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재밌어서 혼자 생각하는 화두는 나는 욕망하는 걸 멈추지 못한 사람+아줌마인데 굳이 이걸 분류로 나눠보자면 맥시멀 쪽일까 미니멀 쪽일까 싶었습니다. 사람 유형 나누는 거 싫어해서 (난 혈액형 세대이기도 하고 ) 요즘 이거 모르면 이야기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MBTI 마저도 철저히 외면하는 부류인데 굳이 고민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이유인즉, 제가 요즘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가며 즐겨보고 있는 유투브 채널 중에 <정리마켓>이라는 채널이 있습니다. 매주 한 분의 일반인 주부님들이 나와서 실생활 밀착형 정리 수납된 자신의 집들을 보여주거든요. 정리전문가가 비포 앤 애프터로 일부러 꾸며놓은 집이 아닌 각자만의 개성으로 꾸며진 집의 정리상태를 보며 매 번 감탄을 하는데 댓글의 양상이 딱 양분화되더라고요. 미니멀을 지향하는 쪽은 무례한 명령어를 배출하는 ai처럼 애써 어렵게 살림을 보여주고 기쁘게 촬영한 출연자에게 요구를 당당히 합니다.
“물건이 너무 많아요, 당장 버리세요.”, “너저분해요, 뭐가 단정하다는 거임?” , “ 정신 승리 오지게 하셨네요.”,
그 댓글들을 볼 때마다 용기를 내서 출연한 일반인 주부들이 상처를 받을까 조마조마했었습니다. 미니멀에 열광하는 시류인 건 알겠는데 좀 과격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했거든요. 미니멀이든 맥시멀리스트이든 사람이 살기 위해 욕망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가 다르고 내 행복을 결정하기 위한 순간의 선택으로 일상이 채워지는 것인데... 남들이 미니멀 좋아한다고 내가 사랑하고 애정하는 살림이나 행동양식이 비난을 받는 요즘의 다소 과격한 양상이 좀 흥미로웠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유행이 있긴 하거든요. 요즘 정리의 대세는 뭐니 뭐니 해도 <미니멀>이죠. 극강의 미니멀부터 좀 순화된 미니멀까지 그 층도 다양하고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홀가분한 행복을 느끼는 그 기분도 너무 잘 알고 지구를 위하는 숭고한 마음도 너무너무 (*100) 잘 알지만 미니멀을 숭배하는 현상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좀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스무 살, 서울로 갓 상경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해야 할 시기에 창천동 언덕배기의 작은아버님댁에 7년을 더부살이로 얹혀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작은 한평 반 남짓한 방에서 많이 팍팍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지 모르나 그 방을 예쁘고 깔끔하게 관리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낡은 침대 위에 나에겐 좀 사치품이었을지도 모를 파스텔톤의 파란색 침대시트를 씌워주고 침대 옆엔 고급 협탁대신 싸구려 조립식 옷장 위에 천을 깔고 그 위에 아기자기한 장식품을 놓아두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하루의 아르바이트를 나가지 않으면 내 입에 넣어줄 식량을 누가 대신 벌어주고 내 학비를 대줄 혈육이 없었기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새벽 알바를 하고 학교를 가서 빨갛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수업을 듣곤 했었거든요. 그런 팍팍한 현실 틈에서 내 방의 사치품, 파란 리넨 침대시트는 내가 숨 쉴 수 있는 내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소중한 살림템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 버릇이 누적되어서인지 저는 지금도 욕망합니다. 나를 오늘 하루의 일상에서 행복하게 해 줄 예쁜 소품이 있으면 자수할 거리가 있으면... 가구가 있으면... 심사숙고해서 소비합니다. 내 작은 공간에 들일 가구의 사이즈를 신중히 재고 이곳저곳으로 배치해 보며 골몰하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아마 다들 비슷할 겁니다.
내 공간에 물건이 없이 단출한 삶이 행복한 사람이 분명히 있고 나처럼 곳곳의 공간을 뭔가의 예쁜 것들로 채우는 게 행복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사람의 성격을 MBTI로 나누는 걸 좋아하는 지금의 시류도 그냥 단순한 시대가 만들어낸 ‘유행’으로 생각하고 저에겐 적용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좀 의아합니다. 인간의 오장육부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숨어있는데 그걸 크레파스 24색처럼 유형을 분류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그냥 재밌다고 생각하고 말거든요.
그걸 비난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사람의 소유 욕구마저도 ”너 mbti 뭐야? “ 묻든 너 미니멀이야, 맥시멀이야 물으며 어느 쪽인지를 강요하는 게 쪼금 불편합니다. ㅎㅎㅎ
얼마 전 선물 받은 일본의 정리전문가 <곤도 마리에>님의 책을 읽고 있는데요. 단순한 플롯이지만 주제는 명확합니다. 정리를 하는 이유, 네가 행복한가를 묻는 행위라고요.
가을바람이 이젠 제법 가을티가 확연히 나는지 반바지를 입은 다리에 소름이 돋아서 얼른 종아리를 덮는 꽃무늬 바지로 갈아입고는 내가 욕망하느라 (행복하고 싶어서) 사들였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작년에 무려 할부를 6개월이나 나눠 결재를 해야 했던 나의 최고의 사치품이자 반려소파는 천연가죽에 때가 묻는 게 싫어서 얼마 전까지 소파패드를 꼭 깔아 두고 식구들을 앉게 했는데 이젠 그 불편한 소파베드를 과감히 빼고 맨 얼굴의 소파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까워서 맨 살을 만지지도 못했는데 구입한 지 일 년 반이 지나서야 맨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아직도 엄마미소를 짓습니다. 베란다로 나와 잘 마른 흰색 반팔 티셔츠를 거둬들입니다. 브이 라인의 반팔 티셔츠는 백화점 세일할 때 5년 전에 사두었던 것인데 내가 많이 아껴 입는 애정하는 티셔츠입니다. 손바닥으로 다림질하듯 좍좍 펴준 후에 잘 개켜서 옷장에 넣어두고 흐뭇하게 뒤돌아섰습니다.
나는 아직도 욕망하는 아줌마사람이라 누가 나에게 맥시멀인지 미니멀인지 묻는다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물건을 좋아하지만 내 행복을 위해 소비를 하지만 이걸 굳이 분류해서 대답해야 하는지는 좀 더 숙고해 보겠습니다. 입장 제한을 당하기라도 할 것처럼 입구에서 너는 맥시멀인지 미니멀인지 묻는 곳이 있다면 저는 아마 그 입구에서 한참을 고민하며 서 있어야 할 듯요.
그런데 그걸 굳이 꼭 정해야 하는 건지.... 그것도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