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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Aug 30. 2021

땜질이냐 교체냐 그것이 문제로다.

화장실 세면대 교체기


 꽤 오래된 빌라에서 

반전세로 살게 된 지가 어느새 5년이 넘어간다. 결혼 후 이사만 10번 가까이했기에 (주민등록등본에 주소지 이전 사항까지 넣으면 두장이 나온다ㅜㅜ) 그나마 가장 오래 살아본 빌라다.

그러나 저러나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빌라도 하나둘 고장이 난다. 

그나마 보일러 같은 중요한 부품이 고장 날 때는 집주인에게 요청을 하지만 (지난겨울 보일러공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집주인은 예상했었는지 좋은 보일러로 교체하라고 오더를 내렸다. 주인님 감솨합니다. ㅠㅠ )

욕실이나 싱크대 수전이 고장 나면 그건 세입자인 내가 알아서 고쳐야 한다.

애초에 빌라 건물이 낡은 것은 둘째치고 한국형 어르신 색상인 체리 몰딩의 극혐 인테리어였기에 

3년 전에 셀프로 대대적인 색칠까지 해놓았다. 흰색과 인디고 블루 색상의 조합으로 한쪽 벽면이나 몰딩을 나름 깔끔하게 칠했고, 구린 전등도 led나 쾌 멋진 등으로 셀프 교체를 하고 나니 집이 한결 깔끔해졌다. 중간에 집주인도 한번 방문해보더니 인테리어 공부했냐고 놀래 준 덕분에 허락 없이 칠하고 바꾼 집의 변신이 무죄로 입증되었다. (사실 인테리어 배웠다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엉성한 칠이고 변화였으나 기존 집이 그만큼 구렸기에 집주인도 마음에 든 것 같았다. 하긴 이전에 살던 세입자 가족의 아이들이 낙서한 벽 조차 하얗게 칠해서 덮어버렸으니 도배 값을 집주인은 상당 시간 절약하게 된 셈이다.) 



여하간!! 

재작년에 싱크대 수전 새 걸로 교체한 이후

2021년 들어서 화장실 샤워기 수전이 망가졌다. 

물을 잠가도 잠기지 않는.....

분명 고무패킹 어딘가가 문제인 것 같은데 

도저히 그 부분만 분리할 방법을 몰라 

전체를 교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유튜브를 통해 

따라 하니 겨우 성공할 수 있었는데,

자칫 뜯어내기만 하고 실패하여 

업자 고수분에게 다시 맡기는 낭패는 면할 수 있었다. 

샤워기 정도 교체야 다이소에서 부품 사서 갈아 끼우면 그만이지만 

수전 자체를 갈아 끼우는 것은 유튜브에도 웬만하면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는 내용이 많아 

한껏 쫄았었다. 


그런데 엊그제는 그 화장실의 세면대 수전이 똑같은 증세를 보였다.

'아이씨!!' 


가뜩이나 요즘 되는 일도 없고, 

괜히 집안일은 많고(그렇다. 난 갓난아기도 봐야 하는 아빠다.)

읽을 책은 많고,

돈도 벌어야 하는데 


짜증 나게 돈과 체력을 요하는 세면대 수전이 또 고장이다. ㅜㅜ 


역시 집주인에게는 연락조차 할 엄두는 안 난다. 그러다 내년 계약 연장 못하면 난처해진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있지 않냐고??? 그 계약갱신 청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작년에 전세계약 재계약했다. 


즉 이번 계약 이후 집주인 맘대로 계약을 끝낼지 말지가 결정되는 셈이다. 


여하간 


쿠팡에서 세면대용 수전을 검색해보고 


1홀짜리? 2,3홀짜리 구분하라고 해서 찾아보니 뭔지 이해했고, 


얼른 구입해두었다. 


하루 만에 도착한 수전을 받아 들고 


다시 유튜브 한 번 보고 작업에 들어간다. 


아주 다행히도 


샤워기 교체보다는 훨씬 쉽다. 


물론 난 전체 교체를 원하지는 않았다. 수전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으니 


문제를 일으킨 고무패킹 따위만 갈고 싶었다. 그거라면 싸면 몇백 원, 비싸야 몇천 원 재료값이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런 부품 교체를 할 수 없는 현실에 짜증을 내며 

한편으로 수전 전체를 교체하는 재료값을 아까워하며 

투덜대며 작업에 들어간다. 


