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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Apr 17. 2023

[수필]딸은 축복의 선물

2022년 한국문학세상 빅스타 문예대상 당선작

우리 부부는 결혼 2년 만에 첫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일부러 신혼을 오래 가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노력에도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아이를 가지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도 여러번 받았다. 결혼한 지 딱 24개월이 되었을 때 아이가 생긴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대면 예배가 허락되지 않아 아내는 집에 있고 나 혼자 교회에 가서 온라인 예배 방송 봉사를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임신 소식을 알렸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데 그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 아내를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찾아온 축복에 눈물을 참지 못하였다.


어렵게 가진 아이인데 임신 8주 차에 아내가 하혈을 시작했다. 의사에게 전화하니 일단 응급실에 가보라고 해서 부랴부랴 응급실을 찾아갔다. 


캐나다는 응급실이라고 해도 응급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병원은 더욱 분주했다. 


우리는 응급실에 들어간 지 4시간 만에 의사를 만났고 간단히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가지고 온 간이 초음파 기계의 모니터에 심장 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내는 침착하게 초음파실로 들어가 다시 한번 검사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2시간을 더 기다린 후에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아내는 초음파실에 혼자 들어가야 했기에 밖에서 노심초사 기다리는데 아내가 밖으로 나오더니 나를 보고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아내를 꼭 안아주었는데, 아이는 무사했고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 후 태아는 건강하게 잘 자랐고 산모도 아주 건강했다. 양가 부모님은 첫 손주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예정일을 10일 정도 앞두고 양수가 터져버린 것이다. 진통이 먼저 시작되고 양수가 터져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하던 일을 멈추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양수가 터진 것이 확인되었고, 양수가 터지면 48시간 이내에 출산하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아직 진통을 느끼지 못하는 아내가 12시간 정도 더 진통을 기다리든지 아니면 유도분만을 시작하던지 선택을 하라고 했다.


우리는 자연분만을 원했기에 12시간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양수가 터진 지 10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우리에게 12시간 이후인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진통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지만, 진통은 없었다. 


병원에서는 오후부터 유도분만을 시작하자며 우리를 다시 퇴원시키고 4시간 뒤에 돌아오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양수가 터진 지 30시간이 지나서야 유도분만을 시작했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에 초조함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애써 태연해지려고 노력했다. 분만실에 누워있기 시작한 이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6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아내가 점점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더 많은 이불을 덮어 달라고 요청했다. 조산사가 체온을 확인해보니 열이 38.9도까지 올라갔다.


조산사도 간호사도 뭔가 분주해 보였고 해열제와 항생제를 준비했다. 아내가 몇 번 구토를 한 후 열은 가라앉았지만, 조산사는 양수가 터진 지 너무 오랜 시간이 되었고 온도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감염에 대해 걱정했다. 태아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어서 자궁문이 9cm까지 열려있지만, 제왕절개로 분만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태아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제왕절개도 괜찮다고 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새벽 2시였는데 산부인과에 의사가 한 명밖에 없었고 이미 다른 응급 수술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 당장 제왕절개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태아의 심장 박동을 점검하며 자궁문이 더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9.5cm까지 열린 상태에서 조산사가 억지로 자궁을 더 열어 분만을 시작했다. 아내와 2년간 함께 살면서 절대 볼 수 없었던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마라는 단어가 왜 위대한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아내는 한 시간 넘게 힘을 줬지만, 아이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조산사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이의 목에 탯줄이 감겨 있어 아이가 쉽게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산사는 아내에게 좀 더 힘을 내라고 요청했다. 조금 전 고열과 구토를 겪었던 아내는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조산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된 이상 집게로 아이 머리를 잡아당겨 출산하는 겸자분만(forceps deliver)을 시도할 것을 권유했다.

아내는 이 겸자분만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이 방식이 아이에게 자칫 문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출산 전부터 이 방식만큼은 피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가 배 속에 더 오래 있는 것이 위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겸자분만을 선택했지만 다른 응급 수술 때문에 바로 시작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가 오기 전까지 계속 분만을 시도했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겸자분만을 시작했고 양수가 터지고 42시간이 지나서야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바로 실신해 버렸다. 분주해진 분만실에는 쓰려져 잠들어버린 아내와 그 옆에 멍하니 앉아있는 나, 그리고 그런 내 품에 안겨 있는 내 딸, 이렇게 세 명만이 남아 있었다. 새벽에 몰아쳤던 태풍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고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끝난 줄 알았다.


산모와 아이는 병실로 옮겨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출산의 기쁨을 알리던 중, 출산 시 있었던 산모의 고열로 인해 아이에게 감염이 있을 수 있다며 병원에서 아이를 신생아 집중치료실 (NICU)로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48시간 동안 항생제를 맞으며 여러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에 따라서 퇴원 또는 추가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출산 후 아이가 부모와 같은 병실에 있다가 대게 다음날 퇴원을 하게 되는데, 화요일부터 시작된 우리의 병원 생활은 토요일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아이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은 부모 중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서, 주로 아내가 수유하기 위해 들어가고 나는 종종 아내가 쉬고 싶을 때 내려가 아이를 만나면서 48일 같은 48시간을 보내야 했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들어가니 많은 아이가 인큐베이터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다행히 일반 침상에 누워있었다. 작은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유도분만을 시작하지 않고 12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던 우리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집중치료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태가 양호해 불평할 수도 없었다. 아이 맞은편 인큐베이터의 산모는 링거와 오줌보를 달고 휠체어를 탄 채로 본인보다 아이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그 산모는 다음날 또 다른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어렵게 우리 가족이 된 딸의 이름은 예배를 뜻하는 예와 아름다움을 뜻하는 빈을 써서 ‘예빈’이라고 지었다. 영어 이름은 Lena(리나)인데, 히브리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이 땅에 빛이 되어 세상을 비추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아내와 함께 지었다.


예빈이는 이 땅에 나오는 과정이 참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부모의 미숙함에서 온 행동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양수가 터지고 40시간이 넘게 그 안에서 힘겹게 버텨준 예빈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목에 탯줄이 감겨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 힘차게 발을 뻗어 준 용기에 너무나 고마웠다. 예빈이의 손등에 꽂혀있는 주삿바늘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앞으로 더 험하고 힘든 세상을 더 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겪는 훈련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딸을 응원하고 있다. 예빈이가 겪고 있는 상황들이 모두 처음인 것처럼, 내게도 지난 10개월의 여정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예빈이와 함께 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을 것 같다. 아빠 되기가 쉽지 않았듯이, 좋은 아빠 되기도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예빈이가 엄마 뱃속에서 다리를 힘차게 뻗어 축복의 선물처럼 세상에 나왔으니 미래의 빛을 향해 함께 뛰어가는 좋은 길벗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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