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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Jul 03. 2023

무엇이든 할 수 있 당근

생물을 기르는 마음

인생 처음 텃밭을 가꾸게 되었다. 과목이 생명과학이면 흔히 식물을 잘 키우고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만 광합성의 원리를 아는 것과 실제 식물을 키우는 일을 즐기는 것은 별개이다. 다른 취미에 밀려오긴 했으나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 적당한 무기염류만 주어지면 스스로의 가치를 쑥쑥 올리는 존재라는 점에서, 작물 재배는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 텃밭을 얻게 된 것이다. 부족한 열정 탓에 검색 조차 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보았던 학교 근처 모종 가게로 향했다. 여러 모종 중에서 ‘당근’을 선택했다. 모종 10개의 가격은 단돈 2000원. 새삼 ‘농부의 일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가깝구나. 잘하면 정말 가치 창출 끝판왕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당근 씨앗이 아닌 모종을 사서 눈대중으로 간격을 두고 대충 심었다. 주변 텃밭을 보니 작물 사이 간격이 일정했고  흙의 수분 소실을 막을 수 있는 비닐도 씌워져 있었다. 열정 넘치는 텃밭러들 사이에서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그저 당근 모종을 심기만 했다. 그마저도 호미와 비료 일부를 동료 교사분에게 얻어서 가능했다.


모종을 사면서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기억이 나서 그거 하나는 잘 지켰다. 그렇게 열정도 지식도 부족한 채로 당근에게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정리해 주는 일상이 이어졌다. 흙 아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지상의 줄기, 잎들은 무럭무럭 자라는 게 하루게 다르게 보였다. 식물에 관심도 없던 내가 깜박해서 물을 주지 않고 퇴근한 날이나, 너무 비가 많이 오거나 적게 오면 당근 밭이 떠올랐다. 현생에 치여 그 정도 선에서만 당근을 가꾸다가 재배 시기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했다. 지금의 줄기 상태면 당근이 이미 자란 것이니 뽑지 않으면 아래서 썩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음 날 당근을 뽑았다. 줄기만 보면 마트에서 흔히 보는 당근 정도로는 당연히 자랐겠지 싶었는데, 손가락 길이의 당근들이 뽑혔다(헬스인들이 보면 상체충이라 했을 것이다).



후에 공부를 해보니 당근을 심을 때 더 봉분을 쌓아주고 당근 사이 간격을 더 두었어야 했으며 비료도 더 많이 주어야 했다. 볼품없이 상품성 없는 당근이 나왔지만 첫 수확물에 만족했다. 처음 모종에서 실 같던 뿌리가 손가락 정도로는 커줬으니!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보다는 만족감과 식물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이 더 컸다.


첫 조카가 작년 11월에 태어났다. 저렇게 작은 아기가 지금 내가 담당하는 고등학생 정도로 크는 일 또한 당근이 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당근을 심고 비료를 적당히 제공했다면 당근은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 정도로는 컸을 것이다. 적당한 환경을 잘 조성해 주면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공부를 해야할 것은 당근이 아니라 나였다. 마찬가지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부모이지 학생이 아니다. 학생들은 직업이 공부이기에, 이미 충분히 하고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내리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 본인에 대한 공부가 우선인 것이다. 철학을 세웠으면 그것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고 기다리면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않는 농부의 마음이 필요하다. 학교 현장에서 만나는 ‘어떻게 하면 저런 학생을 키울 수 있지? 정말 잘 키우셨다.’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학부모의 공부 강요가 없었고 대신 스스로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아이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떠한 책을 읽고 싶어 하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독서 환경을 조성해 주고, 진로를 정해주기보다 어떻게 자신의 진로를 찾아볼 수 있는지 방법을 함께 찾아보고 고민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들었던 라디오에서 어느 원어민 교사가 ‘위선(hypocracy)’의 뜻을 물었을 때 했던 대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행동하는 것을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것을 해라(Do what I say, not what I do.)’. 아이를 위한 학습 환경의 조성과 부모가 모범으로서 행동을 보여주는 일이, 아이가 성장하며 문제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케 한다. 부모가 철학을 세웠다면 이를 아이에게 강요하지만 말고 본인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아이에게 제안을 하고, 여러 선택지가 포함된 환경을 제공해 주었을 때 아이들은 본인의 잠재력을 단순한 숫자 놀음에 꺾지 않고 뭐든 꿈꾸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뭐든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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