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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Sep 05. 2021

넷플릭스 D.P 1화- 후임의 자살과의 오버랩

https://www.netflix.com/kr/title/81280917


 최근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탄 넷플릭스 드라마 D.P 1편을 지금 막 보았다. 


사실 한국 남자들, 무엇보다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군소재 드라마나 영화는 충분한 관심거리다. 


2년간(예전에 3년이었든 지금 1년 6개월이었든) 자의반 타의반 국가를 위해 젊은 시절을 


나름 희생한 대가랄까? 


다녀온 그 억울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군대 스토리는 평생을 간다. 


평생 질리지 않는 자기 인생 스토리, 그게 바로 군대 이야기다. 


D.P라는 군보직은 나에게는 낯설었다. 헌병이야 익히 알고 있었으나


탈영병 체포하는 군경찰 보직이라니. 정말 내가 겪어보지 않은 군대이야기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남자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보직때문이 아니라 탈영병의 심리에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는 누구나 이등병을 겪고, 누구나 상,병장 시절을 겪는다. 


즉 어지간하면 병계급이 경험하는 계급의 서사를 모두가, 보편적으로 경험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어떻게든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군생활에 빠질 수 없는 '내무부조리'. 

그러고보니 나 때도 야전삽 위에 깍지 낀 주먹으로 엎드려뻗쳐를 했던 기억이 많다. 아님 관물대에 다리 올린 채 원산폭격(대가리박기) 


분명 군규정 어디에도 없는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군대내 유령이랄까.


심지어 부대마다 다르고, 기수마다 다른 내무부조리는 정말 다채롭다고 까지 할 수 있다. 


김보통 작가가 81년생이라는 것을 듣고 나니 나와 같은 시대를 태어난 만큼 군 생활도 비슷했을거라 짐작된다.


물론 02년 군번이었던 나와 21년 군번까지 나온 지금의 군문화가 같을리 없다. 


정말 많이 변했을거다. 핸드폰도 사용하고, 평일외출도 가능한 오늘날 군대문화는 정말 '라떼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특혜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세대 군인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공감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는 것이 


바로 '내무부조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거라 믿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때보다 평균적 고통이 덜할지는 몰라도 절대 없어지지 않았을거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내가 군대 내 내무부조리를 경험하며 깨달은 것은 


이 유령같은 것이 군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있는 '폐쇄적 조직' 안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적 권력이 인간의 손에 쥐어지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온 '부조리'를 


굳이 마다할 선임병들은 거의 없다. 


자신이 그토록 당했던 그 어이없는 '부조리'를, 이제 자신이 후임에게 자행하는 시기가 올때

그걸 거부하는 것도 용기라면 용기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그 권력을 포기하는 인간을 드물고, 

그래서 그 유령은 괴물처럼 계속 생존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확신하건데 

지금 2020년이 넘어가는 군번안에서도 희한한 내무부조리는 여전히 각 부대 문화와 전통?에 따라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지금도 자살을 택하는 군인들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D.P 1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이 '라이터'씬이다. 

드라마적 연출이었겠지만 

주인공이 길거리에서 어쩌다 만난 사람에게 빌려준 라이터가 바로 탈영병 자살의 원인이 된다. 

탈영병인지 몰랐겠지만, 여하튼 그 탈영병은 주인공이 준 라이터로 번개탄을 켜 자살을 하게 된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폭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1편이 마무리가 되는데,


문득 내 군 경험이 떠오른다. 

참고로 나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드라마 작가와 같은 나이로, 81년생, 군대는 02년도 1월 겨울에 들어갔다. 

보직은 일빵빵이라고 아주 평범한 일반  군인들이라면 모두 받게되는 소총수보직이다.

다만,

부대배치가 나름 악명높은 강원도였고, 강원도에서 12사단 을지부대로 배치를 받게 되어 본의아니게 휴전선 근무(GOP)도 6개월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이런 각도의 철책이었다. 매일 이 높이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무릎이 시큰거리게 된다. 

여기서 휴전선 근무경험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근무했던 그 소대건물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군생활을 보내던 막사였다. 

