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40이 넘어가다 보니
난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에 대한 질문과
난 지금까지 잘 살아는 왔는가,에 대한 질문이 같이 떠오른다.
인생은 무엇이고,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늘 똑같지만
그 답은 나름대로 달라지고 있기도 하다.
문득문득
나의 과거를 되짚어 본다.
그리고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어릴 적 영광의 순간보다는
부끄러움의 순간이다.
20대, 30 때는 젊은 꼰대처럼 나 그때는 정말 행복했는데, 그때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하면서 영광의 시절을 얼마나 되씹어 보았던가.
그런데 40이 넘어가면서부터일까. 사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타임머신이 있다면
내가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하나씩 곱씹어보자. 그래도 흐릿한 기억으로 남기는 것보다
적어두는 것이 낫지 않은가.
'너 교회 아이들 물 흐리지 말고 앞으로 나오지 마라'
이 대사가 후회스럽냐고??
아니다.
내가 친 대사가 아니다.
무려,
내가 초등학교5학년부터 대학 때까지
젊은과 열정 다 바친
그 교회 담임목사님 대사다.
그럼 내가 그 소릴 들었냐고??
천만에.
교회에서 노는 게? 좋았기에
교회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 만큼
활동한 시간도 많았고,
엄마는 그 교회 권사였으니
낸 헌금도 모르긴 몰라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며,
고등학교 전교 1등도 했던 형 또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으니
교회에서 미움받을 이유가 있었을까?
그런 나를 목사님이 나가라고 하셨을까.
아니다.
내가 아니라
나와 같은 동기였던
양00 이야기다.
양00 은 언제부턴가
나와 같은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중학생 때부터 어느 정도 술,담배를 했었고
나름 노는 친구들과도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 기준에서 나쁜 놈이었냐고??
최소한 내가 보기엔 그런 기억은 없다.
오히려 귀엽게 생겼는데
나름 폼 잡고 다니는 것이 또 귀엽기도 했던,
분명 폼은 잡고 다니지만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욕설을 남발하지도 않았고,
누구를 괴롭히는 것은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 친구는 교회를 떠났다.
아니, 쫓겨났다.
'너 교회에서 나가!'
라는 대사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한 다리 건너,
즉 양00와 좀 더 친했던 같은 교회 친구가 나에게 들려줬었다.
목사님이 양00 더 이상 교회 나오지 말라고 했다고.
흠..... 그 당시 적잖이 충격이었다.
성경대로..... 말씀대로.... 목사님은 판단하신 걸까.
성경에는 당시에 욕만 디지게 먹는 세리 마태가 제자였고,
다시 교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어부 베드로는?
게다가 창녀였던 마리아 또한 가까이 두시지 않았던가?
그때도 그 정도의 성경 지식은 있었기에,
아무리 술, 담배를 자주 하는 놈이라 해도
교회 다른 아이들 물들일까 봐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정말 맞을까???
나는....
딱히 양00에게 물들지는 않았는데??? (난 그 친구와 아무 상관없이 교회에서 야밤에 공부한답시고 모여서 술을 대접째 마신적이 있었다. 근데 그건 양00와 별개로 김00 때문이었지만 ㅎㅎ)
그렇게 양00는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그 친구는 그 후 교회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 나의 수치를 떠올리는 글에서
왜 목사님의 수치를 떠올리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목사님은 이걸 기억이나 하실까? 수치로 떠올리기나 할까?)
사실 내 고민은
이미 난 그 시절, 고등학생밖에 안 되었던 시절에
권력의 편이었다는 점이다.
즉, 이미 난 잘못된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다.
분명 양00 가 그렇게까지 목사님에게 출교?당하는 해괴한 조치를 당했을 때
아무 저항 못한 거야 나이가 어려서 그랬다 치고,
양00와 관련한 또 한 번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게 맘에 걸린다.
양00가 나와 교회에서 같은 반이었을 때였다.
교회에는 설교 후 반별로 공과공부, 즉 성경공부를 하는 시간이 있다.
보통 30분 정도 되는데,
사실 결코 즐거운 시간은 아닐 것이다.
힘겨운 설교를 듣고, 또 성경공부라니~~
여하튼,
당시 남자 담임쌤은 공직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랐던
점잖은 분이셨다. 그분이 성경공부를 인도하는데
역시나 집중력이 나보다는 부족했던 양00는
딴짓을 했었다. 아마 그게 계속 선생님도 거슬리셨던 것 같다.
이제 다 끝나가는 시간에, 마침기도해야 하는 순간에
그때도 시시덕거렸던지
선생님은 평소 답지 않게 양00에게 뭐라고 지적을 하셨는데
대사는 기억에 안 난다. 다만 다분히 조용하지만 감정적인 분노였던 것 같다.
