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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Apr 14. 2022

딸은 친구가 아니지, 그냥 딸이지.


사실은 저는 친구를 사귀는 걸 싫어합니다. 사람을 워낙 좋아는 하지만 내 인생의 관계를 추가하는 게 매우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라 여겨지고 힘들어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하지 말자고 마음먹게 된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염세주의자는 아닙니다. 사람들을 좋아하죠. 매우 좋아해요. 관계의 시작에 매우 설레어하고 사람이 주는 기운을 믿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사귀고 친구를 맺는 일엔 상당한 희생과 에너지가 수반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매우 어렵게 느껴집니다.


관계의 주도권, 부부에서의 관계마저도 평행선보다는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몰아줘버리고 살았던 시간들 사이의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저는 늘 ko패를 당하곤 했던 거 같습니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남들이 보는 나의 이미지는 언제나 당당하고 멋져 보이고 해맑고 즐거울 거 같은 사람이지만 속내는 전혀 딴판이었거든요. 관계가 무너지는 거,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는 것, 불편해지는 것에 굉장히 심한 불안을 느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언제나 늘 그 사람의 밑에 있기를 자청했습니다.

그건 아주 쉬웠거든요. 상대가 날 싫어하는 게 싫으니 무조건 그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게 모든 주도권을 상대에게 맡겨버리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결말도 똑같아집니다. 그 상대는 나를 아주 만만하게 보기 시작하고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내가 처음에 해주었던 선한 의도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시간이 더 지나면 저에게 막말도 서슴지 않게 되곤 했습니다. 결국 결말은 제가 일방적으로 그 상대를 차단해버리는 걸로 끝을 내곤 했습니다.


내가 어떠어떠한 이유로 당신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얘길 하는 거 조차도 싫고 귀찮고 힘이 드는 일이었거든요. 그게 너무너무 귀찮고 싫으니 어쩌겠습니까.


"난 괜찮아, 정말 괜찮아. 당신이 편한 데로 모든 걸 다 맞춰줄게요."


늘 그랬습니다. 잘 안 고쳐져서 깊은 관계 맺는걸 어느 순간부터는 멈춰버렸습니다. 적당히 멀찍이 거리를 두고 누가 나에게 친하게 다가오는 거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면서 곁만 뱅뱅 도는 게 차라리 편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됐냐고요? 또 그런 거 생각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귀찮아집니다. 말도 길어지고요. 그냥 간단히 얘기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관계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부정을 당하면 저같이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하


평생 엄마와 손을 잡고 다녔던 기억이라던지 다정했던 기억 내지는 보살핌을 받았던 그런 추억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이가 내일모레 오십이 되어가면 이젠 누굴 원망하거나 탓을 하는 건 더 귀찮고 부질없는 일이라 지금 나에게 맞는 최선의 관계 맺기가 무엇인지에만 집중하자 맘먹은 이후론 더더욱 친구를 잘 만들지 않습니다.


이런 여인이 성장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때부터 굉장히 곤란하고 숙제 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딸을 안아주는 일이 서먹한 엄마... 좀 슬프지 않나요? 그런데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속 깊은 딸을 하나님이 만나게 해 줘서 저의 부족을 딸로 인해 많이 메꾸고 살았습니다.


2주 전에 딸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첫 월급을 탔다고 온 식구가 계를 탄 듯 즐거워하는 일이 생겼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을 사서 시댁엘 다녀왔었고 아빠에게는 개나리 색상의 티셔츠를 선물해줬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한 이벤트를 해 줬는데 그 일이 처음 얘길 듣고는 하기 싫다고 짜증을 냈던 일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을 두 가지 고르라면 관공서 가는 일과 사진 찍는 일인데 엄마랑 기념사진을 찍는 걸 신청했다는 겁니다. 사진을 찍는 장소까지 가서도 투덜투덜 댔으나 막상 사진작가님이 오시고 봄꽃이 지천인 올림픽 공원을 다니며 한 시간 동안 사진 촬영을 하는 일이 상당히 재밌고 신이 났습니다.


그날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딸을 다 키워놨더니 결혼사진 이후론 핸드폰 사진도 잘 안 찍는 나를 위해 딸이 사진사까지 대동하고 나와 사진을 같이 찍고 아이들이 놀러 가는 놀이동산엘 세 식구가 같이 놀러 갔었거든요.


다른 집은 아이들이 성장하며 엄마가 딸의 친구관계를 걱정해주는 풍경이 다반사인데 우리 집은 딸이 엄마의 친구관계를 걱정해주며 성장했습니다. 어느 해의 생일 카드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엄마는 눈도 예쁘고 얼굴도 예뻐서 엄마를 사랑해주는 친구가 많이 생길 거니까 슬퍼하지 말라는"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아요. 그 엽서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습니다. 늘 저를 예쁘다고 해 줍니다. 그리고 엄마의 기분을 제일 먼저 챙겨주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작년 재수를 힘들게 할 때 말고는 저를 힘들게 했던 적도 없었던 거 같아요. 올림픽 공원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딸과 쑥스러운 포옹을 하면서 속으로 너무 행복하면서도 이젠 딸이 바빠서 언젠가는 나와 놀아줄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당도할 줄은 몰랐는데요.


