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나페홀로 Dec 25. 2021

[오늘 자본을 읽다]4장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두 개의 시간과 인간의 본질 


인간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일까?


도구는 인간의 노동시간을 줄여준다. 단축된 노동시간으로 인간은 벽화와 같은 취미생활을 영유할 수 있게된다. 단축된 노동시간이 여가시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도구의 발달은 인간의 여가시간 증대를 가져온다.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노동과정의 변증법과 노동시간의 분리

100원의 가치가 140원으로 늘어나는 자본유통의 핵심은 구매된 노동력이 소비되는 과정, 즉 노동과정에 있다. 여기서 맑스는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과정을 먼저 설명하면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적한다.


"노동은......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이다.......인간에게만 특수하게 나타나는 노동형태.....는 노동과정이 끝나고 마지막에 나오는 결과물은 노동과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벌써 노동자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노동하기 전에 이미 생각하는 기능을 전제로 한다. 도자기 장인이 이미 구워서 나온 자기를 깨뜨리는 이유는 굽기 전에 이미 자신이 생각했던 도자기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과 같은 원리다. 인간의 노동을 생각하는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모두 시간을, 생존을 영위하는 목적으로만 소비한다. 즉 인간과 같은 순수한 여가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다음 생존작업을 위한 준비정도로만 생각하는 정도다. 사자가 그늘에서 잠을 자는 것도 다음사냥을 위한 휴식일 뿐이다. 즉 인간은 여가 자체가 목적일 수 있으나 동물들은 그저 그 여가조차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자본주의 노동과정

 

자본주의가 되면 노동과정에 변화가 생긴다. 자본주의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는 경제구조이기에 노동과정에서도 이제 두 사람이 등장한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농부든 도공이든 혼자서 일이 가능했다. 여가시간도 노동시간도 모두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는 한 사람이 노동력을 , 다른 사람이 생산수단을 가지고 등장하는 구조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가 없는자의 노동력을 구매하여 노동을 시키는 방식인 셈이다. 결국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선택권은 노동을 시키는 사람, 자본가가 독점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본가는 이 시간을 어떻게 정하는가?`                                                                                     

 "우리의 자본가는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첫째, 그는 교환가치를 갖는......상품을 생산하려고 한다. 둘째, 그는 ...... 구입한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치 총액보다 큰 가치를 갖는 상품을 생산하고자 한다. "


 자본가가 노동과정에 거는 기대는 애초100원의 가치를 넘어서야만 한다. 예로 140원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 자체가 이윤에 있기에 이는 당연한 원리다. 문제는 노동력의 소비가 없이는 이 목적은 달성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리고자 하게 된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원래 생존을 위한 시간이며, 이는 생계비에 해당한다. 자본가는 이만큼의 가치는 노동자에게 지불해야만 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늘리고자 하는 노동시간은 어디에 있는가? 자본가는 바로 여가시간에 주목한다. 여가시간을 줄여서 노동시간을 늘리면 늘어난 만큼은 그가 가져갈 수 있는 노동시간이 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원래부터 생존에 필요했던 노동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원래 여가시간이었지만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의 것으로 바뀐 노동시간, 즉 타인을 위한 노동시간이다. 후자가 바로 잉여가치를 이루는 노동시간이 된다. 


두 개의 노동시간과 자본가의 항변 


 택시기사의 사례 

2011년 기준, 택시기사의 수입은 하루 20만원인데 여기서 연료비7만원, 사납금으로 11만원 회사에 입금하면, 2만원만 실제 기사가 가져가는 수입이 됨. 

 기사들이 한달 평균 21일 일해서 사납금으로 입금하는 금액이 230만원 정도. 여기서 기사에게 월급으로 80만원이 지급되는데 이 돈이 기사의 생계비가 되는 셈. 이 정도를 노동자에게 지불하지 않으면 자본가는 노동력 상품을 아예 구매할 수 없게 되는 상황.  여튼 사납금 230가운데 150만원은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이고, 이 부분은 자본주의 이전이었다면 여가시간이었을 것. 

 정리해서 택시기사의 하루 노동시간을 두 노동시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매일 사납금과 연료비 공제후 집으로 가져가는 돈 3만원 곱하기 월 근무일수 21일을 하면 대략 60만원 가량이 되고, 여기에 고정월급 80만원을 더하면 한 달 총수입은 140만원 가량이 된다. 한편 사납금 가운데 택시기사에게 지불하지 않은 금액은 150만원 가량이기에 대략적으로 택시기사의 하루 노동시간 12시간 중에 6시간만 자신을 위한 노동이고(140만원) 나머지 6시간은 타인을 위한 노동을 하는 셈(150만원)이다. 


 물론 자본가의 항변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6시간의 사납금 몫을 자본가가 그냥 가져가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다.  첫째 자본가도 생산에 필요한 생산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생산에 기여했다는 주장, 둘째 자신도 노동을 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사납금 150을 자본가가 가져갈 자격이 충분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그런데 자본가들이 수행한 기능은 실제로 택시기사의 노동을 지원하는 것에 그칠뿐이지 자본가들이 한다는 일만으로는 '땡전 한 푼 생기지 않'(제1권:284)는다는 것이다. 기사가 없어서 세워둔 택시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올림픽에서 코치가 아무리 선수를 열심히 관리한다고 해도 실제 메달은 코치의 노동량이 아닌, 선수의 기록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6시간의 노동은 교환가치인 화폐를 벌어들인 노동이며, 자본가의 노력은 단지 그 노동을 지원하는 '봉사'로서 '사용가치의 유용한 작용일 뿐'(제1권:284)

 설령 노동자, 자본가의 노동이 똑같고, 그래서 교환가치를 벌어들이는 노동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도대체 누가, 한 사람은 도심에서 택시를 운전하고 한 사람은 사무실에서 관리 감독을 하도록 만들었느냐는 것도 의문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누구나 관리직을 택하지 않겠는가? 이 불공평한 업무 분담의 근원에 대해서는 7장의 '본원적 축적'에서 다룬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 유통의 온전한 모습 


자본유통과정에서 가치가 늘어나는 비밀은 이제 밝혀졌다. 노동자의 여가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바꿔왔던 것이다. 온전한 자본의 유통이란 아래와 같다.


