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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Feb 14. 2022

사라지는 것들

미용실에 파마를 하러 갔다가 순서를 기다리는데 배가 고팠습니다. 미용실 내에서는 취식이 금지가 되어 있어서 밖으로 나와 거리를 살피니 시내 네거리에 그 흔했던 포장마차 하나가 안보였어요. 어묵이 먹고 싶어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콕 박혀서 동네 주민 아니면 볼 수 없는 곳에 작은 분식집이 있더군요.


가게문 열고 들어가 어묵 두 개를 먹으며 급한 허기를 메우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투박한 음성으로 순대 1인분을 청하는 아저씨의 요구에 사장님이 빠른 손놀림으로 순대를 도마 위에 올려 썰면서 살갑게 묻습니다.


"막걸리 드시면서 드실 요량이신가 보네, 간이랑 허파도 물론 넣어야겠지요?"


어묵을 먹으며 사장님의 재치 있고 따뜻한 응대를 지켜보려니 마음이 그냥 뜨근해지는 겁니다. 요즘 어느 가게에서 저렇게 순박하게 고객을 대할까 싶어서 말입니다. 예전 시골 점방에서나 가능한 인심이고 말씨였습니다.

어묵 두 개 값을 치르며 사장님에게 고객응대를 어쩜 그리 따뜻하게 잘하시냐 물으니 대답이 더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었습니다.


"시국이 워낙 추우니 말이라도 따뜻해야죠. 좋은 게 좋은 거죠"


행복하게 어묵 두 개를 잘 먹고 나와 서서는 가게의 모양새를 한참이나 지켜보고 돌아섰습니다. 커피숍과 술집과 대형 건물 사이에 자칫하면 보이지도 않을 자그만 분식집. 이런 것들이 내 주변에서 이젠 너무 많이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물서너 살 때 창천동 작은집에 얹혀 살 때였는데 신촌역 출구를 나오면 바로 앞에 포장마차가 있었습니다. 집에 가서 혼자 밥을 차려먹기도 눈치가 보여서 그곳에서 떡볶이 1인분과 어묵 한 개의 값으로  넉넉한 어묵 국물까지 덤으로 주는 인심 좋은 여사장님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몇 년을 단골이었는데 스물일곱, 결혼하고 난 후 생각이 나서 찾아가 봤더니 다른 분이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계시더라고요.


사람의 접점을 찾아볼 수가 없는 시기라 그런지 그런 정경들이 요즘엔 너무 그립습니다. 겨울이면 흔했던 어묵 포장마차도 호떡 장수도 이젠 찾아보는 게 힘이 듭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 그리운 것들 투성입니다.


베란다의 통돌이 세탁기가 덜덜거려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가 사람 목소리를 만나고 싶어 상담원을 연결해야 하는 0번이 나오기를 십여분이나 기다렸는데도 <상담원 연결> 버튼을 알려주는 프로세스가 쏙 빠져 있었습니다. 대신 카카오톡의 로봇쳇과 만나게 해 준다며 그쪽을 연결하거나 계속 ars로 자동답변만 연결이 되더라고요.


햄버거를 사러 가면 이젠 모두 키오스크가 있어서 햄버거집을 안 간 지가 2년 정도 된 거 같습니다. 이상하게 사람에게 주문을 하지 않게 되자 가기가 싫어졌습니다. 너무 구식인데 싶어도 내가 이런 걸 어쩌겠나 싶습니다. 동네 쌀 국숫집에도 이젠 키오스크가 등장했습니다. 주문받는 직원을 줄여야 해서 부득이하게 키오스크를 들였다고 하더군요. 이젠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오늘은 어떤 메뉴가 괜찮을지를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사장님은 시급이 무서워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동네 은행들이 사라지고 동네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집 근처의 십 수년 된 단골 목욕탕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 집이 문을 닫았을 때는 어찌나 마음 한 곳이 휑하고 허퉁하던지 꽁꽁 닫힌 문 앞에서 한 참이나 서 있다가 돌아서야 했습니다. 목욕탕을 찾아보니 버스로 삼십 분이나 가야 때를 밀수가 있겠더군요. 아쉬운 데로 집에서 물 샤워로만 대체 중인데 뜨끈한 탕 안에서 몸을 누이고 쉬던 일이 너무나 그리운 요즘입니다.


허긴, 내가 요즘 그리운 게 한두 가지 여야 말이지요. 갱년기 증상에 그런 것도 있나요?


'그리운 것 투성인 증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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