사실 공임비 아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는데 

난 새 수도꼭지 (2만 원 돈) 비용을 아까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수전을 분해하면서 

깜짝깜짝 놀랐는데, 

한 가지는 수도꼭지에 연결해서 이 사이사이를 물줄기로 스케일링하는 기구에 연결부위가 이미 뻘겋게 녹슬어 있었다는 점. ㅜㅜ 

아 우리는 이것도 모른 채 녹슨 물로 이 사이사이를 시원하다고 씻어내고 있었구나.

이이제이인가??? 적을 통해 적을 치는??? ㅜㅜ 증거로 사진을 찍고 버릴 생각으로 뜯어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다. 

수도꼭지에 손가락을 넣어보니 고무패킹이 녹아서 손가락이 시꺼멓다. 

아 우리는 이것도 모른 채 매일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구면서 아.... 시원하다고 소리를 질렀나 보다.

무엇보다 뜯어낸 수도 안쪽도 상태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여하튼 새로운 수전으로 끼어놓고 

세면대 밑에서 물이 올라오는 호스만 연결하면 작업은 끝인데,

그 호스도 무지하게 낡았더랬다. 

이미 수전 안이 저 모양인데 이 호스 안은 멀쩡할까??

그래도 귀찮았다.

그냥 쓰다가 생각날 때 다시 교체하지 뭐(라고 다짐하지만 분명 난 알고 있다. 고장 나기 전까지는 이 호스 안 바꿀 거라는 것을) 

그런데 뚝!!!!

호스를 도구를 이용해 잠그는데 호스 연결 스댕(스테인리스) 부위가 그냥 부러졌다... 원래 이게 부러질 정도로 약하던가??? 스댕이 아니었나? 여하튼 넘 오래된 이 놈은 그러게 부스러졌고!! 

수도 교체 완료는 물 건너갔다.


다시 한번.

에이씨!!!

뭐든 한 번에 일을 끝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질질 끄는 것은 딱 질색이다. 하루 쉬고 부품 오면 그때 다시 한다??? 있을 수 없다.

신은 내게 그런 인내력을 주지 않고, 짜증만 주셨나 보다.


여하튼 투덜대며 땀에 절은 옷을 대충 털어내고, 

손 부위에 묻은 수전 안에서 나온 더러운 무언가 들을 씻어내고 

동네 철물점으로 자전거로 달렸다. 


가면서 대충 확인해봤다. 이 호스는 인터넷으로 얼마인가?

싸면 900원 정도, 비싸야 1500원이다. 

그럼 배송비도 생각해보면 온수, 냉수용 합쳐 두 개에 배송비, 대략 6000원.

동네 철물점이 워낙 바가지가 심하기에 이 정도로 예상을 했다. 

두 개 합쳐 최대 6000원이면 사자. 더 부르면 평 소안 하던 항의 및 에누리를 해보자.


아니나 다를까 한 개당 무려 3천 원을 부르신다. 최소 2배에서 3배 가격을 시전 하는 동네 철물점의 위엄....

그래서 늘 손님이 없다. 

철물점 할아버지가 내게 준 호스를 내무부장관님이 보시더니 

이건 짧은 거라고, 좀 더 긴 것 찾아오라고 할아버지께 뭐라 하신다.


내가 보기에 집에 있는 호스 길이와 같아 보여서 

'이것도 괜찮아요'라고 하며 그냥 가져왔다. 

할머니는 그거 짧을 것 같으니, 짧으면 다시 바꾸러 오라고 하신다. 

'흥. 개당 3천 원으로 바가지 쓴 것도 억울한다. 여기서 두배 길이로 가져가라 하시는 걸 보니 개당 4,5천 원으로 부를 생각이신가 보지? 내가 속을까?'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그냥 집으로 냅다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4층인 집으로 얼른 뛰어올라와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아이씨!!!! (하루에 몇 번을 이 짜증을 내는가?)


길이가 짧다.


할머니가 맞았다. (전문가는 전문가다)


다시 투덜대며

철물점으로 돌아왔고,

멋쩍은 상태로 긴것로 바꿔달라고 했다.


