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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Sep 11. 2020

이번엔 담배연기가 문제다.

옆집 205호가 이사를 오고 난 후 오래간만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았다. 전에 살던 205호 이웃엔 사연을 도통 모를 남매가 비밀스럽게 칩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운 한여름에도 복도식 아파트의 현관문은 열릴 줄을 몰랐다.

가끔 그 집의 오빠로 뵈는 남성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러 가는 모습을 보긴 했으나 그것마저도 드세 뵈는 여동생의 만류로 바깥출입을 전혀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비밀의 남매가 이사를 나가고 난 후 발랄할 삼십 대 초반의 아들 하나 가진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오니 복도에 생기가 돌았다. 요즘 아이의 목소리가 얼마나 듣기 힘든 재잘거림이었던가? 옆집에선 오래간만에 사람 사는 냄새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늘 열어놓는 우리 집 현관 앞을 옆집 아이가 어른거리면 나는 얼른 달려 나가 아이 손에 간식을 들려줬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재밌어했다. 가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들어오다가 복도에 옆집 아이가 어른대면 나에게 집에 와서 알려주곤 했다.

“복도에 옆집 애기 나와 놀던데?” 그럼 또 냉동실에 얼려둔 약과 두어 개 집어 얼른 복도에 나가 아이 손에 쥐어줬었다.


지난 금요일, 딸 간식으로 김밥을 말았는데 세 식구 먹을 양을 살짝 초과했었다. 경비아저씨에게 나눠주고도 남아서 이걸 옆집 주고 싶은데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귀찮아할 수도 있어서 에잇 말자 싶었던 차였다.

그런데 복도에 잠깐 나갔다가 옆집 아이를 만났다. 반가운 맘에 김밥 먹을 거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반가운 종종거림으로  일회용 그릇에 김밥 한 줄을 담아 건네주러 나가니 옆집 새댁이 여행가방을 들고 나와 있었다.

새댁도 현관 앞에서 나와 아이의 대화를 들었나 보았다. 손에 사과즙 봉지 세 개가 들려있었다. 사과즙을 답례로 받아 들며 잠시 복도에서 수다를 나누게 되었는데 옆집 식구가 모조리 담배연기 때문에 피난을 가는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 시국의 칩거도 서러운데 아랫집의 담배연기로 인해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가는 신세라니. 6.25 전쟁엔 비할바가 아니지만 신인류가 맞닥뜨린 비극 내지는 촌극쯤으로 여겨질 만하다.

그 전 주인들에게서는 아무런 얘길 듣지 못했냐고 새댁이 나에게 물었다. 그전 이웃은 나와 8년을 같은 이웃으로 살면서도 현관문 열린 적이 없었기에 아랫집의 담배연기가 이렇게 극심한 줄 알리가 없었다.

위층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아랫집 아저씨는 집에서 담배를 시도 때도 없이 피우고 계시는 이유로 옆집의 고통이 극심하다고 했다.

옆집 새댁은 공교롭게도 임신 초기였다. 새 집에 이사 와서 새로운 꿈을 가지고 잉태한 작은 생명에게 담배연기는 독약과 같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속에서 의기가 솟았다. 남편과 친구는 그런 나를 말리느라 말로 찬물을 들이부었다.

“또 또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그러기만 해. 가만히 있어. 옆집 일이야. “


그러긴 하지, 남의 집 일이긴 해... 하면서도 며칠을 계속 맘에 분기가 재화로에 타다 남은 불씨처럼 꺼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참에  경비아저씨를 만났길래 205호의 고충을 한참 토로했더니 그 얘기가 바로 부녀회장님에게로 송출이 되고 부녀회장님은 다시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아파트에 오래 산 덕분으로 경비아저씨와도 친하고 부녀회장님과도 안면이 트여 있어서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신 게 감사할 노릇이었다. 그리곤 오늘 아침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105호 아저씨가 아파트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며 착잡한 표정으로 205호를 쳐다보는 걸 발견했다.


드디어 해결 인가 싶어 너무 반가웠다. 코로나로 사람 얼굴 마주 대하기도 힘들어 관계 단절의 외로움을 겪어야 하는 이 시기에 내 집에서도 편히 쉴 수 없다는 건 너무 잔인했다. 본인의 편함을 위해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민의 이기를 잘 타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옆집 새댁에게 반가운 소식을 문자로 알렸다. 그리고 한 가지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당부도 했다.


돌아오면 꼭 105호 아저씨에게 예쁜 엽서랑 사탕 한 봉지 사드리시고 경비아저씨들 치킨 한 마리만 시켜주시라고.  나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흡연 민원을 관리실에 백번 넣어봐야 안내방송만 나갈 뿐,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이웃 간의 분쟁은 당당한 클레임 제기보단 사탕 한 봉지와 치킨 한 마리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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