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는 게..
엄마가 말했었다. 원래 다 그런 거였다고..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는 이제 봄이 시작되었다. 5월에도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어두워지는 이 도시. 사람들이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길거리로 나온다.
내 퇴근길은 올림픽빌리지라는 동네를 지나게 된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선수촌이었던 이 지역은 다운타운과 바다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퇴근 시간이지만 아직 해는 쨍쨍하다. 바다 위에서는 카누를 타거나 보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바닷가 옆 공원에는 러닝을 하거나 반려견들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광장 한쪽 바닥에 누군가가 분필 한 박스를 두고 갔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해서 아스팔트 바닥 위에 글씨를 써두었다. 연두색 분필로 쓰인 "행복하자"라는 한국어 단어가 눈에 띈다. 이 글씨는 쓴 한국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새벽에 출근하면서 쌀쌀한 날씨 때문에 거적때기 같은 야상을 입고 출근했던 내 복장은, 행복을 외치는 그 광장에 있는 사람들과는 참 어울리지 않다. 고국을 떠나 유학생으로 그리고 외노자로 방황한 지 벌써 21년이 된 지금 내 삶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는 참 숨 막히는 하루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미친 듯이 오른 물가에 점심 한 끼 사 먹는 게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음식도 집도 세금도 다 오르는 세상 속에서 내 몸값만 제자리인 거 같다. 올해도 물가 상승률에 턱없이 못 미치는 연봉 인상률 덕분에 많은 동료들이 울상이다. 하지만 부동산은 또 훌쩍 올라버렸다.
얼마 전 좋은 타운하우스가 분양을 시작한다고 해서 분양센터를 찾아갔지만 2주 만에 다 팔려 남은 매물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돈 있는 사람들은 결국 또 그것으로 돈을 버는 세상이다.
사는 게 참 힘들다. 불공평하다.라고 한탄해 보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기준과 가치가 올랐을 뿐, 내 가치는 오르지 않아 생긴 불균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해외여행과 명품 가방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을까? 고급 승용차를 몰기 전에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면 부끄럽지만 나는 너무 게을렀다. 내가 열심히 걷고 있을 때, 옆에서 땀 흘리며 뛰어간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있겠지.. 물론 그 위에 시작부터 금수저를 물고 날아가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나는 얼마나 더 땀과 눈물을 흘리며 노력해 왔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자책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게만 불공평한 것 같은 세상이 미워진다.
포기가 더 많아지기 시작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도전 앞에 계속 주저하게 돼버린다.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말했었다. 사는 게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수많은 도전 앞에 방황하던 나를 응원하던 아버지는 이제 하나둘씩 포기하는 내 용기를 격려하신다.
퇴근길 바닥에 쓰여있던 "행복하자"라는 한마디를 곱씹어보며 지하철을 탄다.
오늘 하루가 힘겹게 끝났고, 내일 나는 또 힘을 내야 한다.
아직 갚아야 할 은행빚이 많기에..
사는 게..
다 그런 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