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보 May 30. 2021

변화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어떻게 지속될까?

스티븐 하이네의<문화심리학CulturalPsychology>

앞서 논의했듯이, 문화는 매우 유동적이며, 계속해서 진화한다. 아마도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문화는 또한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문화적 습관이 정착되면, 많은 것들이 그 세대 내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거쳐 정착된 상태로 남아 있다. 문화적 지속성의 개념은 이 책의 뒷부분에서 논의된 많은 주요 이론의 중심이다 (예: Nisbett & Cohen, 1996; Nisbett, Peng, Choi, 2001; Weber, 1904/1992 참조). 이 이론들은 문화들이 수세기 동안 많은 형태와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제안한다.


이전 구조를 바탕으로  구축


왜 문화의 양상은 특히 새로운 도전, 기술 혁신, 그리고 역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하는가? 종의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탐구는 문화의 지속성에 대한 한 가지 원인을 밝혀 줄 수 있다. 종의 진화는 그 종의 조상들의 특성에 의해 제한된다. 예를 들어, 박쥐는 날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적응을 진화시킨 작은 포유동물이다. 날개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자라지 않았다. 박쥐는 앞다리가 비행에 더 적응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비효율적인 팔 보다는 날개로서 완전한 기능을 가지는 일련의 점진적인 변화로부터 발전했다. 그것은 박쥐의 등으로부터 어떻게든 날개가 자라는 것보다 앞다리를 날개로 진화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한 과정이었다. 이 예는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중요한 점을 강조한다: 적응은 이전에 존재하는 구조에 의해 제한된다. 만약 당신이 처음부터 날아다니는 포유동물을 디자인한다면, 당신은 날개 그리고 팔을 모두 가진 박쥐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팔이 있는 박쥐는 먹이를 옮길 수도 있고 새끼를 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 기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화는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앞서 존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아주 작은 조정 과정이며, 그러한 상황은 뒤따르는 진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문화는 진공상태에서 출현하지 않는다. 모든 문화 혁신의 실마리는 기존의 믿음과 관습의 거미줄로 엮어져야 한다. 21세기 미국의 문화는 20세기 미국의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20세기 미국의 문화는 19세기 미국의 문화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전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 문화는 첫 정착지의 문화로부터 발전하여 일련의 신흥 사상, 기술 혁신, 계속되는 인구 이동,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대응에 적응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22세기의 미국 문화는 21세기의 미국 문화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변화는 기존의 문화적 토대를 바꾸는 것이 될 것이고, 우리는 많은 면에서 22세기 미국이 독특하게 미국식으로 남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다. 기존의 문화 습관은 새로운 문화 습관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고 제약을 가한다.


문화적 지속성의 몇 가지 두드러진 예는 초기 문화 구조가 수세기 후 규범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하는가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중세 이탈리아에서 북부 지역은 평등주의적 단체(예: 길드, 근린회)가 있었지만, 남부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이탈리아 남부는 노르만 왕들에 의해 독재적인 방식으로 통치되었고, 가문 간의 부패와 불신을 초래했다. 고도로 중앙 집중화된 이탈리아 국가는 1970년대에 만들어졌으며, 동일한 법과 개혁이 이탈리아 전역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은 강력하고 유능한 지방 정부 조직을 건설한 반면, 남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진전이 거의 없었고, 전국에서 가장 시민성이 낮은 지역으로 남아 있다 (Putnam, Leonardi, and Nanetti, 1993). 평균적으로 800년 전에 이러한 평등주의적 단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북부 마을들은 오늘날 더 많은 사회적 자본과 평균 소득을 가지고 있다 (Guiso, Sapienza, & Zingales, 2016). 현재 이탈리아의 지역적 차이는 수 세기 전에 존재했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특정한 편견도 수세기 동안 특정한 지역에서 지속될 수 있다. 14세기에, 유럽에서 전염병으로 많은 이가 사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유태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기 때문에 사망이 발생했다고 의심했다. 이러한 믿음은 독일 전역의 많은 도시에서 포그롬pogroms(대박해)으로 이어졌는데, 유대인들이 페스트를 퍼뜨린다고 잘못 의심받아 그 보복으로 대량 학살을 당했다. 6세기 후, 독일에서 나치당이 부상하는 동안, 반유대주의는 다시 유대인에 대한 포그롬으로 이어졌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14세기에 유대교 포그롬을 일으킨 독일의 도시들은 1920년대에 유대인에 대한 폭력 비율이 더 높았던 도시들과 나치당에 대한 지지가 더 많았던 도시들이었다 (Voigtländer & Voth, 2012). 끔찍한 일이지만, 이러한 반유대주의의 감정은 몇 세기 전 그 편견이 가장 강했던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과거 문화 구조의 강력한 영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우울한 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경제 발전이다. 평균적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의 아프리카 경제 실적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지역들 중 보츠와나, 스와질란드, 나미비아와 같은 꽤 잘 사는 나라들과 말라위, 짐바브웨, 라이베리아와 같은 못 사는 나라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경제 발전의 차이를 문화적 지속성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 네이선 넌Nathan Nunn(2008)은 아프리카의 불균등한 경제 발전의 밑바탕에 있는 주요 요인이 노예무역의 예기치 못한 여파였다고 믿는다. 약 1400년에서 1900년까지, 아프리카의 노예무역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폭력적으로 붙잡혀 노예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림 3.14). 한 추정치는 노예무역이 없었더라면 1850년에 아프리카 인구의 절반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Manning, 1990). 노예로 가장 많이 붙잡힌 지역에서는 붙잡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어,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칼과 총기와 같은 무기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들은 노예와 교환하여 유럽인들로부터 가장 쉽게 입수되었고, 그로 인해 “총과 노예 사이클gun-slave cycle”이 일어났다 (Lovejoy, 2000). 마을들은 이웃들에게 붙잡혀 노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서로를 습격해 노예로 삼았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은 그들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게 되었다.


