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로 돌봄이 필요했다.

회복의 길

by 소구미

내가 단지 원하는 건 곁에 있어주는 거였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내 곁에 와서 날 안아주는 거였다.



어린왕자를 읽으며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았다.
어린왕자의 순수한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고,
어른의 가르치는 목소리만 한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말했다.

“너나 잘해. 너도 똑같아.”

나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했다.
그건 가르침이 아니었다.
하지만 잠시 어른들이 주는 가르침에 순종했고,
며칠 간 추천한 일들을 했다.
나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때문에 어른들은 내 속도와 양에 놀랐다.
그런데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너만 생각해.
모든 일 내려놓고 너의 회복에만 집중해.”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나에게 일을 주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지쳐갔다.
일을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끝내도 또 다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드디어 일을 끝냈다고 생각했을 때,
괴로움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아, 나는 쉬고 싶었구나. 정말로 쉬고 싶었구나.”


나는 2차 가해가 이토록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온다고 생각못했다.
그들이 초연하게 가르치는, 해석하는, 평가하는, 명령하는, 질문하는 모든 행위들이 나를 엄청나게 괴롭게 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가르치는 어른을 멈추는 방법은 오직 하나,

따끔하게 ‘가르치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런데 어떤 어른은 가르쳐도 멈추지 않았다.
껍데기가 너무 두꺼워 본질이 썩어가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 말이 너무 아프다”고 알려주었지만,
그 어른은 마지막까지 냄새나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너의 회복을 간절히 바란다.
나는 너를 괴롭힐 생각도 의도도 전혀 없단다.”

너무나 깜깜해서, 결국 차단했다.

우리의 대부분은 괴롭힐 의도를 갖지 않는다.
단지 상대의 경계를 몰라 실수할 뿐이다.
그러니 누군가 “그건 너무 아파”라고 말할 때는 멈추고 사과해야 한다.
상대의 아픈 표정을 볼 수 있다면 더 빨리 멈출수도 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다친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이 있다는 것.
어떤 어른은 가르치면 멈추지만,
어떤 어른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것.
고통과 두려움은 삶에 필수라는 것.


그리고 나는 단지 순수한 돌봄에만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가 해준 것은
밥을 주는 것,

안아주는 것,

함께 있어주는 것

이었다.

내가 스스로 한 것은
잠,

호흡,

걸음,

글쓰기

이었다.


나의 회복에 도움이 된 것은 이것들 이었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내가 가르칠필요가 없었고 뭔가를 부탁하지 않은 어른은 딱 두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순수하고 어린아이 같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진짜 아이들과 동물은 회복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힘들 때는 어른을 피해야 제맛이라는 것을.

자기 이야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
나만큼이나 돌봄이 필요해 보이는 이들.




1. 나는 가르침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하다.
2. 나의 회복은 밥, 안아줌, 곁에 있음, 잠, 호흡, 걸음, 글쓰기에서 온다.
3. 누군가 아프다고 말할 때는 멈추고 사과해야 한다.
4. 가르침을 멈추지 않는 어른은 내 곁에 둘 수 없다.
5. 나는 이번 고통 속에서 나의 회복의 길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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