그리고 우리 소대가 맡았던 그 섹터가 워낙 사고가 많았던지라 (총기사고였다. 총으로 선임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케이스. 보통 전방 자살은 총기로 이뤄진다. 후방은 실탄이 없기에 주로 전투화줄로 목을 매어 죽는반면 최전방은 매일마다 탄약과 수류탄이 주어지기에 마음만 먹으면 대형사고가 터진다) 아무 사망자 없이 6개월만 버티고 내려오면 6박7일 휴가증을 전 소대원에게 주겠다고 연대장님이 특별히 약속도 했던 그런 곳이었다.  실제로 우리 소대가 근무할때는 다행히도 아무도 죽지 않았기에 정말로 7일짜리 휴가증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저런 스토리가 있다. 나중에 상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으려나?? 여튼 철책 근무 투입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성추행과 희롱에 트라우마가 쌓여있던 내 선임이 2,3개월 윗 군번인 자기 선임을 죽이겠다고 소총 안전클립을 제거하고 이성을 잃고 달려가던 기억, 그리고 그걸 겨우 뜯어말리던 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여하간, 진짜 사건은 오히려 철책 근무 6개월을 마치고 

휴전선 후방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벌어졌다. 

당시

12사단에 배속된 군번들 중에 GOP근무로 올라가는 부대와, 그 아래서 훈련만 주구장창 뛰면서 지원을 대비하는 부대로 그 특성이 나눠졌었는데, GOP(휴전선 철책)로 올라가는 부대에 배치되는 군인들은 

가급적 대학을 다니는 자나, 가정상황이 온전한 경우를 골라보내고는 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가 나는 곳이기에, 완전히 외부와 고립된 GOP에 가정환경이나 사회환경도 온전한 군인들을 가급적 올려보내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즉, GOP부대에 그런 온전한?환경의 군인들을 의도적으로 몰게 되면, 정작 후방에서 지원하는 부대에는 좋지 못한 환경의 군인들이 몰리게 되는 역설말이다. 

그 당시 나는 소총수 보직이면서도, 군 교회 활동과 봉사를 틈틈히 했었기 때문에 

중대 내에서도 중대장이나 보급관에게 어느정도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보급관이 내게 추가적인 

임무?를 맡겼는데, 바로 전입 신병 상담이었다. 12사단 자체가 자살률이 높았던 부대였기에 중대장도 보급관도 새로 들어온 신병들의 관리가 상당히 중요했는데 계급사회에서 자신의 힘든 점을 터놓기가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에 가깝기에 자살직전까지 상황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보급관은 나를 택해서 따로 임무를 부여한 셈이다. 

 그나마 내가 후임들에게 잘 다가가는 편이니 어떤 이야기라도 더 들을 수 있고, 후속관리도 가능할거라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얼마안되지만 몇천원씩이라도 내게 찔러주시며 아이들 자판기 음료라도 뽑아주며 상담하라고 하셨었다. 아참 그리고 중대장실 옆의 보급관 실도 상담실로 얼마든지 활용하라고 하셨다. 


그후로 나는 중대내 신병들 모두를 상담할 수 있었다. 물론 정식 보직이 아니다보니 내 쉬는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신병이 들어올때마다 이야기를 들어본다. 가정사와 군입대 배경 및 신병교육대까지의 경험. 그리고 간단한 심리검사도 했었는데 그때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문적인 심리검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대강 보더라도 신병들의 정서상태가 상당히 안좋았다. 사회에서 심리검사에서 이런 그림들을 그리면 분명 심각하게 볼 정도의 섬뜩한 그림들... 그때 알게된 것이 가정환경이 불우한 신병들도 유독 많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신병 대부분이 내 기준에서는 관심병사였다. 문제는 부대가 너무나 바빴다. 전방에 있을때는 근무서는 것이 주 일과였지만 후방에 내려오니 한달에 한번 꼴로 훈련을 뛴다. 산으로 들어가 몇날 며칠을 행군하고 진지고치고, 수색하고, 나뭇잎덮고 자고..... 뭐 좋았던 추억이 더 많기는 했지만 여하튼 너무 바쁜 부대일과속에서 신병들 관리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나마 우리 소대로 배속된 아이들은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타소대만 해도 어떻게 내무 생활이 돌아가는지 빠르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즉, 내무부조리가 한 중대 내에서도 다르다. 어떤 소대는 우리 소대에서 진작 없어졌던 부조리가 아직도 존재했고, 몇몇 고추가루(괴롭히는 선임)가 확고한 소대는 후임들이 정말 고통스러워 하는 경우들이 비일비재 했다. 


 그래도 그 중에 유독 적응 못해보이는 본부소대(행정병) 신병이 한명 있었다. 너무 약골이었고, 힘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렇게 일병을 단지 얼마안되어 몸이 안좋아져서 잠시 병원에 후송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한동안 병원에 후송되어 안보이다가 보이니 반갑기도 해서 우리 소대에 행정병으로 업무를 보러온 그 아이에게 

 '00 야, 몸은 괜찮아?  담주 정도에 시간내서 차한잔 하자' 라고 짧게 인사를 건넸고, 그 아이도 '네 알겠습니다' 라며 일을 마치고 나갔었다. 