그림 3.14 아프리카 노예무역, 1400-1900. 이 지도는 가장 많은 수의 노예들이 어디에서 잡혔었는지 보여준다.

출처: Nunn & Wantchekon, 2011, 그림 1.


넌은 이러한 불신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아프리카 여러 곳의 낮은 경제 발전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해안선, 1400년의 인구 밀도, 이슬람교 인구의 비율, 온도, 금, 석유, 다이아몬드 같은 천연자원의 존재 등을 포함해 변인을 통제했을 때, 넌은 오늘날 노예를 많이 수출한 나라들이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가 더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림 3.15). 노예제와 경제 발전 사이의 이러한 연관성은 노예가 많은 나라에서 불신이 증가한 결과로 보인다 (Nunn & Wantchekon, 2011).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아직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유럽 내 신뢰도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차이에 대해서도, 유사한 효과가 구 합스부르크 제국의 국경을 따라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Becker, Boeckh, Hainz, and Woessmann, 2016).

 

그림 3.15 노예무역의 경제적 영향.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더 많은 노예를 수출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GDP가 더 낮다. 노예무역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왔고 경제를 약화시키는 불신을 일으켰다.

출처: Nathan Nunn의 그림 8,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장기 효과", 계간 경제학 저널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08년 2월, 123(1), pp. 139–176. 저작권©2008,옥스포드 대학 출판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의 허가를 받아 재인쇄.


초기 조건의 영향


문화는 이전의 구조에 기초하기 때문에, 초기 조건은 문화가 이후에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하다. 긴 여정의 처음 몇 걸음에서 당신이 취하는 방향이 마지막에 취하는 방향보다 경로를 더 많이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초기 조건은 미래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나중 조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초기 조건의 중요한 역할은 문화적 차이가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세계화 시대에 전 세계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많이 접하고 있지만, 각각의 문화는 독특한 기원을 가진 경로를 따르고 있으며, 이러한 독특한 기원은 문화적 차이를 보존하고 있다.


미국 내의 다양한 지역은 서로 다른 유럽인들에 의해 정착되었으며, 대조적인 패턴은 초기 조건의 중요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Fischer, 1989; Woodard, 2011 참조). 예를 들어 17세기에 보스턴은 청교도들이 주로 정착한 반면 필라델피아는 퀘이커 교도가 주로 정착하였다. 비록 이 두 종파 모두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는 개신교 종파들이었지만, 청교도들과 퀘이커 교도들의 견해에도 몇 가지 핵심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청교도주의는 권위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공동체 목표를 위해 할애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매사추세츠에 처음 정착한 청교도인 중 많은 수가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고(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100명 이상의 졸업생 포함), 그들은 유토피아 사회를 형성하려는 꿈이 오직 교육받은 사람들로부터만 나타날 수 있다고 느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퀘이커주의는 실용주의적인 관심, 개인의 평등, 관용에 더 중점을 두었다.


