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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Feb 07. 2022

상처를 주고 싶다면, 받아야지 어쩌겠나 싶습니다.


그런 인생 지침서를 싫어합니다. 머리로는 아, 맞는 말이겠구나 싶은데 이게 도통 가슴으로는 소화가 안되고 납득이 안 되는 좋은 말들 있잖아요.


상처를 주려고 한다면 거절하세요. 그건  사람의 사정이지  사정이 아니라는 둥의 문구를 여러 종류의 책을 읽으며  한참 잡식할 때가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좋은 말을 아귀아귀 입에 집어넣고 삼키다 보면  맘에 상대방이 주려하던 나쁜 기운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 굳게 믿으면서요.

그런데 지금은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고 믿지 않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하냐고요? 마흔 여덟에 깨닫게 된 사실인데 이건 제 방법인데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어쩌겠나 싶습니다.


상처를 주고 싶어 애쓰려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쓴 물을 삼키고 맙니다. 그리고 오래 되새김질하고 그 행동과 말들을 관찰하고 음미합니다. 저의 빌어먹을 성격상 어쩔 수 없는 행위입니다.

바보야! 그럼 너만 손해지!’ 하고 많이들 저를 다그치며 르켜 주려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생긴 데로 살아야 하더라고요. 저는 감정을 오래 관찰하는 사람으로 태어났거든요.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나서야 새삼스레 알게  건데 우리 형제들은  명이 모두 각각피해자들이었습니다. 명절에 모이면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나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서럽게 하고 슬프게 했는지를 나열하며 술을  끝없이 들이키며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피해를 끼친 자들을 원망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전쟁이 끝난 후의 패잔병들처럼 내가  부상이 심각하다며 부르짖아우성과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던 좋아했던 그리고 사랑했던 (과거형입니다) 셋째 여동생을 얼마전에 만날 시간이 있었습니다. 기대를 품지 않으려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기대를 하지 않고 희망을 품지 않고 내일을  수가 있나요?


기대했습니다. 다시 여동생과 만나 자매의 정을 나누고 살아낸 시간을 위로하고  앞으로 살아갈 남은 시간을 격려하는 시간으로 남아 내 안에 따뜻한 용기로 저축이 되길 많이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좀 슬픈 결과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안 보고 살았던 일 년 동안 여동생의 살림은 많이 나아지고 형편이 펴졌는데 가슴에 피해자로 남았던 시간들이 많아서였던지 저를 많이 원망하더라고요.


“언니, 너 그러는 거 아냐! 그때 언니 네가 나한테 그랬었지?” 하며 하소연하는 에피소드들은 제가 듣기엔 다소 억울한 감정이 쌓이는 얘기들이었습니다. 저같이 잘 살았다면 내가 했던 쩨쩨한 베풂보다는 어려운 동생을 더 살뜰히 잘 살폈을 거라고 말해주더군요.

처음엔 항변하려 하였으나 나를 변호하려 했지만 나의 아우성을 거기에 보태는 걸 멈췄습니다. 그런 기분이 들더군요.

‘아.. 기운 빠져…, 나를 상처 주고 싶구나. 그럼 내가 상처를 받아줘야지. 아파해줘야지’


다시 그 감정을 되돌려주려 애쓰는 행위 자체가 귀찮고 싫어졌습니다. 적당히 연락하고 지내면 될 일이지 싶기도 하고요. 대충 살고 싶어 졌습니다. 진짜의 감정만 주고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이젠 그냥 표면적으로 응, 응 그러는 것도 흉내 내 봅니다.


내가 아무리 나의 상황을 설명해주려 해도 여동생에겐 이미 나는 실컷 10년이나 타던 중고차나 물려주고 자신은 이백만 원짜리 냉장고도 할부로 척척 사면서 집에 빨간딱지가 붙어 형편이 힘든데도  쓰던  냉장고 물려주면서 생색이나 내던 … 그런 가해자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어쩌겠나 싶습니다. 상대가 원하면 오래 아파해주려고 합니다. 내가 그걸 모른척할 방법을 모릅니다. 상대의 이글거리는 피해자의 항변이 느껴지는데 제가 그걸 모른 척할 자세가 되어있질 않습니다. 누가 나를 칼로 해하면 그 상처를 오래 들여다보며 울고 있을 수밖에요.  나는 그렇게 생겨먹었는걸요.


명절 연휴를 평안하게 보내고 세 식구가 모른 척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일 년, 힘들게 재수한 딸의 결과물을 온 식구가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하루하루를 반짝거리는 보석 대하듯이 그렇게 잠시 휴식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딸아이가 들어간 서울의 여자 대학교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어머님은 아니었던가봐요. 아이와 저만 알아들을  있는 애매한 말로 상처를 주셨습니다. 딸아이가  알아들은  알고 나만 혼자 삭히면   알고 며칠을 그냥 숨만 쉬며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어제저녁에 딸과 대화를 하다 눈치를 챘습니다.


속 깊은 딸이 할머니의 차가운 반응에 상처를 받았더라고요. 애써 자신은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길래 엄마한테는 속이지 말고 속시원히 털어 넣으라고 달랬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나만 미워하시면 될 일인데 내 딸에게까지 자신의 세상 조건을 기준으로 내세우시니 마음이 참 … 그랬습니다.

좀 더 젊었을 때는 부글부글 끓으면서 어떻게든 어머님에게 저의 마음을 화난 마음을 전달하려 애썼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싸우고 말입니다. 우리 편을 들어달라고 내 편을 들어달라고 며칠을 투닥거렸답니다.


그런데 어제오늘은 어쩌겠나싶습니다. 미운 며느리 상처 주고 싶은 시어머니 마음이 그대로 알아지는데 어머!  상처  받았어. 하고 모른  하하 호호 거릴 자신 없습니다. 그럼 패배자라고요? 패배자 하죠 . 그래서 지금은 기운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나를 가슴 아프게 하고 비웃고 싶고 기분이 상하게 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성공하셨어요.

저는 매우 슬프답니다. 만족하시나요? ‘


바람이 부니 바람을 맞아야겠고 비가 내리니 비를 젖을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과 달라진게 있다면 노여움 없이 이기려하는 마음 없이  마음만 관찰합니다.

내 몸이 컴퓨터 전원스위치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만 살고 싶다고 스위치를 내릴수 없으니 하나님이 주신 하루, 담담히 견디어 나갈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저녁, 전주에 내려갔다 올라오며 사왔던 앵초 바라보며 아픈 마음 꺼내 놓습니다.


제가 좀 아프네요. 어쩌겠어요. 괜찮아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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