막상 그 시간이 도래하니 제가 단짝 잃은 여고생처럼 삐치는 마음이 되더라고요. 대학생 연합 동아리에 들어간 딸이 슬슬 바빠지기 시작하더니만 같은 동아리의 복학생 오빠랑 알아가는(?) 좋은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애들은 연애를 연애라고 하지 않고 알아가는 사이?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걸 좋아하나 봅니다. 연애 시작인 거야?라고 물었다가 시대감각 없는 구식 엄마 취급을 금세 하더라고요.


처음엔 딸에게도 남자 친구가 생겼구나 싶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몇 가지 소품의 등장으로 인해 제가 마음의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간이식이라도 강제로 당한 거처럼 몸과 마음에서 부적응이 일어나는데 그 마음이 참 당황스럽고 딱했습니다.


늘 말로는 저 녀석 대학 들어갔다고 좋아했더니 비대면 수업이 많아서 점심 차리고 돌아서면 저녁을 차려야 한다고 남편에게 투덜대던 게 엊그제였는데 딸아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는 시기가 와 버렸고요. 그것도 너무 느닷없이요.

주일 예배는 가족의 일주일만의 늘 있는 나들이 겸 외식의 날이었는데 이젠 그날도 딸의 단독 외출이 고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후 딸과 셋이서 매일 어디로 외식을 갈 건지 고민하였는데 지난주엔 남편하고 교회 근처 효창공원을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배가 아프다는 딸이 하루 집에서 쉬길래 오늘은 안 나가나 보다 했는데 잠시 남편과 외출하고 돌아오니 냉장고 안에 배달된 죽통과 샌드위치와 이온음료 1.5리터 병이 있더라고요. 딸의 취향과는 전혀 다른 몽둥이만 한 비싼 샌드위치를 누가 사놓았나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더라고요.

또 배가 아파서 죽을 끓여줘야 한다고 귀찮아 죽겠다고 투덜대며 들어왔는데 내가 챙기지 않아도 낯선 청년의 도움의 손길이 있는 걸 보고 기분이 상당히 묘했습니다.


금요일마다 딸과 쇼핑을 다니며 좋아했는데 그 놀이도 4월 한 달 하고 끝내야 하는 잠깐의 이벤트였던가 봅니다. 굉장히 재밌었거든요. 딸과 노는 게요.


쇼핑 다니고 외식하고 좋은 물건 몸에 걸쳐보며 서로 예쁘다고 호들갑을 부리며 같이 놀던 딸이 여태의 어떤 친구보다 백배는 더 편하고 좋았었는데 말입니다. 이젠 그 친구 같은 딸은 자기 인생에 찾아온 봄날을 제대로 즐기려고 나비처럼 폴폴 거리며 날아가버렸습니다.


오늘은 일주일의 일을 끝내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놀고 싶어서 마음이 문간에서 서성댔으나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는데 한 두 달 딸과 다니던 버릇이 그새 몸에 배어서 너무 허전하고 심통이 나더라고요. 꼭 단짝 여자 친구를 새로 생긴 남자 친구에게 뺏긴 사춘기 계집아이 같은 기분이 들더란 말입니다.

한숨을 깊게 쉬고 세월의 변화를 또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어제까지는 여름 같았는데 오늘은 갑자기 겨울 같아진 봄 거리로 혼자 나갔다가 바람난 봄처녀처럼 생전 하지도 않던 페디큐어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 발톱이 모양새가 내 발 같지가 않아서 멀뚱히 맨발을 쳐다보고 있는데 딸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며칠 전부터 딸에게 뚱해있었는데 그게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대학생이 되어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같이 얘기할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엔 같이 교회 갔다가 외식하고 오는 건 가족과의 시간이니 그 시간은 꼭 지키겠다고 하더군요.


잠깐 한 달, 봄처럼 마음이 즐겁고 행복했던 걸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딸은 어디까지나 딸일 뿐이지 딸을 친구같이 여기면... 그것도 참 곤란한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딸의 인생의 경로가 있을 텐데 관계 맺기에 부적응자인 엄마가 딸이 아무리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고 해도 매양 같이 놀자고 우기면 얼마나 곤란한 노릇입니까.


딸의 봄날에 기대어 잠깐 같이 봄볕을 받았던 올해 4월의 초입의 행복을 오래오래 기억해두려고요.

딸은 딸이지, 친구가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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