사회학자 디그비 발트첼Digby Baltzell(1979)은 이러한 초기 정착 패턴의 차이가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보스턴과 필라델피아 사이의 뚜렷한 문화적 대비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두 도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권위 있는 두 학교인 하버드와 펜실베니아 대학교는 각각의 기원을 반영한다. 하버드는 원래 교양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공공 서비스를 강조했으며, 엄청난 지역사회와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펜실베니아 대학교는 의과대학, 경영대학, 그리고 공과대학이 우세한, 더 실용적인 교육과정을 강조했다. 공공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별로 강조되지 않았고(예: 펜실베니아 대학교를 졸업한 정치 지도자는 거의 없다), 학교는 고등교육의 가치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었던 퀘이커 문화 때문에 지역사회나 재정적 지원을 적게 받았다. 발트첼은 또한 보스턴의 문화는 청교도적 뿌리를 쫒는 엘리트주의와 권위에 대한 존중을 유지한 반면, 필라델피아의 문화는 권위에 대해 불신하고 다스리기 어렵지만 다양성에 대해서는 관대하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에 사는 소수의 시민들만이 그들 도시의 본래 청교도 및 퀘이커 조상의 직접적인 후손들이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시민들만이 청교도 또는 퀘이커 신앙을 계속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도시의 문화는 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처음 설립된 이후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 오늘날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에 사는 소수의 시민들만이 그들 도시의 본래 청교도 및 퀘이커 조상의 직접적인 후손들이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시민들만이 청교도 또는 퀘이커 신앙을 계속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도시의 문화는 유럽 정착민들에 의해 처음 설립된 이후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


왜 미국 남부가 북부보다 더 명예의 문화를 지속하고 있는지(Nisbett & Cohen, 1996; 4장 참조); 왜 일본 홋카이도 섬이 다른 지역보다 개인주의적인지(Kitayama, Ishii, Imada, Takemura, & Ramaswamy, 2006); 뉴욕시가 설립 초기 수십 년간 도시의 업무를 관장했던 네덜란드의 무역 회사에 의해 설립된 이후 왜 여전히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남아 있는지(Woodard, 2011)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한 지역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수세기 후 그 지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원들은 실험실에서 변화하는 규범을 연구함으로써 문화적 규범 발달에 미치는 초기 조건들의 영향을 분리하려고 노력해왔다. 한 고전적인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4인 1조로 완전히 어두운 방에 들어갔다(Jacobs & Campbell, 1961). 이 네 사람은 그들이 지속되는 어떤 종류의 미시 문화를 형성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테스트를 받았다. 그들의 임무는 맞은편 벽에 있는 작은 불빛을 보고 그 빛이 어디까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지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 빛은 실제로 벽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식된 어떤 움직임도 완전히 착시이고 자동운동 효과autokinetic effect의 산물이었다. 참가자들은 불빛이 얼마나 움직이는지 큰 소리로 보고했다. 가장 먼저 보고한 사람은 실험자와 공모한 사람이었고, 그는 빛이 16인치를 움직였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참가자 단독 실험에서 보고한 거리(평균 3.8인치)보다 상당히 먼 것이었다. 이 과제의 모호성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한 반응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이 빛이 얼마나 멀리 움직였다고 믿는지에 대한 규범들이 집단 내에서 발달했다. 공모자가 16인치를 보고한 후, 집단의 다른 이들도 대부분 불빛이 16인치 움직이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네 사람이 빛이 약 16인치 움직이는 것을 보는 규범에 순응한 미시 문화가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이 빛이 얼마나 움직인 것을 봤는지 보고하는 것을 마치면, 한 사람이 방을 나가고 (가장 먼저 나간 사람은 공모자였다) 새 참가자로 대체되었다. 네 번의 시도를 거치면, 집단은 모두 새로운 구성원으로 교체된다. 이를 11 "세대"에 걸쳐 계속한 결과, 각각 4명씩 총 11개의 미시 문화가 발생하였으며, 각 미시 문화는 이전과 약간 다른 구성원을 가지고 있었다.


실험자들은 공모자의 초기 보고가 얼마나 오랫동안 후속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미칠지 보고 싶어 했다. 추정치는 점차 대조군 평균(3.8인치)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지만, 공모자 판단의 영향은 그가 떠난 후 5세대 동안 지속되었다. 공모자의 다소 큰 추정치에 노출되었던 원 집단 구성원이 더 이상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홀로 실험했던 이들보다 빛이 더 멀리 움직이는 것으로 계속 보고 있었다. 따라서 초기 조건은 이후 세대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효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할 수 있다. 이러한 특정 연구의 약점은 이러한 실험적인 "문화"가 실제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수의 낯선 사람들이 특이한 과업과 짧은 기간 동안만 제한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와 같이 더 오랜 기간 동안 그 문화에 참여한다면 초기 조건의 영향이 더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다원적 무지


여기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프린스턴 대학생들은 학교 행사에서 자신은 술 마시는 걸 불편하게 여기지만, 자기 외에 대부분은 과음을 즐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Prentice & Miller, 1996) 만약 학생들이 음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정확하게 평가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평균적인 자기 평가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평균적인 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편견을 나타낸다: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과음을 더 많이 받아들인다고 생각할까?


