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의 [공산당 선언]은 프랑스 2월 혁명과 독일 3월 혁명의 여파에 힘입어 공산주의의 바이블이 된다. 1849년 마르크스는 영국박물관 도서실을 오가며 20년 가까이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고 마침내 1867년에 자본론1권이 집필된다.
[자본론]에 붙은 [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는 스미스 이래의 고전 경제학에 대한 근본적 비판임을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고전경제학으로부터 많은 것을 흡수해 경제이론의 기본구조는 공유하고 있다. 노동가치설과 자본축적론이 그렇기에 리카르도의 계승자로도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그 발전과 몰락의 필연성을 보여주며 비판적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한 내재와 비판이라는 대조적인 두 측면이 [자본론]을 다른 경제학 고전과 구분짓는 특징이다. (기존 경제학들은 모두 그 틀 자체는 벗어나지 않았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합리적 메커니즘의 해명이 정작 그 시스템의 불합리성을 증며하게 되는 이론 체계를 제시한다.
[자본론]의 핵심적 사고방식은 첫째 '교환가치'에 대한 견해이고, 둘째 '노동력 상품' 개념이다.
마르크스 이전에는 상품의 사용가치로부터 구별된 교환가치는 자명한 것이었다. 시장에서 노동 생산물이나 노동자체가 '가격'을 갖는 것은 원래 그것 자체가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라고 보았고, 수요.공급의 변화에 따라 변동하는 가격(시장가격)의 배후에는 좀 더 근본적인 (자연가격)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가치'를 낳는 원인으로 노동,희소성, 생산비등의 다양한 요인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상품의 물신성 이론을 제시하여 종래 경제학의 상식을 부정한다. 사람들이 상품 소유자로서 시장에서 마주하며 서로의 상품을 손에 넣기를 바랄 때에 그 상품이 '가치'라는 이상한 속성*물신성을 획득한다고 보았다. -내재성이 아닌 관계성
그런 후에 상품의 물신화가 철저한 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상품이 되는 사태의 모순을 지적한다. 지주,자본,노동자의 자유로운 거래관계를 맺는 것이 자본주의이자 시장경제인데, 이들 사이에 아무리 빈부격차가 커져도 법률적으로는 자유롭고 평등하다. 이것은 젊은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정치적 '소외'의 문제인데, [자본론]의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등가교환 관계로부터 어떻게 실질적인 부등가교환이 생기는지, 자본가에 의한 '착취'가 행해지는 지를 설명하고자 했다.자본가의 '이윤'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소득이다. 프루동이 '소유 그것은 도둑질이다'라는 주장과는 상반되며 마르크스는 이 주장이 틀렸다고 보았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이윤(잉여가치)의 본질을 묻는 것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라면 교환은 전부 등가교환이어야 하는데, 문제는 등가교환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잉여가치가 나올수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윤의 원천은 등가교환 자체에서 잉여가치를 낳은 어떤 특수한 상품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다.자본가가 지불하는 임금의 가치는 노동력 상품의 가치이지, 자본가에 의한 그 소비가 낳은 노동의 가치가 아니다. 즉, 살아있는 노동이 낳는 가치가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웃도는 초과분이 '잉여가치'이고 이것이 자본가가 손에 넣는 '이윤'이다.노동자에게 잉여노동이란 무상 노동이기에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조금이라도 일을 더 시키려 하여(절대적 잉여가치)이윤최대화를 노릴 수밖에 없다. 이 메커니즘을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명명했다.
자유,평등,사유재산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원리에 입각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어떤 원리도 위반하지 않고도 노동자의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를 마르크스가 밝혀낸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자본주의 붕괴의 필연성을 도출한다.
1)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최대한의 노동을 요구하지만, 노동자 또한 더 나은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자본가 아래서 일하려 하는 만큼 자본가는 동업 타사를 뛰어넘고자 신기술을 도입하려고 한다. 즉 노동시간 연장보다 생산성 향상에 의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 2) 그 결과 생산력 상승은 노동자의 생산비를 낮추므로 더 많은 잉여가치를 발생시킨다. (상대적 잉여가치)
-> 3) 그러나 신기술 도입은 노동력 상품이라는 잉여가치의 유일한 원천을 생산과정에서 배제시키면서 정작 초과이윤은 추구하는 모순적 사태를 초래한다.
