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은행나무.
첫 문장을 뭐라고 쓸까 고민하다 은행나무 이야기부터 써 보겠습니다.
은행나무에 대해 여러분이 모르셔도 되는 사실 하나는, 은행나무가 처참하게 절멸한 일족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겁니다. 분류학상으로 가까운 친척 나무들이 꽤 있었지만 옛-날옛적에 죄다 사라지고, 지금은 혼자 남았습니다. 옛날옛적이라고 하면 그러니까 대략.. 이백만 년 전부터요. 지금 우리가 보는 은행나무는 어느 다른 나무와도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니고, 그냥 ‘은행나무’예요. 생물분류체계로는 ‘식물계 은행나무문 은행나무강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 은행나무’. 여기서 ‘은행나무문’ 부터는 은행나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해마다 산책로를 함께 물들이는 단풍나무와는 좀 친해 보이지만, 실상 족보와 촌수를 따져 보면 은행나무보다 차라리 귀리나 알로에 따위가 단풍나무와 더 가까운 친구들입니다. 이쪽은 같은 속씨식물 패밀리거든요.
그런 건 어떻게 아냐구요? 나무위키에서 봤어요.
나는 나무위키를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호기심이 강해서, 그런 오만 가지 쓸모없는 새로운 지식들 사이에 파묻혀 정처 없이 떠돌기를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는 그게 학교 도서관 한켠에 빽빽이 꽂힌 두산백과사전이었고, 지금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펼쳐지는 인터넷 세상 속 문서와 서적들이 그 자리를 채워 주고 있습니다. 몰랐던 것을 읽고 알아가는 일이 어지간히 즐거웠기에, 지금보다 어리고 용감했던 시절엔 세상 모든 지식에 통달해 일이관지로 꿰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게 여러 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명민한 이의 일생을 추동한 것은 이모저모로 결국 앎에 대한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빛나는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던 소년 데이비드를 학계의 별들 사이로 끌어올린 것은 세상을 낱낱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함부로 주물러 [위대함]을 빚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우주의 이치와 옳고 그름에 대해 모든 걸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함에서 나왔을 겁니다. 조던만큼의 재능은 없었으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십수 년 전의 나, 이제 어지간한 것들은 다 알게 되었으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가르쳐 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몇 년 전의 나, 그리고 앞서 살아간 이의 이야기를 읽고 생각에 잠긴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세상과 알아감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거듭 되씹어 고민합니다.
"의미는 없어." 하지만 이 말에는 끝내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광막한 혼돈의 세계 속 티끌처럼 한없이 미소하고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 때문에 우리 삶의 의미가 바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작고 나약한 우리의 존재는 뒤집어 말하건대 까마득히 넓은 세계가 있음을 뜻할 것이고, 이는 어쩌면 도리어 우리의 조그만 삶을 끝없는 환상의 모험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스스로 우주 속 먼지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 우리는 알아도 알아도, 아무리 많은 것을 알아도 결코 이 세계를 지루해할 수 없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