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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May 12. 2023

[퇴근길] 개 같은 인생

그리 나쁘진 않아

퇴근 후 집에 가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지하철역까지 도보로 걸어야 한다. 먼 거리 같지만 바다를 끼고 있는 올림픽빌리지라는 동네를 지나가다 보니 산책을 하는 기분이다.


올림픽 빌리지는 밴쿠버 동계 올림픽 당시 선수촌 아파트를 쓰던 건물들이 모여 있어서 지어진 이름인데, 그 후에도 계속 개발이 잘 되면서 동네가 예쁘게 잘 지어졌다.


주로 젊고 고소득층인 영프로페셔녈들이 산다고 알려진  동네는 고급 콘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집값이 다운타운 못지않게 비싼 곳이다.


동네 한쪽에는 공원이 있는데 대부분 반려견들과 함께 산책 나온 젊은 사람들이다. 퇴근 시간이 되면 정말이지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은 것 같은 완전 개판이 된다. 심지어 한쪽에는 펜스를 치고 목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개전용 공원도 있다.


나는 강아지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다. 나 때문에 심지어 우리 장인어른은 본인이 기르던 강아지를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내셨다.


알레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도 못 키운다. 하지만 좀 더 솔직해지자면 키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키운다.


얼마 전 백화점에서 작은 옷이 예뻐서 딸 입히면 좋겠다고 들어 올렸더니 강아지 옷이었다. 멋쩍게 가격을 보니 우리 딸이 입는 옷들보다도 가격이 비싸다.


반려견을 키우는데 많은 돈이 든다고 한다. 사촌동생이 강아지 암수술을 시키는데 천만 원 이상 돈이 들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보험도 안된다는데..


공원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보다가 그냥 그들의 삶이 부러워졌다. 때 되면 밥이 나오고 때 되면 인간들이 놀아주고.. 물론 주인을 잘 만나야겠지만, 웬만큼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기를 수 없으니, 확률적으로 웬만하면 금수저들이다.


그들이 인간에게 주는 기쁨과 유익도 있어 보인다. 연봉이 적다고 투덜대는 우리 회사 A 씨는 딩크족이라며 아이를 낳지 않고 그 돈으로 이 올림픽 빌리지에 살면서 강아지를 키운다. 자식 보다도 더 소중한 것을 보면 나는 키워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하철역 앞에 홈리스 한 명이 길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데 반려견 두 마리가 주변을 서성인다. 홈리스들이 강아지를 키우면 정부에서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 우리 예빈이가 매월 육아 수당을 받아주듯이 심지어 반려견들이 돈도 벌어다 준다.


그렇게 보면 개 같은 인생도 나빠 보이지 않아 보인다. 인간과 함께 공존하면서 인간에게 유익을 주고, 자신들도 인간들로부터 편의를 누리는 삶.


아.. 나도 개같이 살아보고 싶다.. 라며 집을 가는데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도 직장 상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열심히 비위를 맞춰 주었고, 집에 가면 하루종일 육아로 지친 아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꼬리를 흔들어야 저녁 식사가 나오니


어떤 면에서는 지금 내 인생도 개 같은 인생일지도..



*반려견을 키우는 것에 전혀 부정적인 마음은 없다. 우리 가족 모두 강아지들을 좋아하고 한편으로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동경하기도 한다. 단, 돈은 없는데 알레르기가 있어 내 생에는 함께 동거할 수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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