-> 4) 결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귀결되고, 자본축적의 한계가 도래하여 노동자의 빈곤이 극점에 다다르게 되어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6. 마르크스에게서의 '자유'와 '공공'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론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될 수 있다. 첫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나[수고]에서 드러난 인간 소외나 노동 소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논의(소외론적 관점) 둘째, [독일 이데올로기]의 자연발생적 분업이 낳은 경제적 힘으로부터의 해방과 생산력의 이성적,계획적 관리라는 논의 (물상화론적 관점) 셋째, [자본론]의 자본주의 붕괴의 저편으로 보이는 '자유의 나라' 로의 이상사회(자유론적 관점)
마지막 '자유의 나라'는 다시 두 단계로 나뉠 수 있다.
1) 자본의 지배와 국가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사회화된 인간, 결합된 생산자들'이 자연발생적 분업으로 비롯된 경제적 힘에서 벗어나 생산과정을 합리적.계획적 지배에 따르게 하는 단계, 2) 그럼으로 일체의 '소외' 혹은 '물상화'로부터 해방된 개인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에 따라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시켜 자유롭고 창조적인 활동을 누리는 단계
첫번째 단계의 공산주의는 이성적.계획적 제어 체제를 실현하지만, 아직 자연 필연성으로 규정된 물질적 생산의 세계(필연성의 왕국) 의 한계 내에 있다. 그 저편으로 두번째 단계의'자유의 왕국'이 출현한다는 것, 그것은 국가가 소멸하고, 자본과 노동의 계급대립이 없고, 자유로운 각자가 자신의 개성과 가능성을 꽃피우면서도 동시에 상호 간의 결합과 연대가 유지되는 낙원의 모습니다. 이 낙원의 경제적 기초가 '개체적 소유의 재건'이라고 마르크스가 명시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의미한다고 보는 낡은 상식과 대치가 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견해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는 빈곤과 계급대립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고발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정의감에 호소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이라는 학문의 측면에서 당장 수많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상은 실제로도 많은 학자들에게 실현 불가능한 유대교적 종말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서 비판점을 세가지로 정리해보면 1) 마르크스의 경제학, 2) 혁명론 3) 이상사회론으로 볼 수 있다.
1)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 잉여가치설'은 오직 살아있는 인간의 노동만이 잉여가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다. 현대의 IT혁명을 노동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이듯이 말이다.
2) 노동자계급의 궁핍화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선진국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생활수준에 만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업과 빈곤에 대응하는 정부의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 정책을 지지한다. 노동자 대다수가 자본주의 체제의 수익자라면 체제의 수익자가 자기 손으로 그 체제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3)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사라질 뿐 아니라, 계급대립이 낳은 정치적 지배 역시 소멸한다고 하는데 정말 이런 사회가 가능한가? 이제껏 조금이라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존재한 적이 없다. 정말 이상사회의 질서가 국가 없이 유지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국가철폐의 조건으로 자연발생적 분업의 폐지나 사회의 이성적 계획적 제어라는 이상이 오히려 역사의 소련이나 중국의 거대 중앙집권력 권력의 독재를 가져온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
실제로 1)의 노동가치설에 대해 '한계혁명'이후의 경제학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으며, 2)는 19세기 후반의 '큰 정부'를 둘러싼 문제이며, 3)은 케인스와 하이에크 이후의 '자유'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을 이루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 사상의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무엇보다 인간의 '자유'라는 이념이 존재함에 있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사상가 마르크스의 궤적이 그의 전 저서에 흐르고 있다. 그가 추구한 자유는 부르주아적 자유의 법률적 보장에 머무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본권 보장, 사유재산, 영업의 자유 등) 오히려 이러한 시민사회적 권리가 계급대립이나 노동자 계급의 빈곤이라는 사태를 초래한다고 생각했고, 법 앞에서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이념의 타당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민적 자유는 에고이즘에 불과하며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할 자유라고 주장했고, 이러한 자유는 그가 믿는 진정한 '공공'이라할 '자유인의 연합'과 양립할 수 없다. 마르크스 이전의 '공공'은 '정치적' 공공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진정한 '공공'으로서 '자유인의 연합'은 명확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다만 그의 자유는 타인과의 공생,공동,협동을 조건과 목적으로 하는 무엇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적이고 고매한 이념의 수준에서 유지되는 한 그 자체로서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얼마간의 관념적, 공상적, 유토피아적 색채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매력에 빠지게 하는 셈이다. 오히려 현실적이었던 생시몽,오언, 푸리에와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자본주의의 본질인 한 거기서 유래한 경제,사회적 문제들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한에서 무언가 진정한 '자유인의 연합'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그것을 기반으로 지배와 착취 구조를 변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사람들을 움직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항축을 계속 형성해갈 것도 사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