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서 91년, 약 1년간 배낭을 메고 세계를 돌다
여행은 낯선 시공간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 자기를 확장하고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최소한 내게는 여행이 그런 의미가 되었다.
1990년 10월 7일, 나는 김포공항을 떠나 남태평양 피지와 뉴질랜드, 남미의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유럽의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 영국을 거쳐 91년 8월에 귀국하는 여행을 했다.
여정 중에 수많은 에피소드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하나를 꼽자면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에서 겪은 연결된 사건이다.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 나는 전화번호부를 열고 iglesia coreana, 즉 한인교회를 찾았다. 거기에서 소개해준 현성권 선생님댁에서 며칠 묵게 되었다. 그랬다. 당시엔 이런 무모한 짓도 가능했다. 그분은 나보다 12살 많은 띠동갑 형님이었고, 거기서 지낸 며칠은 내게 참으로 즐겁고 배울 게 많은 시간이 되었다. 아무리 외적인 성공을 해도, 자기 자식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 수 없다는 멋진 말도 그때 들었다. 그 말은 내가 아빠가 되어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를 늘 일깨워준 경구가 되었다. 그렇게 후한 대접을 받으며 즐겁고 꿈같은 며칠을 보내고 나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길을 떠났다. 당시 현선생님 부부는 여성복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남반구인 아르헨티나는 북반구 유행을 다음 시즌에 따라가기 때문에, 이분들은 이탈리아에 와서 새로운 패션 동향을 파악하고, 그렇게 디자인 아이디어를 갖고 한국에서 옷을 제작해 아르헨티나에서 파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 계속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를 방문하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2개월이 흐르고, 피렌체의 기차역에서 나는 2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현선생님 부부가 보이는 게 아닌가! 너무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서로 연락을 주고 받거나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닌데, 30개 가량이 되는 승강장이 있는 그 큰 역에서 바로 그 순간 그분들을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뛸듯이 기뻤고 반가웠다. 그래서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일정은 다 취소하고 그분들을 따라서 3,4일 여행을 했다.
오늘 아침, 현성권 선생님과 오랜만에 다시 통화가 되었다. 18년 전에 사별하시고 혼자서 씩씩하고 멋지게 살고 계셨다. 그리고 작년에 사별한 내게 아주 도움이 되고 현실적인 조언들도 주셨다. 잠을 잘 자야 하는 것, 혼자 집에 있지 말것, 식사 잘 챙겨 먹을 것, 운동할 것, 그리고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것.
돌아보니 못 뵌지 30년이 넘었지만 이 모든 세월을 뛰어 넘어 여전히 우리 안에 연결된 고리가 있었다. 여행은 내게 이런 소중한 인연과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