자본유통정식

 구매된 상품(노동력과 생산수단)과 판매된 상품의 가치가 다르고, 그 가치의 차이는 노동력의 소비가 구매된 가치보다 많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요술은 성공했다. 화폐는 자본으로 전화한 것이다. 문제의 조건은 모두 해결되고, 상품교환의 법칙은 조금도 침해되지 않았다.......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화는 유통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인 동시에 또한 유통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유통영역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상품시장에서 노동력의 구매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그것이 유통영역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까닭은 그 유통이 단지 생산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가치증식과정을 준비하는 것에 지나지않기 때문이다. " (제1권:286~87)


장시간 노동의 자연적 한계


 자본주의의 발전법칙은 노동자의 여가시간을 줄여서 바로 이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향을 향한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봉건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까닭이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방법도 함께 알려주는 셈이다. 혁명의 발발 원인과 동시에 그것의 실패 원인도 알려주는 셈. 

 자본가들은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절대적 잉여가치와 관련한 장시간 노동방법이다. 즉 마냥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법이다. 

 자본주의 초기 노동시간은 주당 80시간이 넘었고, 심지어 하루 18시간 노동을 넘지 못하게 제한하는 청원이 있는 도시들도 있었다. 정작 중세의 농노는 하루 8시간 노동을 넘지 않았고, 연간 노동일수도 150일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노동시간이 두 배이상 대폭 늘어난 셈이다. 

 한국 또한 oecd평균 1위로 노동시간이 긴 국가다. 


장시간 노동은 두가지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하나는 역사 발전 방향과 일치한다는 점. 노동이 부를 만들고, 노동량의 증가는 부의 증가를 가져온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봉건제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이유다. 오늘날 우리는 분명 봉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족함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이미 누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를 예전으로 되돌리는 운동의 역발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장시간 노동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은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다른 하나의 역사적 의미가 바로 그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한데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으로 자연적 한계와 사회적 한계를 가져온다. 우선 자연적 한계는 바로 시간의 한계 때문이다. 인간의 하루가 정해져있듯이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킬 여가시간 또한 자연적 한계가 있다. 인간은 24시간 이상 노동불가능하며 생물학적으로 일정한 휴식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자연적 한계를 넘어서는 장시간 노동은 불가하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계급투쟁


남은 하나의 한계가 바로 사회적 한계다. 장시간 노동은 타인의 여가시간에 의존하는 것이지 자본가 스스로 하는 노동이 아니다. 즉 이는 관계적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토대로 한다. 장시간 노동은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을 불러온다. 


 "자본가는 상품교환의 법칙을 끌어들인다. 그는 ...... 자신이 구매한 상품의 사용가치에서 가능한 한 최대의 효용을 얻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노동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너에게 자본의 가치증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나에게는 노동력의 초과지출이다. 너나 나나 시장에서는 단 하나의 법칙, 즉 상품교환의 법칙밖에 모른다" (제1권:332)


 사회적 관계는 상품교환의 법칙인 셈이다. 교환의 법칙 두 당사자는 엄밀하게는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그런데 장시간 노동에서 두 권리가 충돌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제 노동시간의 규제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른다. 

 장시간노동은 분명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그런데 동시적으로 자본주의의 본질과 충돌하고 따라서 자본주의적 관계 자체에 의해 규제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를 성숙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곧 혁명의 성공방향이라는 마르크스의 교훈이 담겨있다. 


 계급투쟁, 자본주의의 자연적 한계는 인위적인 노력으로써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계급투쟁의 현장은 '힘이 사태를 결정짓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위적인 노력이 노동력의 매매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 근거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극복은 자본주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는 변증법의 원리에 따른다. 


계급투쟁의 역사적 경향


계급투쟁은 자본가와 노동자, 구매자와 판매자의 권리 충돌인 셈이다.자본주의의 역사 자체가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로 이해할 수 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산업혁명시기 장시간 노동으로 자연적 한계에 부딪힌다. 즉 노동자들이 일찍 사망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는 당연히 자본가에게도 손실이다. 여기서 판매자, 즉 노동자들의 권리가 등장하고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파업, 집회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는 장시간 노동의 사회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법령도 생겨난다. (1833년의 공장법)

 공장법이 제정될 때 정작 이 공장법은 자본가 정당이 제정한 것이다. 즉 자본주의의 변혁은 자본가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주인은 엄연히 자본가인 만큼 노동자 계급이 투쟁에서 이기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반복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향하는 장기적인 목표는 결국 자본가 자신에 의해서 조금씩 달성되게 된다. 

 그렇다면 자본가는 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규제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가 작용하기 때문일 것인데,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쟁조건이다. 


[유튜브 영상강의링크]

https://youtu.be/5tULAX7r7XA

 

작가의 이전글 거꾸로 달린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