'거봐, 아저씨가 가져간 것은 다른 용도야' (그렇다 나중에 알아보니 내가 가져간 호스는 변기용..... 그래서 짧다) 


그리고 한 가지 놀랐던 점은 20센티 짜리나 40센티 짜리나 가격이 같다는 점!

추가 비용을 받으실 줄 알았는데 가격이 같다고 하신다. ㅜㅜ 

괜히 쌍 바가지 씌울 거라 혼자 생쇼 한 셈이다....


내심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드디어 제대로 연결을 했다. 


아. 이렇게 세면대 수전 교체 기술도 하나 탑재하게 된 순간이다. 

낡은 집에서 살면서 원치 않게 하나씩 능력치가 생긴다. 


물론 다 엉성하다.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불필요한 공임비는 분명히 줄이고 있다. 


생각해보니 


저번에 식기세척기 이동비용을 7만 원이나 부르던 업체의 바가지에 혀를 내두르며

유튜브의 힘을 빌어 단돈 0원으로 나 혼자서 이전 설치 성공하지 않았던가. 


아차차.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게 아니다. 


바로 교체에 대한 의미 때문이다. 


내가 발견한 문제점은 작은 고무패킹(그것도 짐작이다. 분해를 못했으니 확인도 못했다) 일 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난 최선을 다해 그 부분만 교체하고 싶었다.

그게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절약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반강제로 수전 전체를 교체하게 되면서 

내가 평소에 보지 않았던 공간을 보게 되었고(모가지를 완전히 꺾어야 수전을 분리할 수 있다)

바로 더럽고 냄새나는 그곳을 뜯어내고 나니

깨끗하리라 믿었던 곳에서조차 이미 녹은 슬었고, 고무는 까맣게 녹아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이고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다. 


이 오래된 세면대의 부품들은 교체시기를 한참 넘겨서 내게 비명소리를 내어준 거다.

더 이상 버티면 너희도 위험하다고. 이제 적당히 새 걸로 교체하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몸도 그렇지 않은가. 끊임없이 이미 이상 신호를 보내는데 

우리는 자꾸 작은 걸로 치부하고 땜질에 급급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안에 있기에 

드러내 봐야만 알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과감하게 날을 잡고 

몸 전체를 구석구석 검사해야 진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오래된 세면대도

오래된 인간의 몸도,

그렇다면

오래된 사회조직이나 인간의 삶 또한 그러지 않을까????


결국 땜질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 특정 시점이 오면 우리는 그 부분 전체를 바꿔야 한다.

완전히 부수고, 떼어내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갈아 끼워야 하는 날이 온다. 

그 타이밍이 중요할 것이다. 

이미 우리 집은 늦은 시점에 수전을 교체한 셈이다.

이미 더러운 물로 입과 얼굴을 헹구고 살았으니까. 


결국 최종 신호를 받기 전에 

자가진단을 하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의 행동이 아닐까. 

그게 바로 '성찰'이 아닐까. 


난,

지금 나의 삶에서 무엇을 도려낼 것인가.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새것으로 교체하는 범주는 어디까지를 의미할까.


오늘 나는 세면대 수전 하나를 통째로 바꿨을 뿐이다.

어느 때가 오면 화장실 전체를 바꿔야 할 때도 올 것이다. 


나의 삶에서도 땜질이 아닌 교체를, 

그리고 그 교체의 범주까지도 어디를 어떻게 손봐야 할지 

성찰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면 

그냥 녹은 더 슬고 

더러운 균이 보이지 않게 내 몸 전체를 갉아먹을 뿐이다. 


결국 오랫동안 고여있는 상황이라면 

뭐라도 꿈틀대야 할 시기인 것이다.


나만의 문제일까?

우리 가족은?

우리 지역사회는?

우리 교회는?

우리나라는??

무엇을 교체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 결단할 것인가. 그게 문제다.  

....(그러고보니 더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문제가 곪아 터지기 전에 미리 성찰?해서 문제를 예방해갈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위기나 변화가 있을때 불만과 짜증과 불안으로 이 현실을 마주하기 보다 무언가 바꿀 때가 되었기 때문에 찾아온 시그널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거다. 그러니 재수가 없느니, 하필 이때냐고 엉뚱한 곳에 하소연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고 당장 할일이 무엇인지 현실을 직시하자. 그게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변화다) 

결단의 내용과 뭔가 어울리는 듯해서 둘째 딸의 보드타는 뒤모습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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