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다 말고 잡담의 시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었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 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 지르고 담의 정수리을 타 넘어
담을 열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 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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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아일랜드 식탁에 앉아 글을 쓰다가 높은 의자가 허리가 아파 딸아이 방으로 건너와 글을 한참 쓰던 중이었습니다.
전체글의 1/6 정도 온 셈인데 갑자기 막막해져서 고개를 들어 딴짓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엔 딸아이 방에 들어올 일이 없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책상 앞에 붙어있는 시 한편이 눈을 잡아 끕니다.
혼자 이 방에서 우리딸도 공부하며 막연해지고 막막하고 두려울때 이 시를 읽으며 맘을 잡았나보다 싶었습니다.
‘잠시 살 붙었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아침에 감기 기운에 머리가 아팠는데 남편이 가방을 챙겨 독서실을 가자고 부산을 떨길래 잠시 짜증이 났습니다.
분위기 좋은 곳, 조용한 곳 찾아 데려다놓고 저 혼자 글 쓰게 놔두고 본인은 핸드폰 보다 꾸벅 조는 남편의 외조가 고맙기도 했지만 요며칠은 너무 부담이 되었거든요.
내가 재능이 마구 차고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미안함 맘도 컸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지만 그 기대가 느껴져서 좀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작가교육원에 들어간 후로 딸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간절히 눈물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누가 옆에서 억지로 밀지 않아도 혼자서 하겠구나 싶은 깨달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란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글이 안써져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번쩍 일어나 또 노트북 앞에 가 앉을수 있는거처럼 아마 딸도 분명 그럴거란 믿음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오늘은 막막함과 외로움이 생겨났는데 우연히 딸의 방에 앉았다가 딸이 외로웠던 순간과 마주했습니다.
공부하다 불안해지면 이 시를 읽고 힘을 내었나봅니다. 여린 가지가 담장을 넘은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걸 해내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봅니다.
왜 막막하냐고 내가 나에게 물어봅니다. 칭찬 받고 싶고 우쭐하고 싶은 욕심,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보입니다. 딸이 붙여놓은 시구 한번 더 읽고 다시 글 써 볼렵니다. 실력없는 작가가 운 좋아 상 타는건 드라마의 미래를 위해서도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입니다. ㅎㅎㅎㅎ
요행을 바라지 말것. 니가 쓰고 싶은 글이 무언지 자꾸 들여다볼것. 시청자에게 어떤 감동을 주고 싶은지도 잊어먹지 말고 자꾸 생각할것.
저는 이제 겨우 망생이 1년차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