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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r 31. 2022

책 욕심

어렸을 때 제일 욕심나던 일이 좋은 집도 좋은 부모도 좋은 책가방도 학용품도 아니었습니다.


책이.. 그렇게 탐이 많이 났습니다. 특히 새 책을 그렇게나 좋아합니다.


일곱 살에 작은 동네 대검산에 처음 생긴 유치원에는 처음 보는 장난감도 많았지만 처음 보는 동화책들이 열댓 권 있었습니다. 그 책들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앉아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더는 읽을 새 책이 없어졌을 무렵 고모네 집에 아동전집이 들어왔습니다.


옆동네에서 셋방살이하던 고모의 남편은 트럭 운전수였는데 애들이 셋이나 있었거든요.

젊은 새댁이었던 고모가 글도 잘 모르던 고모가 자식들을 잘 키울 욕심으로 책을 그것도 아동문학전집을 할부로 들여놓은 거였죠.

단칸방에 살면서도 애들은 잘 키우고 싶었던 고모가 부려본 최고의 사치였을 겁니다.


그렇게 어렵게 들인 전집인데 그 반짝거리던 새 책들에 정작 그 집 아이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 새끼들 읽을 새 책을 한 번도 펴보지 않아 책 페이지를 열면

쩍 소리가 나던 그 새책을 눈치 없는 큰 조카가 매일 와서 종일 읽으니 …

고모 속에서 천불이 났을지도 모르는데 눈치는 보였어도 그 책들이 그렇게 재밌었습니다.


그때 읽었던 아기 돼지 삼 형제를 평생 못 잊어먹고 있으니까요. 아직도 그 책에 인쇄되어 있던 돼지 삼 형제가 짓던 집들의 그림이 칼라의 사진으로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며칠 전 산 책을 중고로 팔면서 들었던 상념입니다.

난 왜 새 책을 그렇게 환장하게 좋아하는가? 싶어서 그 원인을 딴에는 추적을 해 보느라 상념이 좀 길어졌습니다.


제주도 혼자 여행을 다녀왔던 한 달 전의 그 시기를 기점으로 다시 걸식이 들린 듯 배고파 주림에 못 견디듯 마른땅에 물이 한없이 들어가듯 요즘 책 욕심에 빠져 있다가 또 잠시 브레이크를 밟아봤습니다.


작은집을 지진이 난 듯 한판 휩쓸어 버린 게 엊그제인데 또 책을 한 권 두권 쌓아 놓으면 곤란해집니다.

지난주부터 너무 읽고 싶은 책 두 권을 며칠을 기다려서 남편을 시켜 회사 도서실에서 빌려왔습니다.


책을 빌릴 곳이 지천임에도 귀찮음보다는 순전히 새 책 읽고 싶은 욕심에 자꾸 또 장바구니에 책을 넣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기다리긴 하였지만 타인의 손때가 타긴 하였으나 비교적 새 책 같은 헌 책을 빌려와서 읽으며 저의 책 욕심의 역사를 들여다봤습니다.


파친코, 정말 좋은 책인 거 같아요. 첫 줄부터 청소 흡입기에 매달린 휴지조각처럼 제 맘이 쑤욱 빨려 들어갔거든요.


읽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엔 아직도 새 책을 살걸 하는 아쉬움이 좀 남아있습니다.

새 책이 주는 그 신나는 설렘이… 조금 그립지만 오늘은 그 사치를 좀 참아보려고 합니다.

집이 좁아터진다고 멀쩡한 물건들을 내다 버린 지가 일주일도 채 지니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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