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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Apr 02. 2022

미친 흡입력, 파친코 후기

드라마 파친코에 반해서 책을 보게 되었는데 장편 두 권을 하루 반나절 만에 모두 속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게 압도적으로 재밌었어요. 처음 빌려온 날 저녁 11시에 읽기 시작한 책 1권을 새벽 5시에야 다 읽고서 책장을 덮었습니다. 책을 다 읽어야 드라마가 완벽하게 이해됩니다.


어제 4화에는 원작에는 없던 장면이 들어가서 각색이 많이 되었더라고요. 선자가 일본 오사카로 향하는 배에서 겪는 일이 극적으로 각색이 된 거 같습니다.

한국 가수가 선자와 같은 배에 탑승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 입니다. 선창 밑의 조선인들이 돼지우리에 갇힌 가축처럼 실려가는 거에 비해 갑판 위의 귀족 일본인들은 선상 파티를 즐깁니다. 한국인 가수가 멋진 아리아를 부르다가 갑자기 한국의 민요를 부르고  노래를 듣던 선창 밑의 한국인들이 벽을 치며 박자를 따라 하죠.


노래를 한 곡 다 부른 한국인 여가수가 나이프로 목을 그어 자살을 합니다.


그 부분이 꼭 들어갔어야 했나 싶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는 기존의 일제 치하를 다루던 뻔한 클리셰를 안 넣어도 충분한 … 멋진 원작이었거든요.

독립운동하는 사람 나오지 않고 고문당하는 장면 없고 태극기 들고 독립만세 외치지 않아도 선자의 일생을 따라가기만 해도 가슴에 묵직한 납덩이가 올려진 듯 너무 멋진 … 훌륭한 책이었거든요.


선자는 살아냅니다. 그 살아내는 일생이 주는 감동이 대단합니다.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가 겪는 재일교포로서의 아픔도 가슴 아프다는 말로는 모자라고 면도칼로 생살이 베인 듯 마음이 오래 아픕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한 번도 재일교포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았던 민초가 어딨을라고… 하고 모른척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픔입니다.


책의 주제는 선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가 일본인 친구 하루키에게 털어놓는 푸념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우리가 어디로 가겠어? 고국으로 돌아간 조선인들도 달라진 게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


일본에 끌려가 어쩔 수 없이 살아낸 인생들이 자손을 낳았고 그 자손의 자손이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아도 그 아이는

일본 국적을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13살 생일이 되면 아이는 처음으로 외국인 관리소에 찾아가 인주를 찍고 3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외국인등록증을 신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평생 일본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내야 하는 거였습니다.


드라마 4화가 좀 각색이 되긴 했지만 드라마는 너무도 좋았습니다. 8화까지만 끝나는 게 아쉽습니다.


천억이 들어갔다죠? 애플 덕분에 우리가 힘 들이지 않고도 일제강점기의 고난스러운 역사를 세계로 알릴 수 있다는 게 너무 통쾌하기도 합니다.


자이니치의 삶, 조센징의 삶, 캉코쿠징으로서의 삶을 강요받아야 하는 우리의 또 다른 민초들의 삶을 잘 표현해줘서 너무 감격스러운 책이고 드라마라 생각됩니다.

이민진 작가는 이 책을 30년에 걸쳐서 썼다고 합니다. 제대로 완성이 된 시기는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가게 된 일본에서 수십 명의 재일교포들을 취재하고서야 제대로 다 쓰일 수 있었다고 후기글에 쓰여 있더군요. 고난의 장면을 극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책 두 권에 걸쳐 이렇게 생생하게 가슴에 와닿은 아픔의 역사를 읽게 된 걸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펄벅의 대지와도 맞닿아있고 스칼렛 오하라의 생존기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위대하다 #파친코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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