빨라졌기 때문에 더 잘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에요."
알렉산더 교수의 연구 팀은 디지털과 인쇄물의 차이에 대해 또 다른 연구 결과도 발표했습니다. 2016년에 실시한 실험인데, 학부생 90명에게 컴퓨터와 인쇄물로 짧은 정보 텍스트(약 450단어)를 읽어 보라고 했어요. 짧은 글이어서 스크롤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흡수하는 정보의 양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매체로 읽든 구절의 주요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데에서는 성적이 똑같이 좋았지만, 추가 요점을 나열하고 추가 세부 사항을 기억해 보라고 했을 때는 인쇄물로 읽은 사람의 성적이 더 좋았습니다."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격차예요. 기술력이 있는 중산층 부모들은 디지털 교과서로도 학습 지도가 가능해요. 하지만 디지털 문맹인 부모는 힘듭니다. 코로나19 때도 줌을 사용해 본 엄마 아빠는 아이가 줌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지도가 가능했어요. 하지만 “줌이 뭐지?” 했던 부모님들은 기술적인 지도가 불가능했죠.
지금 AIDT 도입을 반대하는 많은 지식인과 교육학자는 이런 격차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격차가 혐오를 강화한다는 점도 지적하고요.
미국에서도 상황이 비슷했어요.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빈곤층 부모들은 와이파이 연결부터 숙제 지도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요. 자신의 자녀가 디지털 미디어에 의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도 훨씬 컸다고 하고요. 특히 저소득층 부모 10명 중 6명이 교육 격차가 더 커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격차 문제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이슈지만, AIDT는 과연 더 교육적일까요? 이와 관련해 AIDT의 단점을 굉장히 부각시켰던 큰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2013년에 구글 엔지니어 맥스 벤틸라(Max Ventilla)가 알트스쿨(AltSchool)이라는 대안 학교를 설립했어요.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의 명사들이 이 학교에 거액을 투자하면서 소유명해졌지요. 이 학교는 기술을 교육에 적극 도입했어요. 이른바 기술 친화적인 학교였는데, 아이들은 등교하면 노트북을 켜고 온라인 강의를 들었죠. 학교에서는 종이 교과서를 없애고 디지털 교과서를 썼고요.
알트스쿨은 디지털 정보에 기초한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접근하는 미래형 학교로 각광받았지만, 이 학교의 실험은 거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설립 후 7년 만에 알트스쿨 9곳이 모두 폐교했어요. 이 학교의 디지털 교육 실험은 여러 면에서 실패한 셈이지요.
이 학교를 심층 취재한 기사는 디지털 교육의 결과를 문맹자 양산, 피상적 기술 습득, 사고력의 부재로 정리하기도 했죠. 아이들의 사고력, 판단력, 통합 능력이 잘 길러지지 않은 것입니다.
디지털 교과서가 심각한 건강 문제, 심리 문제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연구가 이루어졌어요. 2012년에 고려대학교 간호학과 서문경애 교수 팀이 시범적으로 도입된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 40개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디지털 교과서 학습자들에게 시각 피로와 시력 저하, 거북목과 등 통증, 척추측만증뿐 아니라 신체 활동의 감소, 비만의 증가 등이 더 발생했다고 해요. 또 심리적 증상으로 조바심, 짜증, 불안이 더 높아졌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가 쏟아지면서, AIDT와 관련한 정책을 바꾸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어요. 스웨덴에서는 디지털 교과서를 쓰다가 2024년 가을에 전면 폐기했습니다. 2024년 2학기부터는 디지털 교과서를 아예 안 쓰기로 했어요.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고 나서 인지심리학과 학습심리학 쪽 연구에 큰 반전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막상 종이 없이 디지털로 교육을 해 보니, 아이들이 지식과 기억을 스스로 활용하는 것이 안 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눈으로만 화면을 보면 진도가 나간 느낌은 들지만, 그냥 느낌일 뿐 실제로 머릿속에 남은 것이 별로 없었어요. 아이들이 공부한 것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지 않은 거예요. 손으로 쓰고 몸으로 익히고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요.
* Singer, L. M., & Alexander, P. A. (2017). Reading on Paper and Digitally: What the Past Decades of Empirical Research Reveal. Review of Educational Research, 87(6), 1007-1041. https://doi.org/10.3102/0034654317722961 (Original work published 2017)
* https://www.nbn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1611
* 서문경애 등 (2012): A Review of Studies on the Health-adverse effects in using Digital Textbooks. Journal of Digital Convergence 10(1): 166-175
- 99~103쪽
강연자 세 명을 다 다루려니 힘들어서 김성우 강연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강연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인공지능은 교육에 단순한 도구 이상으로 작용하며, 지식의 본질, 학습 과정, 인간 상호작용, 그리고 교육의 철학적 목표까지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 우리는 기술이 가져올 가능성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어떠한 가치와 태도를 마음과 몸에 새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리터러시 생태계와 교육 전반에 걸쳐 아래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저자성 및 지적 재산권의 재정의
인공지능이 창작물을 만들면서 누가 '저자'가 될지 모호해지고, 전통적인 지적 재산권 논의가 시작된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 개입 없이 만든 작품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도 있었지만, 인공지능이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가지게 되면서 이런 판결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읽기 및 쓰기 방식의 변화
읽고 쓰는 행위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직접 타이핑해서 글을 쓰는 일이 줄어들고, 주어진 글을 정독하는 비율도 낮아질 수 있다.