'그럴 거면 집에 가'... 였던가.
여하튼 양00가 그 순간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당 뒷문으로 나가는데
그 나가는 순간에 양00가 본능?적으로 지껄인 말이 문제였다.
씨벌... 이였던가, 지랄이었던가...
선생님 면전에 한 욕은 아니었지만,
왜 자기 상황이 지랄 맞을 때 욕이 나오지 않는가.
양00는 필터링 없이, 다만 나직하게 욕을 읊조렸는데,
그게 또 같이 있던 선생님과 우리 모두는 욕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싸가지는 없었던 양00가 교회 뒤로 나가려는 찰나,
정말 찰나였다.
교회 전도사 직분이었던, 그러면서도 예전에는 고등부 형이기도 했던,
즉 친했던 형 중에 이 교회 전도사까지 맡았던 그분이
번개까지 나타나서 양00의 싸대기를 후 갈겼다.
아프기도 아팠겠지만, 소리도 컸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알고 보니, 교회 뒷문 쪽에서 우리 반에 있었던 일을 어쩌다가 모두 목격했던 것이었고,
영문이 어찌 되었건
어른 앞에서 쌍욕을 하고 나오던 양00를 본 순간 이성을 잃었던 것 같다.
뺨을 부여잡은 양00의 멱살을 잡은 전도사 형?은
'따라 나와' 하면서 교회밖으로 끌고 나갔고,
나는 그 순간에도 엉덩이를 떼지 못한 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오히려
다른 반 여사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따라 나갔고,
전도사 형의 멱살을 떼어내느라 난리도 난리가 아닌 그런 상황이었다.
여차저차 나도 따라나갔으나,
이미 상황은 종료.
여자아이들은 울며불며, 양00와함께 교회에서 멀어져 가는데
그중 나와도 정말 친했던 한 여자아이가 내게 말했다.
'조종일 네가 더 나빠!'
그 말이 가슴에 내리 꽂힌다.
'네가 상황을 몰라서 그래, 양00가 먼저 선생님에게 욕을 해서.....'
등등의 구구절절한 변명, 항변? 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는지도 역시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심정이었다.
'분명 어른 앞에서 욕한 것은 잘못했잖아'.....라는 변명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이 십 대 아이를 폭행한 것은 정당한가.
아니 여기서 경중을 굳이 따지면
폭행이 더 문제가 아닐까?
여하튼 난 그 상황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는 점.
오히려 교회에 충성하지 않아 왔던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때리는 게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했으나,
교회어른들과도 이미 친했던 나는
내 나름의 상황을 챙기느라 바빴었다.
그 후,
폭력을 행사했던 전도사 형은 당연히 자신의 만행? (사실 전도사직을 내려놓을 충분한 상황이었다. 만약 총애받는 장로님 아들의 뺨이었거나, 권사님 아들의 뺨이었다면 그 직분은 안전했을까.... 참고로 양00는 자기 동생만을 데리고 교회에 출석했었다)을 반성하며, 양00에게도 사과한 걸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유야무야 '종일이 네가 제일 나빠'라고 원망한 교회 여사친과도 다시 친해졌고....
하지만 30년 가까이 지난 그 일이 난 아직도 떠오른다.
내가 그 상황에서 일어나서, 전도사형의 뺨을 대신 갈기려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 상황에서 바로 일어나 말리지 못한 점,
멱살을 잡혀 끌려나가는 친구를 보호해 주려고 액션조차 못한 점이
문득문득,,, 그러면서도 끝나지도 않고 떠오르는 것이다.
양00는 여하튼 그 이후
교회 근처에서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다가
목사님에게 걸렸던 것 같고,
목사님의 출교!명령에
정나미 다 떨어졌는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40이 넘은 나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면서도
진보적인 생각과 실천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좋은 보수가 무엇인지도 가르치긴 하지만
한국 사회에 좋은 보수는 아주 찾기 힘들고
기회주의적 보수는 찾기 쉬워서
자주 비판을 하며, 진보적인 방향을 제시하고는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보기에 한없이 진보적으로 보이는 나는,
정작
내 어릴 적을 돌이켜보면
항상 보수적이었다는 점이다.
시스템의 편이랄까.... 안정을 추구하고,
반항과 저항을 개인적으로는 추구했으나, 절대 그 틀은 벗어나지 않는....
보수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보수를 지키다 보면
분명 시스템의 결함이 있을 때 용기를 내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같이 함구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 문제인데
난 어릴 적부터 그런 시스템 속에서 충분히 그 편만 들고 살아왔다는 기억인 것이다.
양00 는 잘 살고 있을까.
최소한 교회는 안다닐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또 얼마나 부끄러운 기억을 꺼내놓게 될까.