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사랑의 꿈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로빈 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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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킨라빈스에 가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나 슈팅스타보다도 바닐라, 아니면 쿠앤크.
나의 삶에서 그 다정하고 온화한 맛이 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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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가까운 친구의 연애 고민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고민은 남자친구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아주 우악스럽게 줄여 말하면, 여자가 무언가를 잘못했고 남자는 그 때문에 여자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고 말합니다. 너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이렇게 믿음이 깨진 상태로는 너와 함께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자는 고통스럽습니다. 남자의 말대로 내가 잘못한 것이 맞는 것 같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망가져서 너무 괴롭고 미안하다고 합니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 그 정도로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친구와 대화 중에 가스라이팅이 어떻다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 책은 그때 했던 고민의 여운이 남은 채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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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를 존중하고 먼저 생각하려는 마음을 인질로 잡아 타인을 휘두릅니다. 누군가는 의도해서 그렇게 하고, 다른 누군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합니다. 둘 중에 뭐가 더 나은 상황인지도 헷갈리네요.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서 한편으로 했던 생각은, 차라리 그 남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이 아이를 악의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거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에 빠졌는데, 그게 악의가 아니라 순전한 사랑의 마음 때문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비극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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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믿었던 것으로 말미암아, 부지불식간에 타인에게 그런 종류의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닿으니 두려운 마음에 고민이 길어집니다. 나는 안 그러고 싶은데. 그럼 좀 덜 사랑해야 하는 건가? 며칠 정도 이리저리 곱씹어 보다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뻔하지만, 서로의 소유물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으로 존중하며 함께하는 관계였습니다. 분명 나랑은 다를 것이고 어떤 점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 당신이 틀렸다거나 이렇게 고치라고 말하지 않는 마음. 그런 것들을 되뇌며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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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맛이 맵거나 짜기보다 고소하고 달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너무 뜨겁지 말고 때로 도리어 미지근하거나 차가워야 할 때도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라는 생각을, 새벽 한 시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먹으며 글로 옮깁니다.
아 살 빼야 되는데.
위 글은 로빈 스턴의 책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를 읽고 썼습니다. 독서모임 플랫폼 트레바리를 통해 먼저 공유한 것을 글쓴이의 브런치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