 그 당시 부대는 매우 정신이 없었다. 유격훈련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유격도 빡세다고 하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스트레스였는데 행정병이었던 그 아이도 당연히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후송다녀와서 유격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스트레스가 컸기에 당장 그 아이와 차 마실 시간이 없었고 이래저래 유격끝나고 해야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격훈련 떠나기 이틀전 주말 토요일이었다. 

비가 유독 많이오기도 해서 전 부대원 외출,외박 통제령도 떨어져서 

다들 풀이 죽은채 티비만 보던 그런 주말이었다. 


나른한 몸으로 이틀 후 있을 유격 스트레스도 묘하게 받은 채로 앉아있었는데

갑자가 부소대장이 사색이 되어 전실 문을 발로 꽝!!!! 차고 들어오더니 

'다 튀어나와!!!!' 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들 기계적으로 뭔 사단이 났나 싶어 튀어나갔는데,

막사 뒷편의 창고로 비를 맞은채 뛰어가보니 

행정병 그 아이가 창고 안에서 목을 맨 상태였다. 

......

누가 먼저였는지 

그를 끌어내리고

병장 한 명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는데 

빈 통에 공기가 들어갔다 빠지는 소리만 들렸다. '그르륵!!!' 


그 후로 부대는 발칵 뒤집혔다. 

헌병이 출동하고, 

중대장은 보직해임 후 결국 군복을 벗었고,

중대원 전체는 잠도 자지 못하고 진술서? 를 계속 써야 했다.

그후로도 정신교육이랍시고 한두달을 상급부대에서 파견온 장교들에 의해 고통당해야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그래도 상담했던 아이였고, 

분명 상태가 좋지 않음을 인지하고는 있었는데

이러저런 핑계로 

그 아이의 고통을 들어줄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점......


자살한 일병은 행정병 선임들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자살을 한 것으로 드러났고

가해자들은 2주간 영창으로 갔다. (그게 끝이다. 어떤 사법적 처리는 없었다)

참고로 죽은 일병은 홀어머니와 살던 아이였다. 아빠없이 엄마와 살았던 만큼 

엄마의 정신은 무너졌고,

그후로 몇개월간 위병소 앞에서 죽은 자기 아들 살려내라는 엄마의 피맺힌 절규를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DP1화에서 주인공이 라이터를 건네면서도 알아채지 못했고, 그 자책으로 무너지는 것처럼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사실 내 정식 보직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군생활의 사명같은 것이었다. 

내가 있는 동안 누구도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것. 

그래서 잠을 줄이면서까지 부대 내 교회에서 군종병들과 새벽기도까지 말년까지 진행했었다. 

나름 신에게 기도하며 부대 내 안전을 빌었고, 

병사들이 취짐에 들때 나는 대대군종병과 짝을 이루어 초코파이와 커피를 들고가서 외곽 근무자들을 위로하며 부대내 부조리나 문제점들을 들어주고는 했었다. 

실제로 상병장이 되었을때 내 취짐시간은 4시간 정도 뿐이었다. 

22시부터 23시30분까지 근무자 위문, 그 사이 내 근무가 생기면 그 사이에 외곽근무, 그리고 4시30분 기상하여 5시부터 6시까지 새벽기도, 이 일상을 버티면서 했던 이유가 무너진 셈이다. 


난 제대한지가 벌써 20년이 눈앞이다. 04년에 제대했으니......

하지만 여전히 군 자살자 수가 크게 줄지 않았음도 알고 있다. 

군에서 자살하는 대부분의 병사들은 부대 내 괴롭힘 때문이다. 

탈영병에 대해서는 내 보직과 아예 상관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죽음을 생각하는 그 최전선에서 군생활을 했기에 

자살이라는 그 예민한 경계선상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한없이 둔해졌지만

그래도 그 꽃다운 젊은 나이에 생명을 끊게 되는 젊은이들이 한없이 안타깝다. 

어떻게든 버티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그런데 군 조직이라는 곳이 정말 바꾸기 어렵다. 나를 괴롭히는 구조를 벗어나는 용기가 정말 어렵다.

군대가 아무리 편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가해자들이 있고, 인간내면에서 잠식해들어가는 '악'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그 악과 싸워야 한다. 

자기 내면의 '악'과 자기를 둘러싼 구조의 '악'과 말이다. 


앞으로 DP 남은 편들을 보면서 더 떠오르는 일화들이 있다면 

좀더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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