읽기와 쓰기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읽기 과정을 완전히 건너뛰고 쓰기 과제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읽지 않고 써도 생성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리터러시 교육의 본질, 즉 쓰기 없는 읽기 교육이나 단어와 문장을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교육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인공지능에 텍스트를 올리고 요약이나 비평을 시켜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정리하고 요약하고 의견을 기록하는 활동이 줄어들 수 있다.
정보 습득 및 지식 형성 방식의 변화
정보를 '기억'하기보다는 인공지능에 '어떤 프롬프트를 던져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인공지능은 정보를 수집, 분류, 분석, 재조합, 변형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이 주는 간편하고 요약된 답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복잡한 정보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이해, 비판적 사고 능력이 줄어들 수 있다 (인지적 구두쇠 이론).
인공지능의 '환각(hallucination)' 현상으로 인해 그럴듯하지만 사실과 다른 정보가 생성될 수 있고, 학생들이 이걸 객관적인 진실로 받아들일 위험도 있다. 이런 환각은 딥러닝 모델의 기본적인 특성이라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산성과 교육적 가치의 재고
인공지능은 작업 처리 속도, 효율성,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이런 효율성만으로 교육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교육은 지식과 태도, 관계의 변화를 우선시해야 하고, 단지 기술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를 어떤 존재로 변화시키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교육을 직업적으로 유용한 지식과 기술을 배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는 인공지능이 가진 매력적인 생산성이 교육 목표 설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간 상호작용 및 협력 방식의 변화
인공지능의 확산은 인간 대 인간의 상호작용을 줄이고 '개인 대 인공지능'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 이것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문화가 사라지고 개인화된 정보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교사는 인공지능의 등장이 교실 내 상호작용에 미칠 영향을 깊이 살펴보고, 교실이 하나의 '작은 사회'로서 가지는 교육적 기능에 더 주목해야 한다.
학습 과정의 중요성 재조명
교육은 결과물보다는 학습의 '과정'이 얼마나 충실하고 의미 있는지, 학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인공지능의 편리함과 효율성만 믿고 기존 학습 과정에서 얻는 인지적, 메타인지적 경험을 없애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학습자의 발달 과정은 평생에 걸쳐 일어나므로, 인공지능을 쓰더라도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탐색하고, 정리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는 인공지능을 쓰더라도 암묵적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동원하지만, 학습자에게는 기초적인 지식과 절차적 지식, 다양한 학습 전략, 자기 조절 역량, 협력 기여 등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기초 지식의 중요성
인공지능 활용에 있어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중요해지지만, 이것은 특정 분야의 지식과 경험, 비판적 사고 능력, 기본 문해력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지식 축적 없는 프롬프트는 의미가 없으며, 인공지능 활용 교육은 학습자의 리터러시 역량을 근본적으로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마태 효과 심화 가능성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켜, 초기 역량이 부족한 학생들이 더 뒤처지게 만드는 '마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인공지능은 능력과 역량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교사의 역할 변화 및 보편적 학습 설계
교사는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물을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시범 보이며 (모델링), 학생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I do-We do-You do" 모델).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UDL) 철학은 모든 학습자에게 동등한 학습 기회를 주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 접근법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리터러시 교육에 적합한 방향으로 제시된다. UDL은 모든 학습자가 접근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도전적인 학습 환경을 설계해서 학습자 주도성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데이터화되지 않은 세계'의 중요성
인공지능이 주로 데이터 기반 정보를 다루는 반면, 학생들이 '데이터화되지 않은' 일상의 경험을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더욱 풍성한 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방향으로 제안된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은 교육에 단순한 도구 이상으로 작용하며, 지식의 본질, 학습 과정, 인간 상호작용, 그리고 교육의 철학적 목표까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기술이 가져올 가능성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어떤 가치와 태도를 마음과 몸에 새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5학년 담임을 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몇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하나는 ‘똑똑수학탐험대!’라는 KERIS에서 만든 AI코스웨어로 1학기 중반부터 사용해 본 것이다. 학급에는 27명의 학생이 중학생 과정을 선행하는 학생부터 두자릿수 덧셈과 뺄셈을 어려워하는 학생까지 다양한 수준의 학생이 있다. 이 책에서 언급했듯이 마테효과 즉,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고 못하는 학생은 더 못하는 것은 아니고 둘 다 도움을 받았다. 잘하는 학생은 과제를 빨리 끝낸 뒤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친구들을 도와 같이 과제를 마치고 같이 게임활동을 하였고, 못하는 학생은 나의 도움이나 주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과제를 해결하였다. AI코스웨어를 사용해보니 디지털 기기로만 수업을 하면 개념이해나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수업 초반 도입부분에서 핵심개념을 설명하고 난 뒤 디지털 기기로 연습하고 피드백 받는 것으로 혼합(블랜디드 러닝)해서 그런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데 활용했다. 몇 번 활용한 적이 있어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서 쓸 수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27명 중 26명은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작성하는 것을 선택했다. 한 명은 글쓰기를 할 줄 모른다며 거부한 학생이었는데, 내가 학생의 경험을 듣고 줄거리를 찾아내 주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이야기를 이 학생은 “내가 쓴게 아니야.”라고 주변에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이 학생이나 다른 학생들이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이야기에 대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애착이 덜 한건지 성능이 부족해서 만족스럽지 못한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해서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