이것은 문화적 지속성에 기여하는 또 다른 메커니즘의 한 예이다.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의 근간이 되는 생각을 잘못 해석하는 경향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내려고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말해주거나 우리가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진술이나 행동이 그들의 사사로운 생각을 반영할 때 그들의 생각을 추론하는 데 꽤 정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올리브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올리브에 대한 나의 사적인 감정 또한 부정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당신을 호도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른 종류의 상황에서, 행동과 진술은 사람들의 생각을 진정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어떤 행동들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더 높이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좋은 말을 한다. 프린스턴대 학생들의 경우, 과음이 부담스럽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동료 학생들의 의견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추정했다. 이러한 편견이 존재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그들의 급우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러한 생각은 공개적으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 과음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은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해 보이고 좀 더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여, 학생들이 곯아떨어질 때까지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다는 잘못된 인상을 낳았다. 즉 다원적 무지의 경우이다. 어떤 생각들은 다른 생각들보다 공개적으로 표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잘못 표현하게 된다.

다원적 무지의 반대 사례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존재했다. 그 기간 동안, 알코올의 공공 판매와 소비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금주령Prohibition이 시행되었다 (그림 3.16). 금주령은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음주를 합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공개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그러한 태도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강한 반(反) 금주령 감정의 명확한 증거가 모이자, 다원적 무지는 없어지고 금주령은 갑작스럽게 종결되었다 (Katz & Schnack, 1938).

 

그림 3.16 다원적 무지와 문화적 지속성 금주령은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부분적으로 다원적 무지 때문에 지속되었다. 사람들의 공개적인 행동은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믿었던 것보다 알코올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더 많이 전달하였다.


현재 대학생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원적 무지의 다른 예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그들의 또래들이 가벼운 만남에 더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과(Lambert, Kan, Apple, 2003),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Van Boven, 2000). 이러한 편견은 일부 대학 캠퍼스에서 가벼운 만남 대해 이야기하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원적 무지는 문화적 지속성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느낀다고 믿는 것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나만 교내에서 폭음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면, 고민 표현에 쑥스러워하고 남들과 어울리며 과음할 수도 있어, 잘못된 인식에 더욱 기여하고 음주 문화를 영속시킬 수 있다. 다원적 무지를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 행동을 지지하지 않을 때조차도 캠퍼스에서 과음하는 관행을 포함하는 문화는 지속될 수 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어떤 주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려는 의지는 단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일부 문화적 맥락에서, 특히 전체주의 정부 하에서는, 공개적으로 특정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 사이에 훨씬 덜 일치할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문화적 지속성의 정도가 더 클 것이다(Cohen, 2001). 다원적 무지의 충격적인 예는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발흥에 대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논쟁적인 분석에서 확인되었다 (Arendt, 1964). 아렌트는 매우 많은 독일인이 국가사회주의에 협력한 이유가 사악한 동기가 아니라 생각 없음과 대중적 순응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Cohen, 2001). 나치 독일에서는 점점 커지는 공포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파시스트 군중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안전해 보였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제3제국 Third Reich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들은 그들이 옳은 길을 따르고 있다고 서로 집단적으로 설득했고,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환경의 안정성을 따르는 문화적 지속성


문화적 변화나 문화적 지속성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예측하는 방법이 있을까? 중요한 한 가지 요인은 특정 환경, 특히 기후의 안정성이다. 기후가 비교적 안정적일 때, 우리는 조상들의 관습이 이와 유사한 환경에서 계속 유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적 전통을 더 많이 유지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기온이 변동하고, 농업 생산이 영향을 받을 때, 오래된 전통은 변화된 환경에서 덜 유용할 수 있다.


최근 1,400년 동안의 세계 문화 변화를 대규모로 분석한 결과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발견되었다 (Giuliano & Nunn, 2017). 전 세계의 지역에 걸쳐, 특정 지역이 문화적 지속성을 많이 보이는지 여부에 관한 한 명확한 예측 변수가 나타났다: 기후 변동성의 정도이다. 평균 기온의 변동이 적은 지역은 문화적 지속성과 사람들이 전통을 중시하는 더 많은 증거를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다. 기후 변화가 더 많은 지역은 더 많은 문화적 변화를 보이고 전통에 대한 가치가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기후 변동성과 문화적 지속성 사이의 이러한 연관성은 국가 내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캐나다에는 기후가 얼마나 안정적이었는지가 다른 지역들이 있다. 이들 지역에 사는 토착민들은 기후가 좀 더 가변적이었던 곳보다 안정적이었던 곳에서 모국어(예: 나바호어나 크리어; 문화적 지속성의 표식자)를 말할 가능성이 더 높다 (Giuliano & Nun, 2017). 전반적으로, 문화적 지속성은 부분적으로 지역 환경의 안정성의 상관 요소이다.

작가의 이전글 문화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