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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Sep 26. 2020

새김치를 담아야 할 시기랍니다.

슬픔이 차올라야 글을 쓸 수 있나봅니다. 글이 없는 동안은 이 사람이 꽤 무미건조하지만 무난하게 잘 살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무소식이 희소식, 글 없음이 저의 평안의 일상이라니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이번 한주는 좀 특별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원래 추석 전이나 명절 전엔 한가했거든요. 친정엄마에게 받는 한 꾸러미의 음식 콘셉트가 당연히 명절 즈음엔 필요하지 않기도 해서일 겁니다. 그래서 추석 전 일주일은 늘 놀고먹는 한주였는데 이번 주는 달랐습니다.

정부에서 코로나로 인해 추석명절 이동을 제한하고 있어서 저에게 주문이 좀 들어오더라고요. 전을 부쳐 급랭을 시키고 마른반찬을 만들고 갈비소스를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느라 하루가 26시간인 것처럼 일을 했습니다.

저녁에 식구들 저녁 준비를 해 놓으면 몸이 축 쳐졌는데 진통제 한 봉지를 입에 털어놓고는 제가 매일 김치를 담는 겁니다.


화요일엔 얼갈이를 같이 절여 열무김치를 만들어놓고 수요일엔 깻잎 물김치를 목요일엔 쪽파김치를 담았어요. 명절 일주일 전이면 식구들 맞으려 새김 치를 담는 일은 할머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갖은 명절 음식이 많아도  갓담은 김치 한 접시가 없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거처럼 할머니는 김치를 꼭 담았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본인 몸이 성하질 않으니 애꿎은 고모를 귀찮게 해서라도 그놈의 김치를 담느라 한바탕 부산을 떨곤 했습니다.


제가 그걸 따라 하고 있었던 겁니다. 할머니가 식구들을 맞을 김치를 버무리듯 나 역시 우리 집에 오지 않을 동생들을 기다리며 그들에게 먹일 김치를 준비하며 냉장고에 쟁여놓고 있었습니다.

담아놓기만 하고 건드리지도 않았던 파김치의 한 귀퉁이를 헐어 어제저녁 맛을 보았습니다. 햇쪽파의 알싸한 매운맛이 위장으로 내려갑니다.

몇 개 집어먹지도 않았는데 속이 아려서 등에 핫팩을 붙이고 설거지도 하지 않고 누웠습니다. 아빠는 어떡하고 있나? 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잠시 생각하는데 속이 더 아려와서 생각을 멈췄습니다.


모르겠다. 모르겠는데? 어떻게 되겠지 하며 윗목에 고민거리를 쓱 밀어 놨습니다.

친정식구 없는 명절이 처음인데 내가 식구들 먹일 김치를 담고 있었다고 친구에게 얘길 하니 몇 년 지나면 그것도 익숙해질 거라 말해줬습니다. 처음엔 많이 허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엄청 편할 거라고.


기쁨과 반가움보다는 내 속을 끓게 하는 애증이 더 많았던 친정입니다. 오히려 편하고 좋지 않냐고 자위도 해봅니다.

그러면서도 내 몸은 명절을 기억해내고 누굴 먹일지 대상도 분명하지 않은 김치들을 담고 있습니다. 뭐,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 있던 쪽파김치를 다시 꺼내 베란다에 내어 놓았습니다. 내 속이 쓰리고 애린 건 덜 익은 쪽파 때문일 겁니다.

하루 더 익혀 넣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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