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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Jul 31. 2020

심리상담을 시작했습니다. (1)

3주 전부터 구상해둔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아직 창작의욕만 불타오를 뿐 글 쓰는 재주는 영아니올씨다인 수필 쟁이 김정은이 드라마 대본으로 꼭 바꾸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겁니다. 이제 겨우 두 개의 대본을 써냈을 뿐인데 늘 듣는 얘기가 똑같았습니다.

너무 수필 같다, 주인공들이 너무 착하다.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가 될 수 없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싫은 지적이었으나 합평의 말들이 주는 소음을 가라앉히고 앙금을 들여다보니 그 말들 중에서 틀린 말을 찾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좀 욕심이 많습니다. 그것도 능력보다 욕심이 앞서는 사람이기도 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합니다. 세 번째 쓰는 드라마 대본도 역시 내가 겪은 일들 중에서 조심스레 선별해봤습니다. 아빠의 사고를 당하고 내가 겪은 안. 밖의 합의에 대해서 써보기로 하고 오래 공상과 멍 때리는 시간을 거친 후 엊그제 드디어 노트북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노트북의 커서는 깜박이는데 머릿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뒤엉켜서 변비에 걸린 아이처럼 끙끙거리기만 할 뿐 한 글자도 자판으로 기어 나오질 않았습니다. 집안을 불안하게 서성이며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시청자에게 심어주고 싶은 한 줄의 주제도 생각이 안 났고 어떤 감정과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었던 건지 감정의 갈래가 분명하지가 않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심리상담을 다시 시작하라고 채근하던 친구의 말을 빈정 상하게 듣고 말았는데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싶더군요. 상담비 9만 원이 아까워서 가기 싫었는데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걸로 싸게 퉁치려 했었는데 말입니다.

상담을 2014년 8월에 처음 경험해봤었습니다. 한 일 년 정도는 주욱 받았고 그 이후론 띄엄띄엄 보수작업하러 가끔 가곤 했었는데 2년 전부터는 아예 가질 않았었거든요. 이제 나한테는 필요 없는 경험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할 만큼 해봤으니까 그 형식이 어떤 건지 아니 내가 스스로 셀프 자가 치유가 가능하다고 오판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은 다시 스트레스에 심하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밤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우황청심환 하나를 먹고도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대상이 명확하지 않았고 어떤 게 심하게 분한 건지도 내 마음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몸을 강탈해가다시피 한 막내 여동생이 병원비는 보험사에서 지불이 됨에도 불구하고 삼촌과 할머니와 남동생을 통해서 계속 돈을 달라고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전화 한 번을 받을 때마다 분노로 치가 떨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 하면서도 내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게 치욕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평생 동네의 조롱거리 술꾼으로 손가락질을 받아도 형제들에게 천덕꾸러기 신세로 취급당해도 그걸 겪으며 제가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잘살아야 한다고 채근했던 지난 세월이 제 등 뒤에서 다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꼭 목돈이 필요할 때엔 저에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아빠의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울었고 보청기를 또 잃어버렸다고 우셨고 밥솥이 고장 나도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남동생이 결혼을 할 때도 남동생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상황을 비관하며 울면 저는 그것들을 거절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저의 엄마였거든요. 잃어버린 엄마를 대신해 나와 동생들을 고아원에 가지 않게 막아준 대리 양육인이었고 내가 글로 그려낸 할머니는 가난하지만 정이 깊고 지혜로운 노인이었습니다.

내가 평생 사랑하고 존중했던 할머니가 총기를 다 잃어버린 목소리로 저에게 그랬습니다.


“ 내 아들 용찬이 돈 내놔라, 내 아들 돈 내놔라.”


보험료를 움켜쥐고 있는 내가 그 돈을 다 써버리면 어쩌나 싶어 나와 여동생을 제외한 모든 식구가 눈이 벌게져서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저는 태연하게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일을 하고 딸아이를 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밤엔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내다리 내놔라 쫒아오던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던 그 목소리 같이 귀에서 쟁쟁거렸거든요.


상담을 가기 전 빠른 상담 효과를 누리기 위해 저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머릿속에 간단한 스토리로 복기를 여러 번 해두었습니다. 상담에서는 내가 상처 받은 이야기를 빨리 꺼내면 꺼낼수록 치료받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저의 얇은 계산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두툼한 두께의 손수건을 미리 준비해 자리에 앉았는데 계산과는 달리 서너 줄 내뱉고 훅 숨을 내쉬고 펑펑 울었습니다. 울면서도 약삭빠른 제가 속삭였습니다.

울면 어떡해, 얼른 이야길 마무리 지어야 선생님의 현답을 들을 수 있을 거 아냐... 채근했지만 다음 말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빠의 사고도 할머니의 변화도 막냇동생의 기가 막힌 반란도 친척들의 셈이 다른 속내들도 저는 사실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겁니다. 친구와 하하거리며 웃으며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니란 걸 친구는 알았던 겁니다. 밥을 먹다가 우두망찰 넋이 나가고 울다가 웃는 저를 친구는 얼른 상담을 해보라며 등을 떠밀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참을 울며 띄엄띄엄 이야기를 마치다가 중간중간 제 말을 중단시키고 선생님이 하시는 질문이 저를 새롭게 각성시켰습니다.


“정은 씨, 할머니가 그동안 정은 씨가 글로 써왔던 할머니와 정말 다르게 변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기분이 어떠셨나요?”

“정은 씨, 그런 할머니의 변화가 할머니의 노화와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을 해보셨나요? “

“왜 정은 씨에게 할머니는 늘 지혜롭고 똑똑하고 현명한 판단을 하고 계셔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지혜롭고 현명한 할머니가 정은 씨를 이렇게 잘 키워줬다고 하셨는데 그런 할머니가 아니면 정은 씨는 어떻게 되나요?”


내가 생각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해내느라 애쓰며 50분이 끝이 났습니다. 우느라 귀가 먹먹해져서 선생님의 말이 들리지 않아 잠시 상담을 중단하기도 했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종일 선생님이 끄집어낸 내가 모르던 내 맘의 화두를 집어 들고 손도 뜨겁고 맘도 뜨거워 울적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대신 할머니가 나의 엄마였었고 그분이 그렇게 변하게 된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함에도 너무 충격이었던 이유는...


내가 또 엄마라 생각했던 소중한 한 분을 내 맘에서 놓아드려야 한다는 자각으로 종일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또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게 두려웠구나., 내 뒤를 지켜주던 현숙한 여인이 사라져 가고 있구나. 소멸하고 있다는 자각.

난 평생 엄마 하나를 왜 가질 수가 없는거야!! 눈물을 감추고 저녁엔 드라마 작법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또 우황 첨 심환 하나를 먹고도 남편 몰래 배갯잎을 적시고 겨우 잠을 청했습니다.


고3 딸아이가 치르는 마지막 기말시험 중인데 아침도 거른 채 보내야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질 못했거든요.


수업에 들어가기 전 교육원 옆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다가 맥주 한 캔을 시켜 혼자 먹으며 임상춘 작가님의 신인시절의 대본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대본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혼란과 고통이 좋은 글로 치환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맘에 잠시 희망이 생겼습니다.

임상춘 작가의 찐한 감정이 날렵한 필체로 날아다니는 대본을 읽으며 내가 울었던 눈물을 가슴 아픔을 꼭 글로 바꿔 다른 이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선물해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또 상담을 갑니다. 이렇게 숨겨진 감정을 하나씩 다 확인하고 살펴본 후에야 저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드라마 대본으로 풀어낼 수가 있을 겁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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